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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지동 여전도회관 14층에서 대선불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하려던 고건 전 총리가 지지자들의 저지로 인해 회견장에 입장을 못하게 되자, 지하 1층에서 측근들과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지하 2층에서 승용차를 탄 고건 전 총리가 굳은 표정으로 여전도회관 주차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대다수 언론의 분석이 일치한다. 고건 전 총리의 대선 불출마 선언을 낳은 결정적 계기는 노무현 대통령의 "실패한 인사" 발언이라고 한다.

고건 전 총리가 대통령의 발언에 맞서는 바람에 화를 자초했다고 한다. 하락세를 보이던 지지율이 이때의 설전으로 더 빠지면서 회복 불능의 상태에 이르렀다고 한다.

@BRI@맞다. 고건 전 총리 스스로 "여론의 평가"를 불출마 사유로 꼽았다.

이어가자. 그럼 노무현 대통령의 위상과 역할은 어떻게 되는 건가?

'살아있는 권력'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줬으니까 앞으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본다. 통합의 중심축이 무너진 상태이니까 신당파가 당분간 상황을 재고 대통령 눈치를 볼 것이라고 전망한다.

일단 맞다. 하지만 끝까지 맞는 얘기는 아니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고, 양이 성하면 음도 짙어지는 법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성과'를 거뒀다면 그만큼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여권 정계개편 움직임은 얼핏 복잡해 보이지만 잘 뜯어보면 아주 단순하다. 두 개의 큰 흐름이 맞물리면서 나선형 구조를 형성한 게 여권 정계개편이다. "도로 민주당은 안 된다"와 "노무현 대통령은 안 된다"가 그것이다.

의도했든 안 했든 노무현 대통령의 "실패한 인사" 발언은 결과적으로 "도로 민주당은 안 된다"에 힘을 실어줬다. '도로 민주당'의 접착제를 떼어냄으로써 통합 방향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국면이 바뀌는 건 불가피하다. 그러면 노무현 대통령의 명분과 전략은 '중고'가 된다.

'도로 민주당은 안 된다' 전략은 더이상 무의미

▲ 의도했든 안 했든 노무현 대통령의 "실패한 인사" 발언은 결과적으로 "도로 민주당은 안 된다"에 힘을 실어줬다. '도로 민주당'의 접착제를 떼어냄으로써 통합 방향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노무현 대통령이 여권 정계개편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명분에 있었다. 지역주의로 회귀하려는 '도로 민주당'을 저지해야 한다는 명분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안 된다"에 "도로 민주당은 안 된다"를 맞세움으로써 명분의 우위를 점하려 했다. 최선의 방어책으로 공격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이 명분과 전략은 이제 힘을 잃는다. "도로 민주당은 안 된다"라고 외칠 필요가 없게 됐다. 공격의 명분도 무뎌지게 됐다. 그에 비례해서 노무현 대통령의 여권 정계개편 개입 여지도 줄어든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랬다. 통합 그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도로 민주당'을 반대하는 것이라고 했다. '도로 민주당'이 아닌 통합이라면 노무현 대통령이 감 놔라 대추 놔라 하기 힘들다.

반비례하는 것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비판 필요성이다.

중심축을 잃어버린 신당파다. 다시 축을 세워야 하지만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당장 급한 건 신당파의 사분오열을 막는 것이다. 방법은 하나다. 이번에는 신당파가 최선의 방어책으로 공격전술을 택하는 것이다.

하지만 난감하다. 이미 방어벽이 쳐졌다. 개헌이다. 신당파도 개헌에 동의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한 배를 탄 이상 선상반란을 일으키기 힘들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했다. 이왕 한 배를 탔다면, 당장 통합의 중심축을 세우기가 어렵다면 시간을 벌면서 호흡을 가다듬고 여건을 조성하는 게 낫다.

가장 좋은 여건은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이다. 그러면 힘을 최대한 아끼면서 "노무현 대통령은 안 된다"를 구현한다. 명분도 있다. 개헌의 진정성을 보이기 위해 먼저 탈당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찌감치 신당파 내부에서 나왔다.

이렇게 보면 '고건 이후'의 최대 화두는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이 된다.

또 하나의 고려사항 김근태와 정동영

▲ 김근태·정동영 열린우리당 두 대주주가 '고건 이후' 판짜기를 주도하면 여권 통합 방향이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다. 더구나 이 중 한 사람은 고건 전 총리의 지역기반을 접수하면서 '도로 민주당'의 불씨를 살릴 수도 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28일 긴급회동 당시의 모습.
ⓒ 오마이뉴스 이종호

실현 여부는 불투명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 절대불가를 외치는 한나라당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탈당을 선행할지, 아니면 한나라당의 완강한 반대 입장을 명분 삼아 탈당을 거부할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이 뿐만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으로선 고려해야 할 요소가 하나 더 있다. 김근태·정동영 두 사람의 존재다.

고건 전 총리가 또 하나의 불출마 사유로 꼽은 게 "기존 정당의 벽"이다. 이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자명하다. 그만큼 두 사람의 여권 내 지분은 크다.

두 대주주가 '고건 이후' 판짜기를 주도하면 여권 통합 방향이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다. 더구나 이 중 한 사람은 고건 전 총리의 지역기반을 접수하면서 '도로 민주당'의 불씨를 살릴 수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으로선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두 사람을 그대로 놔두고 탈당을 감행하는 건 뒷맛이 개운치 않다. 여권 정계개편에서 손을 떼더라도 두 사람의 위상과 역할을 조정한 후에 하는 게 나을지 모른다.

노무현 대통령이 고건 전 총리를 향해 "실패한 인사"라고 말할 때 김근태·정동영 두 사람을 장관으로 기용해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었다"고 덧붙여 말한 이유를 이 맥락에서 헤아릴 수도 있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 고건 전 총리를 상대할 때만큼의 명분이 없다.

김근태 의장은 고건 전 총리와 대북정책을 놓고 갈등을 빚으면서 거리를 둬왔다. 정동영 전 의장은 고건 전 총리가 불출마를 선언한 후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자신이 '제2의 고건'이 되는 걸 피하기 위함이다.

더구나 두 사람이 '고건 대체 인물'로 '지역'의 간택을 받았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고건 전 총리를 지지하던 유권자 중 일부가 정동영 전 의장으로 돌아섰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지만 그 수준은 극히 미미하다.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다시 "도로 민주당은 안 된다"를 들고 나오기는 힘들다. 오히려 두 사람이 외곽에서 개헌을 고리로 걸어 탈당을 요구하면 노무현 대통령은 곤혹스러워진다. 제2전선을 형성하든지, 퇴각을 하든지 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도 선택을 요구받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태그:#도로 민주당, #통합, #고건, #실패한 인사, #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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