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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우리는 앞으로 3년을 더 속고 당해야 한다




공약 파기를 밥 먹듯이 하는 박근혜 정부의 거짓말이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노인을 속이고, 대학생을 속이고, 아이들의 부모를 속인 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연말정산을 해야 하는 모든 근로자들을 속였다. 정부가 복지를 위해 증세가 필요하다고 솔직히 고백한 후, MB의 부자감세를 철회하고, 누진적 부자증세부터 시작해 대상의 폭을 늘려가야 함에도 꼼수에 꼼수를 더한 채 사실상의 서민증세만 계속하고 있다.





경제수장인 최경환 부총리는 긴급기자회견에서도 올해는 이대로 진행하고 내년부터 수정·보완해 적용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내년에도 안 하겠다는 얘기다. 최경환 부총리가 그때까지 경제수장에 있을지, 매일같이 거짓말을 하는 정부가 1년 전(오늘)에 한 약속을 지킬 것인지 어떻게 신뢰할 수 있단 말인가? 



유리지갑은 세원이 투명하게 공개돼 있기 때문에, 대상이 수백만 명에 이른다 해도 다양한 형태의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는 것은 거의 비용이 들지도 않는다. 따라서 정부가 사전에 수십 차례의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지 않은 채 연말정산을 강행했다면 해당부처의 담당자들은 모두 다 처벌을 받아야 한다. 



국회속기록에서도 이번 연말정산의 문제점을 지적한 발언이 나와 있으니, 주무부처 수장인 최경환 부총리를 비롯해 당청정이 연말정산의 문제점을 몰랐다는 것은 변명도 될 수 없다. 제일 만만한 것이 촛불조차도 들지 못하는 유리지갑이라는 사실은 이제 상식의 수준에 속한다.





이에 반해 노무현 대통령은 지지율 하락에도 불구하고 종부세를 도입했다. 종부세는 대표적인 누진적 부자증세로 조세정의를 실현한 대표적인 세금이다. 종부세는 특히 세원이 적은 지자체의 재정에 큰 효자노릇을 했고 빈부격차 해소와 지역발전에도 일조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까지 당하게 된 실질적인 이유가 종부세였음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국민들은 탄핵의 이유로 부동산 대란과 경제위기를 떠올리는데, 계량경제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과 통계청 등의 통계를 찾아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중동을 핵심으로 한겨레와 경향신문, 지상파 3사까지 노무현 정부를 비판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런 지속적이고 악의적인 왜곡을 바탕으로 조중동을 필두로 한 메이저 언론과 지상파 3사의 융단폭격에 살아남을 수 있는 정부란 없다. 경제연구소들이 종부세 때문에 피해를 본 오너와 대주주, 경영진들을 대신해 각종 수치를 마사지해 논리적 근거를 제시해준 것도 융단폭격을 가능하게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한 것은 분명하지만, 앞뒤가 잘린 채 언론을 도배한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자조적인 발언이 결코 허언이 아니었음은 이런 융단폭격 앞에 진보적 권력과 4대개혁입법이란 한 여름밤의 꿈보다 못하다는 것으로 귀결된 데서 분명하게 입증됐다. 



진보적 성향의 대통령이었으면서도 성장과 분배를 맞추려는 통합적인 노력이 '좌측 깜박이를 킨 채 우회전'한 진보정권의 혼란으로 좌우 양측에서 맹비난을 받았으니, 참여정부의 후반부가 보수화된 기득권의 승리로 귀결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빨갱이 소리까지 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도가 국정수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떨어진 것은 부수적 피해에 불과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제일 먼저 손을 본 것이 참여정부 최대 치적 중 하나인 종부세의 무력화였다. 강만수가 지휘를 하고 나성린이 총대를 맨 채 조중동과 지상파 3사의 압도적인 지원을 받은 이명박 정부와 여당은 국민 60% 이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종부세를 무력화시키는데 성공했다.       





