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0일, 카카오의 세 번째 컨퍼런스 if (kakao) 2020이 막을 내렸다. 카카오는 18일 수요일부터 20일 금요일까지 3일간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카카오가 출시해온, 그리고 앞으로 출시할 서비스와 비즈니스, 기술들에 관한 이야기를 공개했다. 102개의 영상과 자료들은 놀랍도록 참신하고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어서, '카카오가 이런 것까지 하고 있었구나!' 하는 감탄을 넘어 이러다 카카오에 우리가 잡아먹힐 수도 있겠다는 이상한 두려움까지 불러온다. 카카오가 삶 속에 스며든 지 10년을 딱 채운 지금, 원숭이 꽃신 이야기와 함께 카카오와 우리의 관계를 생각해보았다.
아낌없이 주는 카카오나무
'지금 빨리 신청해야 무제한 무료통화를 할 수 있대!' 초등학교 6학년 때, 메시지 하나가 단체톡방에 날아왔다. 통신요금이 무제한 무료라니! 노란 배경 위 초콜릿 색 날개 이미지가 기억에 남는다. 2012년 6월, 카카오가 테스터를 모집한다며 보이스톡 서비스를 내놓았을 때의 기억이다. 스마트폰이 막 대중화되기 시작했던 당시, 우리에게 카카오는 무료로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존재였다. 사실 음성채팅 기능은 이미 컴퓨터상에도 존재했지만, 대중성이 확보된 카카오의 보이스톡 도입은 혁신적이었고, 실제로 통신사들은 수입 감소를 걱정해 이를 반대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의 내 눈에 카카오는 잇속만 챙기는 통신사들과 싸우는 정의로운,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비춰졌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되고, 학업에 집중하겠다며 핸드폰 매장에서 2G폰을 찾았다. 수험생폰, 실버폰과 같은 이름을 달고 나온 차세대 폴더폰에는 무려 카카오톡만을 위한 물리 버튼이 달려 있었다. 앱 스토어에서 다운받을 수 있는 무료 어플 따위가 휴대전화의 기본 기능인 전화, 문자, 카메라와 동급으로 인정받은 모양이었다. '그럼 카카오톡은 무조건 써야 하는 거잖아?' 파란 삼성 로고의 전화기 위에 혼자서 튀는 노란 카카오톡 버튼에서 묘한 위화감과 강압이 느껴졌다. 2020년 현재, 우리는 카카오톡 없이는 사회에서 살아가기 어려울 지경에 놓였다. 학교나 직장에서는 카카오톡으로 공지사항을 전달하고, 사진과 문서를 전달하고, 회의와 투표를 진행한다. 카카오톡 프로필과 배경사진 이력은 소개팅에서 '첫인상'을 결정한다. 새로운 단체에 가입할 때면 카카오톡으로 처음 통성명을 하고, 모임 장소와 날짜도 카카오톡으로 전달받는다. 현대인에게 이 노란 앱은 단순 수다를 위한 메신저를 넘어 윤택한 삶을 위해 필수적인 존재가 되었다.
누가 우리에게 족쇄를 채웠나
카카오톡의 존재가 언제나 반가운 것은 아니다. 언제 어디서든 연락할 수 있다는 편리함은 도리어 '연락 족쇄'가 되어 돌아왔다. 내 메시지에는 대답하지 않던 친구가 프로필 사진을 바꿨음을 발견하는 경험은 썩 유쾌하지 못하다. 그것을 알기에 쌓인 연락들에 답장하기 전에는 마음대로 SNS에 글을 올리지 못한다는 것도 짜증나는 일이다. 우리는 종종 '읽씹(읽고 무시하기)'과 '안읽씹(안 읽고 무시하기)' 중 어떤 것이 나은지에 대한 토론을 펼친다. 할 말이 없어도 대답하지 못하면 죄가 되기 때문이다. 답장하는 데 몇 초나 걸린다고 그러냐며 나무랄 수만은 없다. 과거의 연락 수단이었던 전화 통화는 맺고 끊음이 확실했다. 직접 만나는 것은 경계가 더 분명했다. 하지만 카카오톡은 늘 나를 세상과 이어주기 때문에 집에 돌아와서도 그들과 함께하는 기분을 선사한다. 어느새 우리는 '모를 권리', '연결되지 않을 자유'를 잃었다.
연락 자체에 목메는 것이 싫어서 어플을 삭제해보기도 했다. 생각보다 많은 친구의 번호가 없었고, 번호가 있어도 문자와 전화만으로는 소통에 한계가 있었다. 학급 공지 톡방에 올라온 수행평가 알림을 보지 못해 꼼짝없이 0점을 받을 뻔한 사건이 터졌고, 결국 3일도 버티지 못하고 카카오톡을 다시 설치했다.
