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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산다]

다시 인도에 돌아온 지 한 달이 넘었고, 해가 바뀌었다. 2020년이 되었고, 나의 대학원 생활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매일 저녁 스터디 서클을 주도하면서 본과 3-4학년 학생들 뿐만 아니라 1-2학년 학생들도 가끔 와서 그룹 스터디에 참여한다. 물론 우리는 산스끄리뜨 원전을 가지고 공부하기 때문에 1-2학년 학생들이 참여하기에는 버거운 점이 없지 않다. 처음부터 원전을 가지고 공부해 왔다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고 영어로 번역된 책으로 주로 공부를 했다면 많은 어려움을 느낀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영어로 번역된 책에 의존해서 공부한다. 물론 나도 그랬다. 지금도 모든 것을 다 산스끄리뜨 어만을 읽고 이해하기 어렵다. 필요한 대로 영어 번역본을 참고하며 공부하고 있다. 꾸준히 공부하면서 그 비중을 조금씩 줄여나가고 있는 중이다. 언젠가 영어나 힌디로 번역된 책 없이 오로지 산스끄리뜨 원전만을 가지고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날을 꿈 꾼다.


이런 어려움은 외국인 학생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도 학생들에게도 산스끄리뜨 어는 굉장히 큰 진입장벽이 된다. 물론 산스끄리뜨어와 아무런 연결점이 없었던 나와 같은 외국인보다는 인도 학생들은 그들이 쓰는 언어가 산스끄리뜨어에서 유래되었으니, 상대적으로 친숙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학생들이 번역본에 의존해서 공부한다. 그만큼 그들에게도 산스끄리뜨 어는 어려운 모양이다. 하지만 번역본으로 공부하면 원전에 담긴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게 된다는 큰 단점이 있다. 나는 이것을 벵갈루루(Bangalore)에 있는 아유르베다 아카데미(Ayurveda Academy)에서 수련의로 근무하고 그들과 공부하며 알게 됐다. 원전에 쓰여 있는 단어 하나하나에는 굉장히 폭넓고 깊은 의미가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 이것은 오직 산스끄리뜨 어를 통해서만 알 수 있고, 산스끄리뜨 어만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맞는 공부 방법을 알아야만 접근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있다. 지식이 남용되거나 오용되는 것을 막는 하나의 장치인 것이다. 오직 진심으로 깊게 파고들어 공부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다.


인도에서 힌두 경전인 베다(Veda)를 공부하는 것도 그렇고 아유르베다를 공부하는 것도 그렇고 지식을 배우는 방식은 만독과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읽는 한 방식인 만독은 책에 쓰여 있는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알아가며 읽고, 그것의 쓰임과 적용점을 생각하고 토론하며 읽는 방법이다. 이러한 공부법으로 그들은 평생 하나 혹은 몇 가지 경전을 공부한다. 알면 알수록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으며 이해하면 할수록 연결점이 늘어난다.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깊이가 깊어진다. 그 결과 현재의 삶에 그리고 환자의 치료에 적용할 수 있는 더 많은 부분들을 발견하게 된다. 매번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연결하며 환자를 보면서 지속적인 공부를 통해 책에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는 지식을 찾아낼 수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이런 부분들을 나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통해 알게 되었고, 그러면서 조금은 성장해서 원전을 더 깊이 읽을 수 있는 방법과 관점을 익히고 이해할 수 있었다. 공부하며 계속 느끼는 거지만, 평생 진심을 다해 공부해도 다 알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학문이다. 그래서 더 도전하고 싶고, 즐겁다. 적어도 평생 매진할 수 있는 것을 하나는 가지고 있는 셈이다. 나이가 들어 할 일이 없어 뒤늦은 방황을 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나의 학창 시절 동안 단 한 번도 학구적인 학생이 아니었다.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았으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고 그렇다고 간절하게 원하거나 필요를 느끼지 않았기에 그냥 그렇게 시간을 흘러 보냈다. 그때는 친구 관계에 더 어려움을 겪기도 했고, 검도라는 운동을 하며 더욱 즐거움과 보람을 느꼈다. 그리고 돌아보면 내가 공부를 잘하지 못할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바로 꼼꼼하고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 완벽하게 하지 못할 바에는 하지 않거나, 하다가 그만둔다. 물론 그것을 너무 좋아하고 하고 싶다면 그런 성향에도 불구하고 계속하겠지만 공부는 나에게 그런 대상이 아니었다. 나는 하나를 하고 완벽하게 다 끝내고 다음으로 넘어가려는 성향이 굉장히 강했다. 그래서 1장을 공부하고 이해가 안 되면 그곳에서 멈추어서 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했다. 그러다 계속 이해가 되지 않으면 그만두었다.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책을 처음부터 읽으려다 보니 관심이 없는 부분을 읽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 책을 덮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이야기하자면, 굉장히 바보 같은 행동이라고 느껴지지만 그때는 내가 그렇다는 것조차도 알지 못한 채 그렇게 하고 있었다. 공부는 그런 한 가지 방법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이곳에 와서 많은 힘든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나에게 공부는 퍼즐과 같은 것이다. 10개의 퍼즐을 맞춰야 한다고 가정할 때, 일에서 십까지의 퍼즐 중 어느 것이든 먼저 맞출 수 있다. 번호와 상관없이 먼저 알게 된 것들을 맞추다 보면 어느새 모든 조각들이 하나로 모아져 완성된 그림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이해를 한 이후로, 처음부터 하나하나 완벽하게 하려는 성향을 의도적으로 낮췄다. 그리고 이해가 안 되면 그냥 넘어가고 다른 부분을 공부하며 나중에 다시 돌아와서 다시 읽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방법으로 대체했다. 이것은 정말 별것 아니지만 나에게는 족쇄를 푸는 큰 해방감을 주었다. 내 안에 나 스스로 언제부턴가 효율적이지 않은 규칙을 만들었고, 나는 계속 그것을 따르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맞지 않는 규칙을 맥락도 고려하지 않고 적용하려고 하니 힘들 수밖에.


