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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상상 자유, '봄봄'의 뒷이야기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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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국소설] 중 김유정의 『봄봄』/「조광」2호(1935.12)/창비사 펴냄

김유정표 해학과 익살을 대표하는 작품을 꼽으라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봄봄』을 꼽겠다. 맛깔스럽다. 이보다 더 적절한 단어가 있었으면 좋겠다. 김유정이 당시 농민들이 사용하던 비속어와 강원도 사투리 등을 섞어가며 생생한 현장감을 더해주고 있는 소설이 『봄봄』이다. 소설 속 인물들간 갈등이 깊어갈수록 독자들의 입가에는 굵은 미소가 번져간다. 특히 머리 속에 그려지는 장면들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배꼽이 달아나도 모를 지경이 된다. 지나치게 웃다 보면 눈물이 난다. 어느덧 그 웃음은 즐거워서가 아니라 슬픔의 눈물로 변하여 간다. 김유정이 만들어내는 웃음이 위대한 까닭이다.

 

오늘은 그냥 웃어볼까 한다. 그 동안의 딱딱했던 교과서적 해석을 탈피해 김유정이 주는 웃음을 웃음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도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백미는 무엇일까? 여운이 아닐까 싶다. 한 폭의 한국화를 보면서 시선을 쉬 떼지 못하는 이유가 여백이 주는 무수한 생각들 때문이라면 소설의 마지막 장을 읽고도 그냥 덮어버리기에는 못내 아쉬움이 남는 이유도 이어질 뒷이야기가 궁금해서이다. 김유정은 소설 『봄봄』을 통해 의도적으로 이런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시키려 했던 것일까?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이 소설의 구성이라고 들었건만 『봄봄』에서는 위기와 절정의 양끝을 왔다 갔다 하며 끝이 나고 만다. 아니 처음부터 끝까지 위기의 순간이요, 절정의 순간이다.

 

이제 그 뒷이야기를 상상해 보고자 한다.

 

한국 사람치고 소설 『봄봄』을 읽어보지 못한 독자가 있겠냐마는 이제 작가가 되어보자고 제안했으니 대강의 줄거리는 다시 한 번 되짚어 보는 것도 좋으리라.

 

어리버리 나는 데릴사위다. 삼 년 하고도 꼬박 일곱 달 동안이나 배참봉댁에서 일만 하고 있다. 내 아내 아니 내 아내가 될 점순이는 열 여섯이다. 나는 스물 여섯이다. 결혼 적령기를 넘어가고 있으나 여전히 배참봉은 나와 점순이의 성례를 반대하고 있다. 점순이 키가 커야 된단다. 장인과 나는 하루가 멀다하고 성례를 두고 티격태격이다. 늘 내가 진다. 점순이와 성례를 올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그러나 해도 해도 너무한다. 장모는 점순이보다 귓배기 하나가 작아 참새만 하다. 그래도 늘 내편이 되어주는 점순이가 있어 참는다. 그런데 요놈의 계집애가 날 배신했다. 점순이만 믿고 장인에게 대들었는데 내 편을 아니 들어 준다. 나는 점순이의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소설 『봄봄』은 이렇게 끝이 난다. 나와 점순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1 우리는 검은 머리 팥뿌리 되도록 백년해로했다

 

장인이 동네에서 욕봉필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고는 있지만 사실은 그렇게 매몰차지만은 않다. 나를 실컷 두들켜 패주고는 다른 사람 같으면 내쫓을 터이지만 터진 머리를 불솜으로 손수 지져주는 양반이다. 이제 기력도 쇠하여 간다. 게다가 우리 장인 양반 행세하가 좋아한다. 언제까지 욕봉필 소리만 듣고 살겠는가!

 

게다가 땅 넓은 줄만 알던 점순이의 키가 어느 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삐죽삐죽 자라준다. 제 아무리 막돼먹은 장인이라도 이제 할 말이 없을 게다. 나와 점순이는 어엿한 부부가 되었다.

 

#2 장인은 끝내 성례를 치러주지 않았다

 

일 년만 더 참자. 삼 년하고도 일곱 달을 참았는데 그까짓 일 년을 못 참을 쏘냐! 장인도 내년 봄에는 성례를 시켜주마 한다. 내가 아무리 야물딱지지 못하기로 장인도 언제까지 콩밭만 매라고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점순이도 내년이면 훌쩍 크지 않겠나.

 

다시 찾아온 봄. 나는 숙맥이다. 장모가 참새만한데 점순이라고 무슨 용쓰는 재주가 있어 독수리가 되겠는가! 일 년을 기다렸건만, 장인에게 성례를 시켜달라고 또 대들었다. 돌아오는 건 지게 작대기 뿐이었다. 점순이 키가 아직도 요모양이니 기다리란다. 나잇살 먹고 돌아가자니 창피해서 얼굴 들고 못 살 것 같다. 그래! 한 번만 더 참자. 집 뒤에 숨어서 내가 맞는 걸 지켜보고 있던 점순이가 다가와서는 왜 그리 야물딱지지 못하느냐고 한다. 점순이는 여전히 내 편이다. 장인도 올 가을에는 성례를 치러준다고 했다.

 

#3 점순이는 『동백꽃』그 놈과 사귀고 있단다

 

뭉태(소설 속 내 친구) 말을 들을 걸 그랬다. 우리 장인 딸이 셋 있는데 지금까지 데릴 사위만 열 네놈 이었다 한다. 일 잘하는 놈 고르느라 연방 바꿔들었던 것이다. 또 어떤 놈들은 장인이 욕만 줄창 퍼붓고 부려먹으니까 밸이 상해서 달아났단다.

 

나도 더 이상 못 참겠다. 팔은 안으로 굽고 피는 물보다 진하다드만 점순이 요 계집이 결정적인 순간에 내 편을 아니 들어 주니 더 이상 이 집에 있을 이유가 없다. 열 여섯이나 먹은 점순이 키가 더 자라기를 바라는 것도 어설픈 욕심일 뿐이다. 집에 돌아오니 여기저기 못난 놈이라고 수근대는 소리가 양봉장 벌떼들 앵앵하는 소리마냥 귀에 거슬린다. 나 같은 놈 좋다고 덤벼들 처녀도 없을테고앞이 컴컴하기만 하다.

 

점순이 요놈의 계집애 내 그럴 줄 알았다. 그새를 못 참고 자기네 소작으로 빌어먹고 사는 놈(『동백꽃』의 주인공 ’)하고 눈이 맞았단다. 좋아한단 말은 못하고 괜시리 그 녀석을 괴롭힌단다. 내 들었다. 흐드러진 노란 동백꽃 아래서 그 놈과 그렇고 그랬다고

 

요놈의 계집애 두고 볼 테다

*집은 책으로 채우고 화원은 꽃으로 메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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