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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그리스

아폴론과 카산드라, 누가 국민을 카산드라로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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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위기를 필두로 시작된 그리스 경제 위기 당시 두 명의 전직 장관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한 명은 2001년 연금 개혁안을 내놓았다가 여야 모두의 비난으로 장관직에서 물러나야 했던 타소스 야니치스 전 노동장관이었고 또 한 명은 야니치스 노동장관의 개혁안을 유일하게 찬성했던 알레코스 파파도풀로스 전 재무장관이었다. 이들은 오래 전부터 그리스의 경제 위기를 예견하고 기득권층의 희생을 전제로 한 개혁안을 내놓았지만 동료 정치인들에게 외면당하기 일쑤였고 심지어는 심한 구타와 욕설까지 들어야 했다. 이들의 예견을 무시했던 그리스 정부는 경제 위기의 긴 나락으로 추락했고 세계 언론은 이 두 전직 장관을 카산드라 정치인이라고 불렀다. 비단 그리스의 이 두 정치인만 카산드라일까? 세월호 참사와 경주 지진을 겪으면서 우리나라 국민들도 카산드라 국민이 되고 말았다. 도대체 누가 우리나라 국민들을 카산드라로 만들었을까?

 

트로이의 목마를 예언한 카산드라, 그러나

 

그리스 신화 속 카산드라Cassandra는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을 지녔지만 이 예언을 아무도 믿지 않는 운명을 지닌 인물이다. 여기에서 나온 말이 카산드라 콤플렉스. 즉 예언이 맞지만 어느 누구도 믿지 않는 혹은 믿고 싶지 않은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 카산드라가 예언한 것은 트로이의 목마뿐만이 아니었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로 인해 일어날 전쟁과 트로이 전쟁 때 그리스 연합군의 총지휘관이었던 아가멤논의 죽음 등을 예언했다. 문제는 아무도 카산드라의 예언을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아테네 신전에서 아이아스에게 겁탈당하는 카산드라. 사진>구글 검색

 

카산드라는 트로이의 프리아모스 왕과 헤카베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헬레노스Helenus와는 쌍둥이 남매지간이었다. 둘 다 예언 능력을 지녔지만 둘의 운명은 정반대였다. 헬레노스가 그리스 연합군의 포로가 되어 트로이 전쟁의 승리를 이끌 운명이었지만 카산드라는 어느 누구도 그녀의 예언을 믿지 않아 패배의 단초(?)를 제공할 운명이었다. 트로이의 왕자인 헥토르와 파리스의 형제이기도 한 이 쌍둥이 남매가 예언 능력을 갖게 된 데는 아주 어릴 적 일이었다. 아폴론 신전에 남겨진 일이 있었는데 남매가 발견될 당시 뱀들이 아이들의 귀를 핥고 있었다고 한다. 아폴론이 누구인가? 신탁으로 유명한 델포이 신전의 주인이 아닌가. 이 남매는 이 일이 있은 후 귀가 정화되어 예언 능력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헬레노스와 달리 카산드라는 훗날 예언 능력을 지녔지만 어느 누구도 그녀의 예언을 믿지 않는 운명으로 바뀌었다. 아폴론의 사랑을 거부한 탓이었다. 카산드라가 아폴론 신전에서 하룻밤을 보내던 날, 아폴론이 다가와 그녀를 안으려는 순간 카산드라는 완강히 거부하였고 이에 화가 난 아폴론은 카산드라의 예언에서 설득력을 빼앗고 말았다. 즉 카산드라의 예언이 맞지만 듣는 사람을 설득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여러 차례 트로이 전쟁을 예언했지만 어느 누구도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끝내 트로이는 그리스 연합군에게 함락되고 말았다.

 

그녀의 예언이 더욱 더 슬픈 것은 탁월한 예언 능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운명조차도 바꾸지 못했다는 것이다.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녀의 예언대로 트로이는 멸망했고 카산드라는 아테네 신전으로 몸을 피했지만 트로이 목마 속 40명의 장수 중에 한 명인 아이아스에게 발견되어 겁탈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자신의 신전에서 이런 불충한 일이 발생한 데 화가 난 아테네 여신은 제우스와 포세이돈의 도움을 받아 트로이 함락 후 귀국길에 오른 아이아스의 배를 침몰시켜 버렸고 아이아스는 배와 함께 익사하고 말았다. 아이아스의 죽음으로 자유의 몸이 된 듯한 카산드라는 이후 다시 아가멤논의 차지가 되어 미케네로 가게 되는데 그녀가 예언했듯이 카산드라와 아가멤논은 아가멤논의 부인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누가 국민을 카산드라로 만드는가

 

국내 역사상 최대의 참사로 일컬어지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2년이 훌쩍 넘었다. 당시 국민들은 분노했고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한 안전 시스템을 구축할 것을 요구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또 다시 안전 사고는 반복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까지도 진상 규명은 물론이고 어떤 안전 대책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 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이번 경주 지진으로 정부의 안전 불감증은 극에 달하고 말았다. 카산드라의 예언을 어느 누구도 믿지 않았던 것처럼 정부와 정치권은 우리 국민들의 예견된 참사를 막아달라는 절절한 요구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경주 지진으로 또 다시 정부와 정치권은 호들갑을 떨기 바쁘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그랬던 것처럼 이번 경주 지진을 교훈 삼아 사회 전반에 걸쳐 제대로 된 안전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한다면 미래의 우리 사회는 더 큰 재앙과 참사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누가 국민을 카산드라로 만들고 있는가! 국민이 카산드라가 아닌 예견된 불안한 미래와 싸울 일 없는 평범한 일상을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국가와 정부, 정치권의 진정한 의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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