이번 글은 쓰다 보니 공부에 대한 글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나는 글을 쓸 때, 몇 가지 주제를 정해 놓고 쓰기 시작하는데 쓰다 보면 내가 평소에 더 관심이 있고, 생각해오던 것에 더 많은 부분을 할당하게 된다. 그리고 가끔은 생각했던 방향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글이 나아가기도 한다. 이번 글이 그런 경우에 속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방향을 억지로 틀지는 않을 생각이다.


우리나라에서 현대의학과 한의학 분야에서 종종 서로에 대한 날 선 비판이 있다는 것을 안다. 물론 나는 현대의학과 한의학의 그 어떤 부분에도 속해있지 않고, 잘 알지도 못하기에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단지 인도에서도 현대의학과 아유르베다 의학을 포함한 전통의학 사이에 일종의 대립하는 부분이 있고 가끔은 법정 공방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나는 이것이 비슷한 맥락이라고 보고 나의 생각을 열거해 보려고 한다. 


그전에 인도의 현실을 조금 짚고 넘어가 보자면, 인도는 중앙정부와 별개로 주정부가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각 주는 주 정부에 따른 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 그래서 주에 따라서 아유르베다 의사가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조금씩 다르다. 몇몇 주에서는 아유르베다 의사가 양약을 처방할 수도 있고, 주사도 놓을 수 있도록 되어있다. 그래서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아유르베다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양약을 처방하며 의료행위를 하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이 한 부류에 속한다.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아유르베다를 전공하고 아유르베다 치료와 약을 처방하지만 현대의학의 진단 방법을 활용한다. MRI, X-ray, 혈액 검사, 소변 검사 등의 자료를 토대로 진단을 하고 그에 따른 아유르베다 약을 처방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이 지금 인도에서 가장 많은 아유르베다 의사들이 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또 다른 부류는 아유르베다의 고전을 깊이 이해하고 병의 진단과 치료를 그대로 적용하는 의사들이다. 이런 사람들의 수는 비교적 적지만 인도 곳곳에 존재한다. 내가 벵갈루루(Bangalore)에서 함께 공부한 사람들이 이 세 번째 그룹의 사람들이다. 물론 나는 모든 아유르베다 의사들이 세 번째 방식으로 의료행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


나는 현대의학을 잘 모르지만, 본과 1-2학년 과정에 기본적인 해부-생리학과 병리학을 배운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현대의학에서 보는 관점과 접근이 아유르베다에서의 것과 많이 다르다는 점이다. 다른 의학 체계이니,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문제는 많은 아유르베다 의사들, 그리고 아유르베다를 세계적으로 알리려고 하는 측면에서 일어나는 여러 움직임들에 정치적인 면과 그리고 비즈니스적인 면이 결부되면서 무리하게 아유르베다의 개념과 질병들을 현대의학의 개념과 질병에 연결시키고 이해하려고 한다. 아유르베다 전공 교육 과정에 현대의학의 비중이 늘어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우려를 표하는 의사들이 있고, 아유르베다를 제대로 공부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세미나와 프로그램이 진행되기도 한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옳고, 효과가 있다는 것을 모두에게 증명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본래의 시스템 자체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각 의료 체계는 각자가 인간과 인간의 몸을 그리고 생명을 이해하는 고유의 관점이 있고, 그에 따른 해부-생리학 등의 이론 체계를 가지고 발전해 왔다. 이것을 섞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다른 의료체계 간의 교류와는 또 다른 이야기다. 가끔 모든 것을 통합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통합이 의미하는 바가 '모두를 섞어서 하나'로 만든다는 의미라면 적절치 않다고 본다. 이는 나에게 마치 지구에 있는 언어를 모두 섞어서 하나의 언어로 만들자는 것과 같이 들린다. 


