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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세계명작단편소설

한자를 몰라 한글 표기를 제대로 못한다는 억지, 문제는 국어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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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업/알퐁스 도데/1871년

 

'가을 바람에 기후가 평안하신지 문안 알기 바라오며, 뵈온 지 오래되니 섭섭하고 그립사옵니다. 어제 보내주신 편지 받아보니 든든하고 반갑사옵니다'

 

얼핏 보면 사대부들이 주고받았을 편지 같지만 실은 얼마 전 경매시장에 나와 화제가 된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가 5살 무렵 외숙모에게 보낸 한글 편지(아래 사진)라고 한다. 필체야 다섯 살 나이답게 졸필이지만 문장 구사력은 나이를 전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편지를 쓴 정확한 날짜는 없지만 자신을 '원손'이라고 쓴 마지막 부분을 볼 때 최소 1759년 이전 편지로 추정된다. '언문'이라고 해서 양반층 이상에서는 한글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정조 편지에서 보듯 기득권층의 한자 사대주의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폭넓게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정조의 한글 편지 뿐만 아니다. 혜경궁 홍씨의 많은 작품들도 한글로 지어졌고 최근에는 사대부들이 적은 한글 제문도 발견되기도 했다. 흔히들 '언문'을 한글을 속되게 부르는 말로 알고 있지만 충분히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언문'이란 말은 훈민정음 창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했던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가 1444년에 올린 상소문에서 한글은 "폐단 없는 이두를 고쳐 만든 야비하고 상스러우며 무익한 글자이며 문자와 조금도 관련됨이 없고 오로지 시골의 상말을 쓴 것"이라고 주장한 데서 비롯됐다. 하지만 세종도 한글을 '언문'으로 칭했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을 보면 '언문'이 '상스러운 말'이라기보다는 중국말과 구분하기 위한 우리말의 다른 이름이었을 것으로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사대부들의 주장을 아무런 비판없이 아직까지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은 한자 사대주의의 뿌리가 얼마나 깊고 공고한지를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조선 22대 임금 정조가 5살 무렵 외숙모에게 쓴 한글 편지 


잊혀질만 하면 일부에서 제기하는 '국한문 혼용' 주장도 뿌리깊은 한자 사대주의의 폐습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한문과 한글로 반상을 구별하고자 했던 것처럼 말이다. 국한문 혼용론자들은 한글전용교육 때문에 젊은층에서는 한글 표기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이들은 한글전용정책에 위헌성이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다. 이들의 주장은 대충 이렇다. 2005년에 제정된 국어기본법에서 '한자 또는 다른 외국 글자를 쓸 수 있다'는 조항은 한자를 한국어 표기문제에서 제외한 것이라며 한글과 한자를 혼용한 헌법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교육부의 교과서 한자혼용금지 규정과 한자교육배제 고시가 학생들의 학습권과 부모들의 자녀교육권을 직접적으로 제한하고 있다며 대다수 학부모들이 한자교육을 원한다는 여론조사를 그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과연 이들의 주장대로 한자나 한문을 가르치지 않아서 요즘 젊은이들이 한글 표기를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일까?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어느 언어에나 동음이의어는 존재한다. 그렇다고 그 언어들이 동음이의어를 구분하기 위해 또 다른 문자나 표기 방식을 병행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영어 시간에 수도 없이 배웠던대로 문맥을 통해 이해하면 된다. 문제는 국어 교육이다. 입시 위주의 교육 현실에서 초·중·고등학교 12년 동안 우리말을 제대로 가르치고 배웠는지부터 자문해 봐야 한다. 시나 소설 등 우리 문학 작품들을 제대로 읽고 감상해 본 기억은 아무리 시간을 되돌려도 떠오르지 않는다. 오로지 시험에 나오냐 안 나오냐만 따졌을 뿐이다. 우리말도 아닌 영어도 앞뒤 문맥을 통해 한 단어 속 다양한 의미들을 유추해내는데 한글은 그렇지 못한다는 주장은 그저 억지 주장이고 국어 교육에 대한 중요성만 새삼 부각시켜 줄 뿐이다. 법 관련 용어들처럼 어려운 한자들을 한글로 고치는 노력이 먼저지 한자를 몰라 한글 표기를 제대로 못한다는 주장은 결국 그들의 기득권 논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극단적 민족주의의 발로라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이 우리나라에서만은 여전히 감동적인 소설로 어릴 적부터 널리 읽히는 이유도 한글을 둘러싼 역사적 배경과 끊임없이 제기되는 국한문 혼용 주장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 수업>의 배경이 된 알자스는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지대로 도데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1871년 프랑스가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해 독일 영토가 된다. 문제는 이 지역 주민들은 예전부터 압도적으로 독일어를 사용했던 곳이었다. 결국 소설 속 아멜 선생이 앞으로는 독일어를 배워야 한다며 마지막 프랑스어 수업을 한다는 설정은 좀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다. 주인공 소년 프란츠도 독일계 이름인 것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 사대부들에 맞서,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수백년 동안 싸웠던 투쟁의 역사 때문에 소설 <마지막 수업>의 진짜 내면을 들여다 볼 여유를 갇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소설 <마지막 수업>의 배경을 제대로 몰랐을 수도 있고, 이도 아니라면 교육 당국의 의도였을 수도 있고.

 

어쨌든 틈만 나면 국한문 혼용을 주장하는 이들이 꼭 알고 가야 할 사람들이 있다. 외솔 최현배 선생은 일제 강점기 시절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에게 '국어 수호는 곧 민족 수호'를 강조했다. 아울러 동아일보에 연재한 '조선민족갱생의 도'라는 글에서는 '우리말에 조선심이 있고, 조선혼이 있다.'고 역설했다. 한글을 지키기 위해 싸운 이가 어디 외솔 선생뿐이던가? 온몸으로 한글을 지켜냈던 주시경 선생과 조선어학회 회원들도 있다. 또 한 사람.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훈민정음 해례본' 등 우리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사재까지 털어 일본으로의 밀반출을 막은 간송 전형필 선생도 있다.

 

세계에서 언어를 혼용한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 국한문 혼용도 뿌리깊은 한자 사대주의와 더불어 청산하지 못한 일제의 잔재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문해율을 자랑하는 이유도 바로 한글 때문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언어는 한 국가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문화다. 문화 선진국을 얘기하는 요즘 더이상 소모적인 논쟁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뿐이다. 참고로 '한글날'의 처음 명칭은 1926년 조선어 연구회가 만든 '가갸날'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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