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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장관 검찰적폐 심장부 특수부 쏘았고 순장(殉葬)했다?MBC뉴스 데스크 보도비평

2019년10월14일 MBC뉴스 데스크는 조 장관은 오전 11시 예정대로 단상에 서서 검찰 특수부를 서울과 대구, 광주 3곳으로 축소하는 동시에 명칭도 '반부패수사부'로 바꾸고, 수사 범위도 공무원 범죄와 중요 기업범죄로 제한하는 내용의 검찰 개혁안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발표가 끝난지 불과 2시간여 만에 조 장관은 출입기자들에게 보낸 입장문을 통해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했다고 한다. 검찰적폐의 상징성있는 검찰적폐 심장부 특수부를 서울과 대구, 광주 3곳으로 축소하는 동시에 명칭도 '반부패수사부'로 바꾸고, 수사 범위도 공무원 범죄와 중요 기업범죄로 제한하는 내용의 검찰 개혁안을 발표하면서 검찰개혁 불쏘시개와 함께 순장(殉葬)했다.


검찰검찰적폐 심장부 특수부는 박정희 유신독재정치의 통치수단과 도구였다. 21세기 대한민국의 검찰옷으로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평등과 공정 정의와도 거리가 멀었다. 검찰 특수부는 박정희 유신독재정권의 통치수단과 도구로 처음 시작됐다. 국민 검찰이 아니었다.

검찰특수부라는 이름이 검찰 역사에 등장한 건 1973년 1월이다. 박정희 유신독재 헌법이 1972년 10월  시작됐으니까 박정희 유신독재의 통치도구가 바로 검찰특수부이다.김재규는 1979년 박정희 유신독재정권을 쏘았고 조국 법무부 장관은 2019년 박정희 유신독재정권 하수인 노릇한 검찰 특수부를 쏘았다.


검찰특수부는 박정희 유신독재의 산물이다.  박근혜 적폐 정권의 청와대 비서실장 이었던 김기춘은 1972년 10월 박정희 유신독재 헌법 초안 작성자라고 한다. 1972년 박정희 유신독재 헌법 초안 작성했다는 김기춘은 1972년 10월 당시 법무부 과장 신분으로 검사 였다. 그런 공안검사 출신 김기춘이 박정희 유신독재 초안 작성하고 등장한 박정희 유시독재정권이 1973년 1월 검찰특수부 만들어 유신독재의 통치수단으로 악용하기 시작했다.

윤석열 특수부 검찰은 그런 태생적 한계 때문에 스스로 특수부 축소하는  결정 내렸고 검찰개혁은 특수부  폐지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2019년10월14일 MBC뉴스 데스크는 "조 장관은 오전 11시 예정대로 단상에 서서 검찰 특수부를 서울과 대구, 광주 3곳으로 축소하는 동시에 명칭도 '반부패수사부'로 바꾸고, 수사 범위도 공무원 범죄와 중요 기업범죄로 제한하는 내용의 검찰 개혁안을 발표했습니다. 발표가 끝난지 불과 2시간여 만에 조 장관은 출입기자들에게 보낸 입장문을 통해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조장관은 사퇴의 변을 담은 입장문에서, 먼저 검찰개혁은 자신의 필생의 사명이었고, 그 검찰 개혁을 위한 불쏘시개 역할은 여기까지라고 밝혔습니다. " 라고 보도했다.


안티조선 언론개혁 홍재희 시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