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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뉴스룸에 출연한 문재인, 말의 무게에서 자유로워지기를


문재인 전 대표가 정말로 오랜만에 출연한 오늘의 뉴스룸 인터뷰는 참으로 답답한 시간이었다. 문제의 발단은, 손석희가 알려진 정보가 턱없이 부족한 친박계의 꼼수(박근혜의 질서있는 퇴진)를 문재인에게 물어본 것에서 시작됐다. 문재인은 친박계의 꼼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손석희의 질문에 즉각적이고 조건없는 퇴진이면 탄핵보다 낫다고 말했다. 이에 손석희는 박근혜의 퇴진이 이루어지면 조기대선으로 가는 것이냐고 물었고, 문재인은 그렇다고 답했다. 





다만 문재인은 박근혜의 퇴진 후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르면 일부 정당이나 후보들이 불리할 수 있기 때문에 시일을 더 늘리라는 국민의 뜻이 모아지면 그에 따를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문재인이 이런 말을 덧붙인 것은 조기대선이 치러지면 지지율이 1위인 자신이 최대수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국민이 공정한 경쟁을 원할 경우 대선 유세기간을 늘리는 불리함도 받아들이겠다는 뜻이었다(헌법은 모든 국민이 지켜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국민이 국가에게 지키라고 명령하는 것이기도 하다. 문재인의 발언이 반헌법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국민의 뜻이 헌법보다 앞서며, 개정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전문적인 지식과 심도있는 토론이 필요하지만 사회적 합의가 모아진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손석희는 세간에 떠도는 얘기들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던 문재인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그가 한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조기대선이 늦어지면 JTBC가 방송재허가 심사에서 보복당할 것이 걱정됐을 수도 있다. 그래서 손석희는 헌법에 나온 대로 조기대선을 치르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지 않느냐고 계속해서 되물었다. 손석희는 인터뷰의 마지막에도 똑같은 질문을 문재인에게 던졌던 것도 이 세 가지 이유 중 하나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손석희 앵커가 손님으로 나온 문재인에게 불편할 정도로 똑같은 질문을 집요하게 던질 이유가 없다. 문재인 전 대표가 선의로 한 말을 손석희는 의심하거나 받아들이기 힘들 수밖에 없었던 것인데,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없는 손석희의 입장에서는 문재인의 선의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수 있다. 필자의 입장에서는 지독하게 답답했지만, 그가 문재인의 말을 선의로 해석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필자가 이번 글에서 말하고 싶은 것이 바로 여기서 나온다. 



말의 무게. '정치는 생물'이라며 어제 한 말도 오늘에는 얼마든지 뒤집어버리는 박지원과 일반 정치인들과는 달리, 문재인은 말 한마디에도 무제한적인 책임을 강요 받아왔기 때문에 두려움없이 내놓아도 되는 말에도 위축되는 경향이 있다. 오늘도 대선에서의 불이익도 감수하겠다는 자신의 말을 손석희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결정할 수 없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자, 자신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 터놓고 말하면 될 것을 끝내 마음에만 담아두었다. 





문재인은 아마도 조기대선이 자신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공정한 경쟁을 위해 경선일정을 늘리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하면 이미 대통령이나 된 듯한 교만함으로 비칠까 걱정했던 것 같다. 어떤 말을 하던 무제한적인 책임을 강요받거나 무한대로 왜곡되기 일쑤이니 터놓고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치에서 말이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나고, 자신의 리더십이 신뢰에 바탕하기 때문에 말의 무게는 문재인이 극복해야 할 가장 큰 장벽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노무현이 거의 모든 (허벌나게 무식한) 기득권으로부터 융단포격을 받은 것은 서민의 언어를 고집했다는 것에 있었지 않은가. 어떤 대통령도 노무현처럼 말의 무게에 짓눌려본 적이 있었던가. 그런 노무현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오랫동안 함께 하면서, 성공과 좌절의 모든 것을 지켜보았던 문재인마저도 똑같이 말의 무게에 짓눌리고 있으니 속을 터놓고 말한다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극복하기 힘든 장벽임에는 틀림없다. 



바로 이런 이유들로 해서, 필자가 문재인에게 바라는 것은 말의 무게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지라는 것이다. 문재인의 리더십을 파괴하거나 무너뜨릴 정도가 아니라면 말의 무게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더더욱 정치란 확정되지 않은 내일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며, 그 시작이 말이라는 점에서 말의 무게에 짓눌리는 것은 최악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위대한 정치인도 자신이 한 말을 모두 다 지켜야 했다면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것이며, 이는 노무현도 마찬가지였다. 



조금은 뻔뻔해질 필요도 있다. 정확히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로 자신의 기회주의적 처신에 자가면죄부를 발행하는 것이 특기인 박지원 같아서는 안 되지만, 거침없이 말해야 할 때는 말의 무게는 잠시라도 내려놓아도 된다. 노무현 같은 폭발력(이런 정치인은 다시 나오지 못할 것이기에)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열정을 토해내는 모습을 보다 많이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란다. 말의 무게에 짓눌려 있기에는 청산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