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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규
주탄야도(晝炭夜賭). 낮에는 탄광, 밤에는 카지노(도박)란 뜻이다. 폭설이 내리기 직전인 지난 15일 사북에 다녀왔다.

행정구역상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사북리 424. 이곳은 지난 56년 동안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이자 견인차 구실을 했던 탄광이 있던 곳이다. 낮에는 카지노의 불빛도 없어 높디높은 수갱(竪坑-shaft) 만이 과거 이곳이 탄광 지역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과거 반세기 이상 이 지역의 단일산업(Single Enterprise)으로 자리 잡았던 탄광이 물러간 자리 위에 강원랜드 카지노의 휘황찬란한 조명과 네온사인이 자리 잡았다.

한때 직원 5000여 명과 가족 1만5000여 명의 인원을 거느렸던 동원탄광은 이제 높이 50m의 수갱과 그 부속건물만 한겨울 찬바람 속에 남겨 더욱 을씨년스럽다.

냉기만 그득한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BRI@기자가 찾아간 곳은 이미 폐광된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본관 건물로 현재는 석탄유물보존위원회(회장 방명수, 이하 보존위)가 임시로 사용하고 있다. 전기를 아끼기 위해 사무실 하나만 난방을 해 나머지 유물보관실과 다른 사무실엔 냉기가 가득하다.

지난 2004년 10월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폐광 이후 보존위는 실로 눈물겨운 노력으로 석탄유물을 수집, 보존하고 있다. 지난 2년간 보존위가 수집한 유물만 1500여 종, 1만4000여 점에 이른다.

현재 유물들은 본관건물 사무실에 보관되어 있는데, 유물보존에 관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보존상태가 꽤 양호했다. 이곳에서 만난 전주익 보존위 사무국장은 그간의 고생보다도 앞으로 일을 더욱 걱정하고 있었다.

"내년 3월이면 보존사업 예산이 끊깁니다. 그러면 이 많은 유물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특히 도난사고에 대한 아무런 보안대책 하나 없는 게 더욱 불안할 따름입니다."

현재 보존위는 위원 10명과 회원 20여 명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동안 이들은 버려지거나 혹은 먼지가 쌓인 탄차, 건물, 갱구, 전기시설, 기계 시설, 화약고 등 거의 모든 광산시설들을 손질, 보존에 힘을 기울여왔다. 그나마 철거 위기에 있던 몇몇 시설들은 몸으로 막아왔다고 한다.

초창기 보존위를 만든 송계호(전 정선군의회 의장) 전 의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탄광은 이 지역의 정체성입니다. 어떻게 지역의 정체성을 버리고 지역이 지속 가능하게 발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큰 것을 바라는 게 아닙니다. 그저 지역의 정체성을 지키고 보존하고 싶을 뿐입니다."

또 다른 보존위원은 "남들은 없는 것조차 다시 만들어 유물이라고 하는 판에 우리는 가지고 있는 것조차도 저렇게 방치시켜 버리는 것이 말이 되는 얘기입니까?"라고 말했다.

박물관으로 충분히 살아날 수 있는 '사북 탄광'

▲ 석탄유물보존위원회 사무실
ⓒ 이용규
지난 1995년부터 '폐광지역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폐특법)'이 시행된 이후 1조원 이상이 이 지역에 지원됐지만 산업유산의 보존 및 지원에 관련한 예산은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기야 '산업유산'이라는 말도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다. 이에 반해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 프랑스, 그리고 독일 등은 이미 오래전부터 폐광 이후의 산업유산들을 지속적으로 보존, 관리하고 있다.

이 시설들은 지역주민의 요구와 가치에 따라 훌륭한 산업문화유산 혹은 지역문화 관광자원으로 재현되었다. 이들은 자체의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했고, 그에 따라 지역의 정체성에 부합 하는 산업문화유산을 폐기하지 않고, 역사교육의 장으로, 민속문화의 장으로, 그리고 산업문화관광의 장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그 한 예가 '산업문화유산'을 이용한 박물관이다. 우리는 이제까지 박물관다운 박물관을 가져보지 못했다. 주로 전시관위주의 수동적, 폐쇄적 박물관이 대부분이다. 건물 안에서 관람객은 동선에 따라 움직이고, 유물들은 유리관 안에 갇혀 있고, 도무지 관람객과 유물 간의 대화가 불가능한 전시관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진정성(authenticity)이 갖춰져 있지 않은 것 또한 문제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한국민속촌은 원래 그 자리에 없던 것을 70년대 급조한 것에 불과하다. 그곳에 있는 초가집은 원래의 초가집이 아니고, 그곳에 있는 기와집은 원래의 기와집이 아니다. 관람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새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사북은 어떠한가? 모든 것이 그 위치, 그 장소, 그 건물, 그 사람들이다. 탄광의 상징인 높은 수갱(Shaft), 깊은 갱도(약 3km), 그리고 광부목욕탕과 부속시설 등 여전히 활용가치가 높은 산업유산이 대부분이다.

또 전직광부, 은퇴광부 등이 박물관에서 다시 일자리를 찾고 자신의 삶을 생동감 있게 전달할 수 있는 인적자원이 여전히 풍부하다. 상상해보라. 아이들이 전직 광부와 함께 갱도체험으로 하고, 석탄을 만져보며, 탄차를 함께 타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카지노를 보여줄 것인가?

▲ 석탄유물보존위원회가 수집한 유물들
ⓒ 이용규
탄광지역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기성세대가 전해줄 수 있는 선물은 '우리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가'다. 아이들은 전해진 말을 듣고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보여줄 게 없다. 카지노를 보여 줄 것인가? 답은 나와 있다.

탄광이라는 그림자를 지우고, 문화관광의 도시를 만들고 싶은 강원랜드의 입장을 모르는 게 아니다. 그러나 교육과 문화가 빠진 문화관광도시는 그저 허울 좋은 이름에 불과한 것인가? 더 나아가 강원랜드 카지노가 앞으로 영원히 지속할 거라고 누가 장담할까?

누가 뭐래도 사북, 고한지역은 '탄광 도시'다. 그것은 역사다.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여전한 현대사이자 미래의 역사다. 단일기업에 의지한 도시였고, 지금의 강원랜드도 단일기업에 불과하다. 역사적 경험이 증명해준다. 그걸 뛰어넘어야 한다. 그래야 기업도 살고 지역도 사는 것이다.

내년 3월이면 보존위에 지원되는 기금도 끊어지게 된다. 이들은 말한다.

"우리야 어떻게 하든 살 수 있습니다. 다만 저 많은 유물들을 어떻게 할 건지…."

타들어가는 담배 연기 속에 이들의 절박한 심정과 암울한 산업유산의 미래가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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