이렇게 참여정부가 실패한 정부로 기록되면서 대한민국은 보수화의 길로 확고하게 접어들었다.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도 보수화의 심화를 불러왔다. 특히 안보와 경제 분야의 보수화는 종부세의 무력화만이 아니라 부정적 세계화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각국 정부가 노력할 때, 대한민국 정부가 정반대로 달려 나갈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



그렇게 역주행한 7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부의 불평등은 더욱 커졌고, 재벌은 천문학적인 사내유보금을 보유하게 됐고, 사회이동성은 극도로 떨어졌고, 서민들의 소득은 줄었고, 각종 세금은 늘었으며, 대형사고와 반인륜적 범죄가 증가하고, 실업자와 삼포세대는 누적됐고, 노인빈곤은 세계 최고에 이르렀다.



한반도의 전쟁위협은 계속해서 올라갔고, 미국 무기의 수입은 끝없이 이어졌고, 국민의 세금은 수십조 단위로 사라졌으며, 사회적 분노와 증오는 폭발 직전에 이르렀지만, 종북이니 빨갱이만 운운하면 정부의 잘못과 거짓말, 공약 파기와 정책 실패는 면죄부를 받았다.



야당은 7년 내내 새누리당 2중대라는 욕을 먹었고, 가운데로 옮긴다며 중도보수화됐고, 이제는 정체성과 전투력도 없는 야당이 됐으며, 언론의 냉대 속에 전당대회는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했다. 그 과정에서 참여정부 출신의 인사들은 친노 강경파라는 이유로 죽일 놈의 계파가 됐다.





중도보수화의 대명사였던 정동영이 새정치민주연합이 보수화됐다고 말할 정도면 더 말해야 무엇하랴. 문제는 이런 와중에 대한민국 전체가 한층 더 오른쪽으로 옮겨졌다는데 있다. 사회가 1대 99로 재편되는 마당에 대한민국은 상위 1%을 정당화해주는 보수화와 기업화(=자본화) 때문에 세습자본주의가 고착화됐다.



그 결과는 사회경제적 평등에서 출발하는 민주주의의 퇴행으로 이어졌다. 모든 분야에서 불평등이 강화됐고, 특히 교육의 신자유주의화로 사교육비를 감당하지 못한 중산층이 하층민으로, 위로부터 내려오는 압박을 견디지 못한 하층민은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등 계층 간 빈부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국민 1인당 GDP가 3만달러를 돌파해도 서민의 수중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의 가치는 흔들리지 않는다. 청춘들은 삼포세대의 삶에 익숙해져 가고, 노인들은 과거만 얘기한다. 중장년층은 삶의 고단함에 넥타이부대라는 역사적 명칭을 내려놓았다. 그들은 여론도 민심도 주도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기득권으로 주저앉았다. 정치적인 모든 것들이 부질없어진 그들은 내일도 직장에 나서야 함으로 끝없는 인내를 내재화했고, 확실한 변명으로 삶과 인식의 보수화를 선택했다.



지난 7년은 이렇게 대한민국이 보수화되는 여정이었다.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는 구별할 수 없는 것이 됐다. 자유민주주의가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와 신보수주의의 연합이며, 그 결과가 신자유주의적 통치술이라는 것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국민의 인식이 보수화로 고착됐다. 이를 돌이키려 한다면 자유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종북좌파나 빨갱이라는 딱지가 발부된다.





이것이 우리가 앞으로 3년을 더 속고 당해야 하는 이유다. 대한민국의 보수화와 기업화는 돌아갈 수 없을 만큼 멀리 나왔다. 지난 7년 동안의 추진력이 앞으로의 전개를 결정한다면, 보수화와 기업화의 관성은 어떤 역전의 촉발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서민증세와 노동유연화, 규제완화와 정치 불신이 그 중심에서 태양처럼 빛나고 있다.  



민주주의를 앞세워 파시즘적 속도로 달려온 자본주의가 이제는 민주주의를 불편해 하며, 빛의 속도로 노동에서 이탈할 때 부정적 세계화는 시공간을 초월한 신의 권좌에 오른다. 파시즘 속도는 물리적인 저항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빛의 속도는 어떤 저항도 받지 않는다. 신자유주의는 그렇게 세상을 정복했고, 여전히 배가 고프다고 으르렁거린다. 



칸트의 묘지석에는 ‘나에게 항상 새롭고 무한한 경탄과 존경심을 일으키는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하늘에 반짝이는 별과 내 마음속의 도덕률이다’라고 적혀있지만, 적어도 향후 3년 동안의 대한민국 상공에는 ‘슈퍼클래스와 초국적기업과 보수언론의 네트워크 효과만 빛나고 있을 것이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