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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평생 한 남자만을 기다려온 여인에의 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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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죽도 그늘 아래/성석제/1998년

 

협죽도. 얼핏 들으면 무협소설에 나오는 명검 중의 하나인가 싶을 것이다. 잘 어울릴 것 같지는 않지만 협죽도는 협죽도과의 상록관목이란다. 시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최근 협죽도 관련 뉴스를 접한 적이 있을 것이다. 협죽도는 아무데서나 잘 자라고 공해에 강하기 때문에 몇몇 지자체에서 가로수로 조경하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협죽도 특성상 가로수로는 제격일지 모르지만 독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협죽도는 아주 미량만 사용해도 치사율이 높아 과거 독화살이나 사약으로 이용했다. 이런 사실을 모른 채 관상용으로 심어온 지자체들이 협죽도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가로수로 조경된 협죽도 관련 피해사례가 보고된 적은 없지만 안전을 위해 점차 제거해 나가야 한다고 시민들은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민간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협죽도의 독성에 대해 알고 있었던 듯 하다. 성석제의 소설 <협죽도 그늘 아래>를 보면 그렇다.

 

어느 때에 소풍을 간 아이들 가운데 하나가 젓가락이 없었다. 그래서 가까이 있는 협죽도의 가지를 꺾어서 젓가락으로 만들어 김밥을 먹었다. 그 아이가 다음 날 죽었다. 그때부터 그렇게 믿게 되었다고 한다. 협죽도 그늘 아래에 잠이 들었다가 꺾어진 가지에서 흘러나온 즙이 벌린 입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영영 깨어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아이들 사이에 널러 퍼져 있다. 꽃가루만으로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한다. 길가에 흔하디흔하게 핀 협죽도가 아이들에게는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이승과 저승에서 모두 바라볼 수 있는 꽃으로 여겨지고 있다. -<협죽도 그늘 아래> 중에서-

 

 

이런 협죽도 아래서 단 한 사람만을 기다려온 여인이 있다니 그 기다림이 협죽도의 독성만큼이나 비장하게 느껴진다. 성석제의 소설 <협죽도 그늘 아래>를 요즘 세태로 해석한다면 답답하기 그지 없을 것 같다. 사랑도 일회용 면도기처럼 한 번 쓰고 버리는 세상에 죽었는지도 살았는지도 모른 남편을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기다려 왔다니 답답함을 넘어 안쓰럽기까지 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작가는 이 답답한 여인에게서 끝까지 시선을 떼지 못한다.

 

소설은 한 여자가 앉아 있다. 가시리로 가는 길목, 협죽도 그늘 아래라는 문장이 처음부터 끝까지 수 차례 반복된다. 정지된 시간 속의 풍경처럼 굳어버린 그녀의 삶이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표현이기도 하다. 독자에 따라서는 이런 구시대적 여인상이 뭐 그리 대단해서 소설의 소재가 되었을까 싶겠지만 작가는 이렇듯 답답한 여인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보여주려는 듯 하다. 어쩌면 50년을 답답하게(?) 살아온 여인에의 존경을 담은 헌사가 아닐까 싶다. 그래도 여전히 궁금하다. 어쩌다 이 여인은 협죽도가 그려진 수채화의 풍경이 되었을까?

 

여인의 삶은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국전쟁이라는 아픈 역사를 끝내 지우지 못하고 살았던 것이다. 한국전쟁 때문에 이 여인을 스무 살에 시집와 처녀로 늙어버린 기구한 삶을 산 것이다. 전쟁이 터지고 인민군이 마을에 들어오자 시아버지는 서울에서 공부하던 남편을 보호하기 위해 인민위원장이 되었다. 하지만 다시 세상이 바뀌자 시댁 식구들은 부역을 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고 여인의 남편은 학병 입대를 자원했다. 그렇게 전쟁터에 나간 남편은 행방불명이 되고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 남편을 여인은 50년 넘게 기다려왔던 것이다

 

그러나 가시리에서 여자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은 누가 감히 여자의 집에서 도둑질을 할수 있겠느냐고 말한다. 도둑질한다고 해서 도둑질할 수도 없는 것을 가져가서 무엇에 쓰겠는가. 협죽도도 안다. 협죽도에게 물어보라. 수국에게 물으라. 남의 삶을 도둑질할 수 있는가. 있다면 그걸 어디다 쓰겠는가고. 여자는 자신의 일생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 -<협죽도 그늘 아래> 중에서-

 

사망통지서도 없고 그렇다고 살아있다는 확신도 없는 행방불명된 그들을 기다린 사람들이 어디 이 여인 한 명뿐일까? 요즘 돌이켜보면 이 여인의 50년은 그나마 참을 만 했으리라 생각되기도 하다. 60년 넘게 가족을 기다려온 이들이 단 몇 시간의 만남을 뒤로 하고 다시 기약할 수 없는 이별을 나누던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TV에서 볼 때마다 아픈 역사를 제대로 치유하지 못하고 그 상처를 더 곪게 하는 또 하나의 역사가 존재한다는 현실이 협죽도 아래 여인을 더 슬프고 가혹한 삶으로 내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인륜과 천륜마저도 정치논리의 장 속으로 가두어 버리는 현실. 협죽도보다 더한 독성을품고 여인과 하나의 풍경이 되어버린 현실. 하지만 시간은 더 이상의 기다림을 기다려주지 못하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이데올로기를 넘어 무수히 많은 이들의 절박한 현실을 따뜻하게 보듬어 줄 수 있는 정치. 더 이상 기대나 희망의 수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아직은 앉아 있을 한 여인을 위해.

 

‘아직은 한 여자가 앉아 있다. 가시리로 가는 길목, 협죽도 그늘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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