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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그날 '쥬로스'를 입으라고 하셨다. 반바지 모양을 한 하얀 속옷을 내주시며 얕은 한숨을 쉬는 것도 같고 뭔가 웅얼거리는 듯도 했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경상도 바닷가 출신인 어머니는 목청이 좋았고 말도 분명하게 하는 분이었기 때문에 그날의 웅얼거림은 이름도 어려운 '쥬로스'만큼 낯설었다. 어머니가 시키는대로 팬티 위에 반바지 속옷을 하나 더 입고 치마를 입었다. 그리고 혼자 학교에 갔다. 그날은 아마 '국민학교' 1학년이던 내가 혼자 학교에 가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는 때였던 것 같다. 처음 학교에 갈 때는 어머니가 데려다 주셨지만 날짜가 지나고 등하교 길이 익숙해지면서 혼자 오가게 되었다. 학교는 걸어갈만한 거리에 있었고 나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혼자 다녔다. 학교에 가까워질수록 지지배배 아이들로 가득 찼던 골목길이 생각난다.
학교를 가는 길이었는지, 아니면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는지는 정확치 않다. 으슥한 모퉁이가 있는 지름길이었던 것은 기억한다. 그 모퉁이에서 덩치 큰 아저씨가 나를 붙잡았다. 칼을 들고 있다고 하면서 조용히 하라고 했다. 아저씨의 손이 치마 속으로 들어올 때 나는 '쥬로스'를 입고 있다는 사실에 자신감마저 느꼈다. 쥬로스는 엄마와 나의 비밀 무기였다. 아저씨의 손은 그러나 거침 없이 쥬로스를 넘어 팬티 속으로 들어왔다. 쥬로스를 입은 것과 입지 않은 것의 차이를 모르는 모양이었다. 쥬로스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다니! 나는 당황했다. 아저씨의 손이 오줌 나오는 곳을 지나쳤을 때 나는 다시 한 번 의기양양함을 느꼈다. 이 아저씨는 중요한 데가 어딘지 모르는구나! 오줌 나오는 곳을 지나친 곳, 나는 그 존재를 몰랐다.
오래지 않아 아저씨는 나를 보내줬다. 나는 다치지도 않고 죽임도 당하지 않고 놓여났다. 그때는 내가 어느 정도의 위험에 빠졌던 것인지 알지 못했다. 나는 다시는 그 지름길로 학교에 가지 않았다. 그 골목 앞에서 그 아저씨를 다시 본 적도 있지만 그 길로 가지 않았고 친구와 함께 있었다. 적어도 그 놈에게는 다시 당하지 않았다. 그리고 귀찮은 쥬로스는 어느 샌가 입지 않게 되었다.
자라면서 이 일을 잊었다. 20대가 되어 여성에 대한 폭력을 공부할 때 한 번 되살아났다. 그리고 다시 잊었다. 사회 생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모르는 사람, 아는 사람들에게 성폭력이라면 이가 갈리도록 지긋지긋하게 당했다. 길을 걸으면 낯 모르는 남자들이 나를 자기 물건처럼 쳐다본다. 매일을 하루 같이 3년쯤 그런 눈길을 받았더니 나중에는 나의 교양에도 불구하고 그놈의 눈을 쑤셔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에서는 거래처에 나갔다 온 남자사람이 자기가 돌아왔는데 웃으며 맞이하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나무랐다. 나도 일을 하고 있으며, 내 일로 말할 것 같으면 남자사람 상사가 외근에서 돌아왔을 때 따듯한 말을 건네며 웃음짓는 게 아닌데 말이다. 남자사람 임원은 회식 때마다 여자사람직원 옆자리 투어를 하며 술에 취해 번들번들한 눈으로 이차삼차를 더 마시자고 붙잡고, 그걸 피해 집에 가면 다음 날 엄한 얼굴로 불러서는 '회사가 장난이야!' 호통을 쳤다. '그럼 회사가 회식 때마다 이차삼차 마시자는 술집입니까. 신입 직원들은 이사님의 술에 취한 눈이 무섭다고 합니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은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였고 이차를 따라갔고 눈치를 보다가 그날의 희생양을 남겨두고 다시 도망을 쳤다. 일을 열심히 하면 인정을 받겠지, 라는 순진하고 안이한 생각에 머물러 몸이 부서져라 일했다. 그러다가 몸이 부서질대로 부서져 더 이상 버틸 정신력도 남아 있지 않은 날을 맞이했다.
40대도 중반인 올해 봄에 한샘 직장 성폭력 사건을 듣고서 쥬로스를 입은 그날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성폭력을 당한 사람이 비난을 받고 있었다. 성폭력을 당하고서도 가해자와 인사를 하고 카톡을 주고 받았다는 비난이었다. 성폭력은 가혹한 폭력이지만 그래도 인생은 살아야 한다. 학교도 가고 직장도 가야 한다. 저항해야 하고 고소고발도 할 수 있다면 하겠지만 그보다 먼저는 살아내야 한다. 외근에서 돌아와 웃어달라는 상사와 머리 잡고 싸우기 시작하면 직장생활이고 뭐고 없다. 길만 걸어도 고의로 내 엉덩이에 제 손을 부딪고 가는 인사가 한둘이 아닌데, 마음씨 좋은 이웃 아저씨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유로 내 팔뚝을 과도하게 꼬집는데, 이런 세상이지만 어쨌든 살아가고 있는 중이지 않은가. 숨이 멈추는 그날까지 살아내야 하지 않나. 하늘이 몇 번이고 무너져도 인생은 계속되지 않나. 그따위 인사, 그따위 카톡, 같이 먹는 밥이든 차든 술이든.
쥬로스를 입은 초등 1학년생의 그날이 염색을 하지 않으면 흰머리 성성한 사십대의 머리 속에서 영화처럼 수천수만 번을 돌았다. 어머니의 한숨부터 그 놈을 두 번째 본 일까지. 나중에는 '그날의 일을 어떻게 이렇게 잘 기억하는지?' 스스로 의심이 들었다. 그리고 남들은 나를 믿어줄까? 그 어린 나이에 겪은 일이 기억 속에서 어쩌면 그렇게 기승전결이 매끄러운가? 성폭력은 가치관의 혼란을 낳고 피해자는 스스로 의심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쥬로스를 입은 초등생은 그 일을 어머니에게 말할 것이지, 말하지 않을 것인지를 놓고 작은 머리가 깨지도록 고민했다. 왜 말하고 싶지 않은지 알지 못하면서도 말하지 않았다. 이유를 몰라서 더 오래 고민했다. 나는 잘못한 일이 없는데, 없는 것 같은데, 왜 엄마한테 말하면 안 될 것 같을까? 왜 엄마가 실망할까봐 겁이 날까? 고민 속에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고민했다는 사실까지 떠올리고서야 나는 스스로 납득했다. 나는 소설을 쓰지 않았다. 내가 느낀 감정들은 가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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