왠지 혼자 지루한 이야기를 너무 장황하게 늘어놓은듯한 느낌이다. 그럼에도 한 번 정도는 인도에서 전통의학이 현대의학과 어떤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고, 그러한 관계 속에서 내부에서는 어떠한 움직임들이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아유르베다 건강 엑스포 2020(Ayurveda Health Expo 2020)


지난 주말 우리 학교에서는 아유르베다 건강 엑스포 2020(Ayurveda Health Expo 2020)이 열렸다. 운동장에 큰 구조물의 뼈대가 세워지고 그 위로 천막이 쳐졌다. 큰 공간은 작은 부스들로 채워졌고, 그 안에는 일반인들을 위한 건강에 유익한 정보들로 가득 채워졌다. 내가 있는 고전연구학과에서는 음식의 궁합에 대한 내용들과 음식의 맛과 건강의 상관관계, 계절에 따른 몸의 변화와 음식에 대한 내용들의 포스터를 제작해 설치해두고 사람들의 체질 검사를 해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음식과 생활의 조언이나 필요하면 의료적인 치료를 이어나갈 수도 있다. 


공간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뉠 수 있다. 한 부분은 각 과별로 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된 내용으로 채워졌고, 다른 한편에서는 간이 진료소가 있어서 사람들이 상담과 건강상의 조언 및 필요에 따라 약을 처방받을 수도 있다. 이 행사는 이번이 네 번째로 매년 학교의 개교기념일에 열릴 예정이다. 이번 행사는 1월 5일과 6일 이틀 동안 계속되었다. 나는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는데 언어상의 제약이 있으므로 주로 사람들의 이름과 나이 직업 등을 등록 명부에 기입하고 체질 검사표를 나눠주는 일을 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의사들이 있는 데스크로 찾아가 자신의 체질에 대한 검사를 받는다. 아침 9시부터 시작된 행사는 저녁 8시가 넘어서야 끝났는데, 이틀 동안 12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체질 검사를 받았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 모두는 아침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쉴 새 없이 일해야 했다는 말이다. 점심시간에도 사람들이 계속 와서 두 그룹으로 나눠서 점심을 먹어야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우리 과에서 체질 검사를 받은 사람만 1000명이 넘으니 전체적으로 행사장을 찾은 사람들의 수를 생각하면 정말 많은 수의 사람들이 왔다고 유추해볼 수 있다.


행사가 끝날 때쯤에는 모두가 녹초가 될 만큼 힘들었지만, 나는 한편으로 같은 학년 친구들과 선배들 그리고 교수님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며 적잖이 감명을 받았다. 모두들 진심을 다해서 자신이 힘들어도 다른 동료들을 배려하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고, 교수님들 또한 학생들의 상태를 봐가며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셨다. 오히려 제 몫을 하지 못하고 있는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함께 고생하고 있자니, 같은 과의 동료로서 좀 더 끈끈한 유대감과 소속감이 들어 한편으로 기분이 좋기도 했다. "나는 운이 좋게도 참 좋은 사람들과 생활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마음 깊숙이 스며들었다.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며 약간의 어려움을 겪어왔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아유르베다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서도 그렇고, 내가 하는 공부나 활동에 대해 알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 왔기에 더 그러했다. 사실 현실과 마주하기 전까지는 그러한 활동이 왜 필요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실감하지 못했다. 언제나 그런 것처럼 나는 직접 부딪치고 깨지며 배워야지만 배울 마음이 생기고 움직이는 사람인 모양이다. 긍정적인 부분은 그렇게 배우면 확실하게 배우게 된다는데 있겠다. 지금 글을 쓰고 유튜브를 하며 내가 공부하는 학문과 나의 활동을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데에는 그런 경험을 하고 이러한 활동의 중요성을 실감했기에 그렇다. 그리고 이제는 글을 쓰고 영상을 찍는(사실 다시 영상을 찍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등의 활동들에서 즐거움을 느끼기도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와 블로그에 중복게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