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간 아들의 민머리, 죽기 직전에야 처음 보았다

2384일 전, 아들이 군대에서 죽었다(고 노우빈 훈련병, 살아 있다면 28세).

봄바람이 세찼다. 아들이 죽기 하루 전, 인왕산의 벚꽃 잎이 흐드러지게 날고 있었다. 그날, 산성을 따라 걷던 엄마(공복순, 55)의 가슴은 왜 그렇게 두근거렸을까.

이윽고 엄마는 군대에서 온 전화를 받았다. 거센 바람 속, 상대의 이야기가 잘 들리지 않았다. 다만 이 기억만큼은 또렷이 남아 있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너무도 편안했다는 것. 그 조곤조곤한 음성... 엄마는 속으로 생각했다.

'요새 군대 많이 좋아졌다더니, 안부 전화도 오는구나.'

휘잉휘잉 바람 소리에 가려, 띄엄띄엄 들리는 단어들. 노우빈, 논산, 훈련병, 군부대... 그런데 단어 하나가 엄마의 귀에 탁 걸렸다. 쇼크, 쇼크... 쇼크? 엄마는 그때 그 상황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무 것도 모르는 제가 생각해도 그 단어는 너무 무서운 말이잖아요."

엄마는 바람이 없는 곳으로 내달렸다. 산성 담벼락에 쪼그려 앉으니 바람 소리가 덜했다.

엄마 "쇼크라니요? 무슨 일이에요?
군부대 "아이가 아파서 이송 중입니다."

여전히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편안했다. 너무나 편안했다.

엄마 "우빈이 좀 바꿔주세요!"
군부대 "..."

엄마는 다시 내달리기 시작했다.


# 기자의 말
남겨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멀쩡하다고 해서 국가의 부름을 받은 아들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국가유공자 혹은 보훈보상대상자로 '인정받기' 위해 엄마는 직접 아들의 사체검안서를 들고 국방부와 국가보훈처를 찾아가야 합니다.

사실 엄마는 보상금을 주겠다는 종이 쪼가리보다 훨씬 더 절실한 게 있습니다. 철저한 조사, 투명한 정보공개, 진심 어린 사과, 따뜻한 위로,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 말입니다. 웃어도 안 되고, 울어도 안 되는 일상이 그들의 가슴에 콕콕 트라우마를 새겼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국가 차원의 군 트라우마센터를 만들자는 의미로 그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동시에 연재되는 다음 스토리펀딩(바로 가기)에서 국가의 책임을 대신 짊어지고 있는 '군 피해치유센터 함께'를 후원할 수 있습니다.

# 스토리펀딩 링크
- 프로젝트 : https://storyfunding.kakao.com/project/17468
- 7화 : https://storyfunding.kakao.com/episode/30406

(글 : 소중한 기자, 영상 : 안정호 기자)

| 2017.10.31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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