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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일흔둘 노인의 자살과 농촌 경제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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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곡리 고욤나무/이문구/1991년

 

한 대학교수가 2002년 경부고속도로와 인접한 경기도 평택에 배나무 밭과 일대 논 4필지, 2만7천여 제곱미터를 동생 2명과 함께 매입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운영하는 친환경농산물 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 대학교수가 공동으로 매입했다는 평택 과수원에서는 9년 동안 연평균 3억원씩 총 27억원의 수입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이 대학교수는 동생에게 3억원의 채무를 졌는데 특이한 점은 형제의 거래가 현금보관증 형태로 이뤄졌고, 이 현금보관증에는 '상기 금액(3억원)을 성실히 보관하고 요청에 따라 반환할 것을 약속함'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한편 이 대학교수는 매입한 논에서 쌀 직불금을 타가기도 했다.

 

장관 후보자 청문회때면 이런 비슷한 내용들이 어김없이 등장하곤 한다. 앞서 언급한 이야기는 다름아닌 박근혜 정부 첫 내각 인선 청문회 당시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을 상대로 야당 의원들과 언론들이 제기했던 의혹이다. 여기에는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 우선 현행 농지법상 농지를 소유하려면 직접 경작을 해야 한다. 당시 대학교수였던 최문기 장관은 동사무소에 직접 농사를 짓겠다고 신고했지만 실제로는 이 땅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다른 동생이 지어왔다. 게다가 쌀농사를 짓는 농민에게 소득 보전을 목적으로 지급되는 쌀 직불금까지 챙겼으니 농지법 위반이다. 또 동생에게 졌다는 3억원의 채무도 동생이 땅에 대한 지분이 있는 최문기 장관에게 농지를 임대해준 댓가로 나눠준 운영 수익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현행법상 예외적인 상황이 아닐 경우 농지는 위탁경영이나 임대, 사용대가 불가능하다. 3억원의 채무가 언론과 야당 의원들의 주장대로 운영 수익이라면 농지법상 부당소득이 되는 것이다.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이런 의혹을 받아온 인사가 비단 최문기 장관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수많은 장관 후보자들이 국민들의 법감정에 턱없이 모자라는 윤리의식과 도덕성을 보여줬지만 대부분 '하자 없음'으로 나보란듯이 장관 임무를 수행했고 또 수행하고 있다. 농민들에게는 생명이고 삶의 전부인 땅을 돈벌이 수단으로 법을 악용하고 남용하면서도 한 국가의 장관이 되는 세상이니 농민들이나 일반 서민들이 느끼는 심리적 박탈감은 구차한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왜 농촌은 갈수록 피폐해지는가

 

이문구의 소설 <장곡리 고욤나무>는 한 노인의 죽음을 통해 90년대 한국 농업의 위기 의식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문제는 소설 속 농민들의 한숨과 한탄이 여지껏 잦아들기는커녕 더 깊어만 가고 있는 현실이다. 강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신자유주의 바람을 탄 세계무역 환경의 변화와 이런 달라진 환경에 재빠르게, 투명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국내 정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일 것이다. 예전에는 책에서나 볼 수 있었던 바나나니, 파인애플이니, 자몽이니, 망고니 하는 열대과일들이 시장 한복판을 점령한지 오래니 우리 땅에서 나는 토종 우리 과일들은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의 쌀수입 개방 압력은 식량안보마저 자신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며, 쇠고기 등 육류의 무차별적 수입은 안전한 먹거리마저 위협하고 있다. 이런 변화의 시작이 바로 90년대라고 할 수 있다. <장곡리 고욤나무>는 국제환경의 변화에 따른 농촌의 황폐화와 이런 상황을 부추기는 부조리한 정치세태에 대한 농민들의 불만과 분노를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소설은 장곡리행 버스에 모인 사람들의 왁자지껄 수다로 시작된다. 걸죽한 충청도 사투리가 현장감을 더해준다. 이들이 가는 곳은 기출씨 장례식장이다. 죽음의 원인을 두고 갖가지 설들이 난무하지만 어이없게도 결론은 사는 것이 재미없어서란다. 말없이 듣고만 있는 기출씨 사촌동생 봉출씨는 어처구니없고 기가 막힐 뿐이다. 기출이 형님이 자살했다는 것도 그렇지만 일흔둘이나 되는 노인이 새삼스럽게 사는 것이 재미가 없어서라니. 기출씨는 뭐가 그리도 재미 없었기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소설은 기출씨 살아 생전의 행적을 통해 재미 없음의 진짜 이유를 밝혀내고자 한다. 거기에 우리 농촌의 고단한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 없다.

 

저자는 우리 농촌이 황폐해진 원인 중에 하나를 기출씨의 입을 통해 촌철살인의 필치로 쏟아낸다. 기출씨가 그토록 이를 갈아댄 나쁜 놈들의 면면은 이렇다. 