카카오의 성장은 끝나지 않았다
카카오톡으로 입지를 다진 카카오는 카카오택시, 카카오뱅크, 카카오 선물하기와 메이커스, 카카오 페이지 등 금융, 교통, 그리고 문화까지 손을 뻗어가고 있다. 이제 계좌번호를 몰라도 송금할 수 있다는 편리함에 카카오페이에 돈을 맡겼고, 위치정보를 켜고 카카오 맵으로 길을 찾으며, 택시는 안전하고 빠른 카카오택시를 고집한다. 매일 알려주는 생일목록과 카카오 선물하기 덕분에 모든 친구들의 생일을 챙기게 되었지만 외우고 있던 날짜들은 거의 잊어버렸다. 다음과 병합된 후 등장한 샵(#)검색과 인앱 브라우저 기능은 네이버의 검색엔진을 선호하지만 예상외로 편리해서 애용 중이다. 이번 if (kakao) 2020에서는 상품 렌탈, 다양한 서비스 정기대행과 콘텐츠 구독 사업까지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고, 신분증과 자격증을 담는 지갑 기능 도입을 예고하기도 했다. 심지어 카카오톡 채널은 단순 고객상담 대화창을 넘어 채널마다 다른 기능을 담을 수 있어 사업자가 따로 앱을 만들지 않아도 되도록 개편한다고 한다. 새로운 카카오 2.0이 가져올 세상이 기대되는 한편, 이러다가 카카오에 우리가 잡아먹히는 건 아닌가 하는 이상한 걱정도 든다. 앞으로는 카카오톡이 아니라 '카카오'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이 될지도 모른다.
오소리를 비난할 수 없는 원숭이
이쯤에서 초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웠던 원숭이 꽃신 이야기가 떠오른다. 맨발로,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던 원숭이는 오소리에게 꽃신을 선물 받는다. 꽃신은 나무를 오를 때는 불편했지만 딱딱한 돌 위를 걸을 때는 편안했다. 원숭이는 좋은 선물을 해 준 오소리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매일같이 꽃신을 신고 다녔다. 오소리는 선물한 꽃신이 닳을 때가 되면 다시 새 꽃신을 선물했다. 시간이 흘러 원숭이의 발바닥은 결국 굳은살이 사라지고 보드라워져 이제 맨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오소리는 갑자기 꽃신을 만들기 어렵다며 원숭이에게 꽃신값을 요구했고, 꽃신 없이는 살 수 없게 된 원숭이는 계속해서 오소리의 요구를 들어주다 결국 오소리의 노예로 전락한다. 무료 문자와 전화라며 신나게 카카오톡을 환영하다 이제는 카카오의 손에 휘둘릴 위험에 놓인 우리의 모습이 꼭 원숭이를 닮았다. 그렇다고 카카오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들은 사회를 망치겠다는 음모를 품고 나타난 악당이 아니다. 사람들의 소통과 연결을 위해 노력한 착실한 IT기업일 뿐이다. 심지어 이번 if kakao 2020의 오프닝 키노트에서 카카오는 성공한 대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고뇌의 흔적들을 보여줬다. 이야기 속 오소리도 처음에는 진심으로 원숭이를 위한 마음에 꽃신을 선물했다고 생각해보자. 정말 재료를 구하기 어려워졌을 수도 있고 꽃신 만드는 방법이 원숭이에게 알려주기엔 너무 복잡했을 수도 있다. 언제까지나 원숭이에게 무료로 꽃신을 줄 수는 없었을 뿐이다.
오소리보다는 원숭이의 안일함을 되짚어 보아야 한다. 원숭이는 꽃신의 편안함에 취해 딱딱했던 발바닥이 보드라워지는 것도 모르고 주야장천 꽃신을 신고 다녔다. 돌밭을 지날 때 도움이 되는 꽃신은, 나무를 오를 때는 벗어야 했다. 원숭이가 꽃신을 유용한 도구로 현명하게 사용했다면, 둘은 친한 친구 사이로 남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과학기술과 꽃신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주체적으로 꽃신을 활용해야 한다. 달콤한 꽃신의 유혹은 카카오톡뿐만 아니라 편리한 삶을 위해 존재하는 과학기술 전반에 숨어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이 불러온 변화의 물결은 너무나도 빨라서 우리는 눈 깜짝할 새에 이미 상당한 굳은살들을 잃어버렸다. 많은 SF영화가 상상 속 디스토피아의 요소로 삼은 자율주행 자동차, 사물인터넷, 가상현실과 인공지능은 어느새 생활 속에 스며들어 있다. 혹시 원숭이처럼 안일하게 카카오의 서비스들을, 과학기술이 제공하는 편리함만을 즐기고 있지는 않은가? 도구를 알고 사용하는 것과 모르고 사용하는 것은 다르다. 눈앞에 놓인 꽃신을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사용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덧붙이는 글 | if (kakao) 2020 은 https://if.kakao.com/session 에서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원숭이 꽃신 이야기는 정휘창 선생님의 창작동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