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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시절 고향 마을의 이웃에 계란장수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그 할머니는 마당 뒤편에 얼기설기 철사로 엮어 만든 닭장 안에 수백 마리의 닭을 길렀고, 장날이면 어김없이 짚 꾸러미에 담긴 계란을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분이었다.

날이 저물면 온종일 고샅을 헤집고 다니던 닭들이 어김없이 허름한 제집을 찾아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무척이나 신비함을 느꼈다.

▲ 카리스마가 넘치는 야생 맹수 삵의 모습이다.
ⓒ 김계성
그러던 어느 날부터 "꼬꼬댁" 닭들의 비명소리가 들리고 닭이 하나 둘 감쪽같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제보를 접한 마을청년들은 그것은 살쾡이(삵)의 짓이라며 급기야 올무를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요즘 같으면 큰일이 날 일이지만 아무튼 그때 닭을 물어가던 소리 없는 사냥꾼 야생 삵의 모습을 지척에서 보고 어언 40여 년이 흘렀다.

그때만 해도 흔하던 삵이 최근 들어 야생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삵은 멸종위기 야생동물이자, 이 땅의 마지막 고양이과 동물이다. 먹이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있는 삵이 오늘도 갈대 숲이 우거진 곡릉천 둑방을 넘나들고 있다.

이 땅의 마지막 고양이과 동물 '삵'을 취재코자 잠복하다

▲ 둑방 안쪽에는 드넓은 갈대밭과 물골이 있다.
ⓒ 김계성
그런 삵을 취재코자 어느 날부터 잠복(?)하기에 이르렀다. 둑방 안쪽의 드넓은 갈대밭 사이로는 곡릉천이 흐르고 바깥쪽엔 농경지가 자리 잡고 있다. 그나마 생태계가 살아 숨쉬는 곳이 바로 이곳(경기도 파주, 한강 하구)이다.

잠시 들러 본 것은 부지기수요, 점심도 거른 채 시린 손 호호 불며 땅거미 내림도 한두 번이 아니다. 한 번은 멀리, 또 한 번은 좀 더 가까이서 움직임은 볼 수 있었지만, 열흘이 지나도록 삵의 모습은 담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 둑방 너머로는 봄을 기다리는 농경지가 있다.
ⓒ 김계성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심심찮다. 저만치 둑방에 차가 서 있거나 서행하며 오가는 차는 십중팔구 나와 같은 사람들이다.

"어디서 오셨어요?"
"ㅎ신문 기잡니다."


기자들, 사진사들…. 찾는 이들이 상당수다.

▲ 겨울 곡릉천은 온갖 철새들이 찾는 쉼터이다.
ⓒ 김계성
삵을 만나는 일은 많은 인내심이 필요했다. 시간은 자꾸 흐르고 초조감만 더해지기 시작했다. '좀 더 성의를 보여야겠지'라고 생각하며 먼발치에 서서 일대를 살펴본다.

'삵', 모습을 드러내다

▲ 날이 저물면 드디어 삵이 움직이는 시각이다.
ⓒ 김계성
지난 1월 26일. 짧은 해가 서산 너머로 진다. 땅거미가 드리워지면서 주위가 어둑해질 즈음 둑방 아래로 한 물체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현장 가까이 차를 움직인다.

삵이다. 삵은 땅바닥에 가슴을 스치며 낮은 포복자세로 소리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드디어 먹이 사냥을 나선 것이다.

▲ 사냥을 시작하는 삵의 소리 없는 움직임이다.
ⓒ 김계성
풀 가지 사이로 보이는 모습, 마치 표범을 줄여 놓은 것 같은 녀석. 언젠가는 한번 꼭 카메라에 담아보리라 벼르고 벼르던 녀석이다. 주변 여건상 쨍하게 담아내진 못했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삵을 만난 기쁨은 가슴이 벅차올랐으며 지난 시간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 내리고 있었다.

태그:#삵, #곡릉천, #둑방, #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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