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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과 SNS의 역설, 희망의 단초되나?



미국 국방부에서 내부통신용으로 만들었던 인터넷이 민간에 이전된 이후 사이버 세상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이루었습니다. 바퀴와 시계, 내연기관과 분업화된 포드의 생산라인, 활자와 세탁기 등이 세상을 바꾼 것에 비해 인터넷이 바꾼 세상은 여러 가지 면에서 미흡하다는 것이 대세를 이루었습니다.





1990년대 말 미국과 일본, 영국과 한국 등에서 벤처거품이 폭발하면서 짧은 경제위기를 초래했던 것도 인터넷과 정보통신기술이 약속한 세상이 장밋빛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폭발적으로 성장한 SNS까지 더해지면서 ‘인터넷과 SNS의 역설’까지 등장했습니다.



2010년 튀니지에서 시작된 ‘자스민 혁명’이 아랍을 들끓게 했지만,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참혹한 실패로 귀결되면서 ‘인터넷과 SNS의 역설’이 강화됐습니다. 제도권 언론을 대체할 것 같았던 블로그의 열기도 한여름 밤의 꿈처럼 벤처거품의 폭발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사이버세상의 부작용이 갈수록 쌓이고 축적되는 가운데, 빅브라더의 출현까지 고민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네트워크 효과란 초국적기업을 위한 전가의 보도가 됐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출현은 인류 진화의 과정을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기에 이르렀습니다.





헌데 말입니다, ‘인터넷과 SNS의 역설’이 세상을 뒤엎는 가운데서 묘한 변화가 감지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밝히기 힘들었던 권력과 자본의 심부에서 벌어진 일들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빅브라더의 출현은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점점 확실해지고 있습니다.



아직도 인터넷과 SNS은 극도로 혼탁하지만, 그런 혼탁함 속에서 권력과 자본이 남긴 쓰레기와 악취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난 수백 년 간 쌓여온 기득권의 벽이 여전히 높지만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의 대선개입도 밝혀졌고, 현직 부장판사의 일베충 같은 댓글도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빛의 속도로 세계를 질주하는 것은 최상위 1%의 전유물 같았는데, 이제는 그런 파시즘적 속도에 99%가 익숙해지면서 정치적 평등의 실현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모든 철학과 지식, 과학기술의 최종 목적지가 완전한 자유의 실현이라면 ‘인터넷과 SNS의 역설’이 이를 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희망의 단초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직 막말과 거친 표현이 난무하는 ‘인터넷과 SNS의 역설’이 사회경제적 평등까지 이끌어낼지 알 수 없지만, 사회경제적 평등에서 출발하는 민주주의가 역설의 최고 경지에 이르러 정치적 평등을 시작으로 사회경제적 평등을 이루어내지 말라는 법도 없을 듯합니다.



자본주의의 폭주가 신자유주의로 옷을 갈아입으면서 완전히 뒤집힌 세상이 내부로부터 무너져 내리면서, 지그문트 바우만의 성찰처럼 ‘액체근대’나 ‘유동하는 공포’로 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갈수록 정형화된 것들이 무너져 내리는 것에서 추론할 수 있듯이 제멋대로 출렁이는 세상이 제자리를 잡을지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수많은 병과 잠시도 홀로 둘 수 없는 어머님 때문에 집과 병원과 마트만 왔다 갔다 하는 필자가 지적 여행(최근에는 철학의 형이상학에 빠져서 헤매고 있지만)을 계속하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음도 ‘인터넷과 SNS의 역설’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제임스 베니거가 《통제혁명》에서 자세히 다루었듯이, 우주의 탄생과 진화의 역사가 보여준 것처럼, 최상위 1%가 작금의 혼란을 통제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최근에 들어서 ‘인터넷과 SNS의 역설’이 새로운 역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입니다.





이런 추세가 니콜라스 카의 《유리감옥》과 한병철의 《투명사회》의 디스토피아로 갈지, 아니면 뒤집힌 세상을 또 한 번 뒤집는 역설을 보여줄지 알 수 없지만, 인터넷과 SNS에 부정적이었던 필자가 ‘인터넷과 SNS의 역설’에서 처음으로 희망을 봤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인원이 처올린 뼛조각이 우주선이 될 수 있다는 스탠리 큐브릭의 놀라운 영상미처럼.



돈의 크기와 상관없이 저를 후원해주시는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합니다. 제가 힘겨운 투병에서 짧은 승리를 이어가면서 삶의 역동을 경험할 수 있음도 ‘인터넷과 SNS의 역설’이 가져다준 고마움이 아닐까 합니다. 가끔은, 정말 가끔은 세상이 지금보다 나은 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희망에 빠져봅니다.



이명박근혜 정부 7년 동안 대한민국 곳곳에 쓰레기들이 넘쳐나고 있지만, 이들을 하나씩 걸러내고 있음에 힘을 내봅니다. 희망과 절망의 비율이 1대 99라고 해도 1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면 희망의 대가로 견뎌내야 할 압도적인 절망도 이겨낼 수 있다고 봅니다.



《제국》과 《다중》의 저자 안토니오 네그리는 《전복적 스피노자》에서 “민주주의는 두려움의 제거뿐만 아니라 더욱 높은 형태의 자유의 구성을 목적으로 하는,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어쩌면 ’인터넷과 SNS의 역설‘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증거를 보내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