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 아이의 50일 사진을 보내드렸다. 닳아지도록 보고 또 보신다.

저리 좋을까. 설 연휴 첫날 아들이 찾아왔는데, 엄마는 하루 종일 스마트폰 삼매경이다. 손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톡톡 치면서 계속 웃으신다. "몇 번이나 봤으면서, 또 봐요?" "꾀꼬리 소리 내는 것 봐. 너무 귀엽잖아." 내 핀잔에도 아랑곳하지 않으신다. "엄마, 가스레인지에 국 넘쳐요." 그제야 몸을 움직이신다.

스마트폰 화면에는 엄마의 손주, 다시 말해 내 아이의 영상이 담겨있다. 아내가 한 달 전부터 엄마한테 1~2분짜리 영상 네다섯 개를 보냈다. 아빠에 따르면, 엄마는 하루 종일 손주 영상에 푹 빠져있단다. 운영하고 있는 노래방에서도 손님이 없을 땐 스마트폰 속 아이와 시간을 보낸다.

그런 엄마의 모습이 안쓰러워, 영상통화를 주선했다. 아이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낄낄 웃으신다. 엄마는 영상통화 후 영상을 ‘카톡’으로 보내달라고 하신다. "영상통화는 동영상처럼 저장할 수 없어요." 엄마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아이는 부모님의 첫 손주다. 그래서 그런지 손주 사랑이 대단하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이가 금방 크니 아이 옷을 많이 사지 마세요”라고 당부 드렸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걸 못 참고 겨울 내복을 잔뜩 사오셨다.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몇 번 입히지 못했는데, 벌써 겨울의 끝자락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를 기르면서, 부모님 생각을 많이 한다. 난 부모님에게 참 무뚝뚝한 아이였다. 좋게 말하면 독립적이었다고 할까. 대학 입시 때 부모님께 대학 합격증만 가져다드렸다. 어떤 대학에 갈지, 어떤 과에 갈지 단 한 번도 상의하지 않았다. 살면서 내가 먼저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드린 건, 손에 꼽을 정도다. 결혼한 뒤 나는 본가에 가기 귀찮아했고, 아내가 나를 끌고 본가로 가야 했다. 나 같이 무뚝뚝한 아들도 있을까 싶다.

아이를 보니, 그제야 부모님께 더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 서른넷에 효자 났다. 부모님께 더 살갑게 하고 전화도 자주 드리고 싶지만, 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건 무엇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글러먹었으니, 아이를 할머니·할아버지께 잘하는 손주로 만들자는 전략을 짰다. ‘우선, 아이를 부모님께 자주 보여드리자.’

이번 설 연휴 때 부모님은 손주를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포항 처가에 있었다. 갓난아이를 데리고 안양 본가에 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차표를 구하지 못했다는 핑계 아닌 핑계도 댔다. 무엇보다 가장 큰 건 내 의지 부족일 게다. 역시 난 무뚝뚝한 불효자다.

설 연휴 내내 부모님이 스마트폰 속 아이를 그리워하고 있을 때, 난 처가에서 아이와 한 달 만에 상봉한 후 함께 뒹굴었다. 그러던 엊그제, 아내가 내게 다가와 슬쩍 귀띔했다. “하루 일찍 올라가는 기차표를 구했어요.” 미리 연락을 하지 않고, 갑작스럽게 안양 본가의 문을 두드리겠단다. 무심한 아들은 머리만 긁적이고 있을 때, 오히려 며느리가 부모님 생각을 한 것이다. 고맙고 미안했다.

갑작스럽게 감동을 받은 나는 아내에게 “우리 아이는 나처럼 말고, 부모 생각을 많이 하는 아이로 키웁시다, 특히 엄마한테 잘하는 녀석으로 교육시킬게요”라고 말했다. 아내는 말했다. “아들은 결혼하면 남이야. 당신을 봐. 난 내 아들을 키우는 게 아니라, 며느리의 남편을 키우는 거예요.” 

아들아, 부디 넌 아빠를 닮지 말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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