 

대개 농촌 지역의 부동산 투기를 근절시키는 길이 도시의 유휴자금 유입을 막아 부재지주의 농지 거래를 끊는 것이며, 경자유전의 원칙에 따라 농지 거래는 재촌 농민들 사이에서만 이루어지도록 조치하는 것이며, 전업농의 농지 확대를 돕기 위해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농지값이 묶이도록 누르는 것이라고 뒤떠들고 부추기고 덩달아서 북치고 장구 쳤던 정부당국자와, 오로지 당의 두목만을 쳐다보고 사는 여야 정객들, 책상 위에서 농사짓는 학자들, 시끄러워야 돌아다보는 기자들, 그리고 농촌의 농 자도 모르면서 입만 살은 일부 직업적 재야 인사들……. -<장곡리 고욤나무> 중에서-

 

소설 속 농촌의 풍경은 도시문화가 급격하게 유입되고 있는 1990년대로 기출씨는 변모된 농촌의 현실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문화적 충격에 빠지게 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문화적 충격의 뒤에는 삶의 터전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이 임박한 당시 시대적 상황을 볼 때 피폐해진 농촌에 대한 자구책이 더 이상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이 기출씨를 심리적으로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출씨와 도시에 사는 아들 사이에 토지 매매를 두고 벌어지는 갈등은 농촌 현실에 눈감은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저자는 전보다 화려해진 겉모습에 취해 썩어들어가는 속내는 들여다보지 못하는 위정자들을 비롯한 우리 사회 전반의 천박한 인식에 철퇴를 가하고 있다.

 

"그게 아녀. 자네 농발대책(농어촌발전종합대책)이라는 게 워떤 건지 알구나 그러는 겨? 그 골자가 뭔고 허면, 성님마냥 노령으루 땅을 묵히게 된 은퇴농지, 딴 디루 나가보려구 내놓는 이농농지, 생전 심 펼 날이 웂는 영세농지 같은 걸 실력 있는 사람게다 몰어줘서 전업농을 키우겄다 그 얘기여. 그러면서 부동산 투기두 막구 농발대책두 밀어붙이구 허느라구 웂는 법까장 맹글었는디 그 벱이 무슨 벱이냐. 한마디로 말해서 죽는 늠만 죽어라 죽어라 하는 그런 내용여. 농지매매증명제다 토지거래허가제다 신고제다 하구 삼중으루 옴나위를 못 허게 얽어맸는디, 이게 뭐냐. 사유재산권 행사에 대한 가차압인 겨. 그러니 농지값은 값대루 떨어지구 거래는 거래대루 끊어지구, 결국 이농을 허는 마당에서까장 목돈을 쥐고 이농을 해두 션찮은 영세농덜더러 푼돈을 쥐구 이농허거라, 그렇게 됐다 이 말이여." -<장곡리 고욤나무> 중에서-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국가간 자유무역협정(FTA)는 황폐해진 농촌 경제에 일어설 희망마저 꺾어버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속시원한 대책을 내놓는 것도 아니고 설사 내놓더라고 앞서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보았듯이 법 위에 군림하며 뭉칫돈을 조물락거리는 소위 가진 자들의 배만 채우고 마는 꼴이니 우리 기출씨에게 사는 것이 무슨 재미가 있었겠는가. 기출씨 자살의 원인이 된 '재미 없음'의 실체는 농촌 경제를 망가뜨린 강대국 중심의 국제환경과 국내 위정자들의 무사안일과 반윤리적 행태들이었던 것이다.

 

고욤나무가 상징하는 것

 

이문구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나무는 이 소설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제목에서 보듯 고욤나무는 이 소설의 발단에서부터 결말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핵심 소재이자 장치다. 기출씨가 이 고욤나무에 목을 매 자살했고 사촌동생 봉출씨가 이 고욤나무를 베는 것으로 소설이 막을 내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그토록 고욤나무 아니 나무를 소설에 등장시키는 것일까.

 

우선 아무 쓸모가 없어진 고욤나무는 일흔둘 기출씨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다. 경제성과 효용성만 따지는 자본주의에 대한 저자의 비판적 시각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소재가 바로 고욤나무, 나무다. 

 

"두구 보니께 이 고욤나무만이나 쓸다리 웂는 나무두 드물레그려. 과일나문가 허면 그게 아니구. 그게아닌가 하면 그것두 아니구…… 어린 것 같으면 감나무 접목허는 대목으루나 쓴다건만, 그두저두 아니게 늙혀노니께 까치나 꾀들어서 시끄럽지 천상 불땔감이더먼." -<장곡리 고욤나무> 중에서-

 

사촌동생 봉출씨에게 고욤나무는 분노의 대상이다. 형님이 이 고욤나무에 목을 매 죽었으니 어찌 아니 그러겠는가.

 

가면서 보니 울안에 친 차일이 지붕 위로 수그러지고 그 차일 너머에는 바람만 건듯 해도 낭창거리도록 미끈하게 뻗은 고욤나무 우듬지가 멀쑥하게 솟아 있었다. 봉출씨는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주인을 잡은 교수목이 아직도 처벌받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였다. -<장곡리 고욤나무> 중에서-

 

고욤나무는 봉출씨에 의해서 기출씨와 함께 그 효용을 다 하고 베어지는 운명에 처한다. 저자는 고욤나무를 통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농민의 분노를 동시에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저자가 그의 소설에 나무를 자주 등장시킨 이면에는 생명에의 존경심과 더 나아가 우리 농촌에 대한 애정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작년 대통령 선거의 여야 공약에서 이전 선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농촌 관련 공약이 없었다는 것이다. 예전에 비해 인구가 급격히 줄어 이제 정치인들에게는 그 효용성이 사라져서였을까? 마치 기출씨와 고욤나무처럼. 세상을 죄다 표로 재단하는 그들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 다만 농민들을 표로 보기 전에 왜 농촌이 공동화되고 황폐화됐는지 단 하루라도 생각할 여유를 가져볼 수는 없을까? 그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도 그들에게 농촌 자구책을 내놓으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 같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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