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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핵 6자회담이 13일 6개국의 합의로 타결된 가운데, 이날 오후 중국 베이징의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탕자쉬엔 중국 국무위원 접견에 참석한 김계관 북한 측 수석대표가 환하게 웃고 있다.
ⓒ 연합뉴스 황광모
"우리는 흥정을 하러 온 게 아니다. 6자회담에 임하는 목적은 핵무기를 포기함으로써 대외관계의 근본구도를 바꾸자는 것이다. 공화국(북한) 지도부의 결심이 이미 섰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8일부터 엿새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5차 6자회담 3단계 회의 기간 중 한국 언론으로서는 유일하게 북한 측의 입장을 직접 취재해 보도했다. 재일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김지영 평양지국장의 입을 빌려서다.

이 말이 과연 사실일지에 대한 의구심은 회담 마지막 날 합의문이 채택되는 순간까지 떠나지 않았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그가 전한 북한 대표단의 분위기는 매우 정확했다.

물론 북한이 회담 초반에 초기단계 비핵화 이행조치의 대가로 상식선 이상의 에너지 지원을 요구한 것 등 부분적으로 '흥정'의 측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회담 전체를 통틀어 보면 북한은 김 지국장의 말대로 확실한 '결심'을 하고 왔다는 느낌이다. 미국을 비롯한 6자회담 참가국들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북한이 지금 처한 곤경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핵 폐기를 향한 길에 들어서겠다는 것이다.

'불능화' 조치는 복원 불가능... 합의 이행 의지 나타내

무엇보다도 북한이 핵 관련 시설들에 대해 94년 제네바 합의 당시의 '동결(freeze)' 조치를 뛰어넘어 '폐쇄(shutdown)·봉인(sealing)'을 초기단계 이행조치로서 받아들이고, 나아가 다음 단계로 '불능화(disabling)'까지 합의문에 넣는 데 동의한 것이 이를 상징하고 있다.

'폐쇄·봉인'은 '동결'과 달라서 시설의 보수·유지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원점으로 되돌리기가 어렵고, 더구나 '불능화' 단계로 이어진다면 사실상 복원이 불가능해진다.

이 때문에 북한의 핵 포기 의지를 의심하는 정부 관계자나 전문가들조차 "북한이 '불능화' 조치를 받아들인다면 합의이행 의지가 있다고 봐도 된다"고 말해왔다.

물론 '불능화'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적 조치를 취하느냐는 앞으로 한 달 이내에 구성될 실무그룹으로 미뤄놓았기 때문에 다시 갈등이 발생할 여지는 남아있으나 이 기술용어가 의미하는 국제기준이 있는 만큼 그 가능성은 높지 않다.

게다가 이 단계를 북한에 제공할 에너지 지원 양과 연계시켜 놓았기 때문에 북한이 '장난'을 칠 여지는 그만큼 더 줄어든다. 즉 '폐쇄·봉인' 조치의 시한을 60일로 정하고 이를 이행하면 중유 5만t 상당의 에너지를 제공하도록 하는 것이다. '불능화' 조치는 시한을 정하지 않고 완료되는 시점까지 추가로 중유 95만t 상당을 지원한다는 합의다.

"북한도 빨리 이행하자는 입장"

북한이 이 같은 연계안을 받아들인 배경에는 '불능화' 조치까지 빠른 속도로 이행하려는 의지가 있어서가 아닌지 하는 기대를 갖게 한다. 북한이 초기단계 이행조치로 '제네바합의 이상'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대가로는 연간 받았던 중유의 10분의 1 규모에 동의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행속도를 높이면 100만t까지 빠른 시일 내에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는 것이다. "공화국도 결심이 선 만큼 빨리 이행하자는 입장이다"라는 김 지국장의 말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불능화'까지의 조치가 종료되면 6개국은 다음 단계로 북한 핵 프로그램의 완전한 포기와 이에 대한 상응 조치로 경수로 제공을 논의하게 된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는 경수로 완공까지 북한에 제공할 에너지 규모를 다시 논의하게 된다.

회담 초반에 '상응조치'로 중유 200만t까지 거론했던 북한은 협상 막판에 몰리면서 요구치를 확 낮췄다. 대신 미국의 '적대시 정책' 포기를 합의문서에 담아내는 것을 중요시하는 자세를 보였다.

북한은 김계관 수석대표가 8일 오전 베이징 공항에 도착해서 "우리는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고 평화공존으로 나오려 하는가 안 하는가, 이것을 기본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말한 이후 회담에서 일관되게 이런 자세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 막판에 요구치 낮춰... '적대시 정책' 포기 중시

그런 점에서 이번 합의문에 "미국과 북한은 전면적 외교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양자대화를 개시한다"고 하면서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지정으로부터 해제하기 위한 과정을 개시하고, 적성국 교역법 적용을 종료시키기 위한 과정을 진전시켜 나간다"는 것을 60일 이내에 취할 초기단계 이행조치로 명시한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또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에 관해 협상하기 위한 직접 관련 당사국들간 '별도의 포럼'을 갖고, 동북아 안보협력 증진방안 모색을 위한 6자 장관급 회담을 신속하게 개최키로 하는 등 한반도의 해묵은 대결구조를 전환할 수 있는 획기적 계기들이 합의문에 담겨있다.

물론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춰볼 때 이런 과정이 반드시 순조롭게 이행되리라고 낙관할 수만은 없다. 북한이 다시 '시간 벌기' 전략으로 나올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며, 5개국간 협조체제의 이상이 의외의 돌발변수를 몰고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벌써 일본이 이번 대북 에너지 지원에서 빠져 있다.

'9·19 공동성명'이 담고 있는 한반도의 미래가 실제로 현실이 될 수 있느냐는 무엇보다도 북한이 핵 포기의 전략적 결단을 내렸느냐에 달려 있다. 이는 물론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번에 북한이 보인 태도와 나타난 합의문의 내용은 일단 그런 기대를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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