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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물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굴업도 길게 휘어진 목기미해변과 모래언덕, 멀리 보이는 개머리초원, 좌측의 썰물 때만 들어갈 수 있다는 토끼섬, 우측의 송신탑, 그리고 연평산으로 이어지는 길목의 붉은머리해변과 그 위의 사구습지 등, 마치 드론을 띄워 찍은 굴업도의 사진을 보는 것 같다 ⓒ CHUNG JONGIN

20세기 말, 3천 개가 넘는 한국의 수많은 섬 중 인천 앞바다의 작은 섬 하나가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1994년 정부가 섬을 방사성핵폐기물처리장으로 선정하였다고 발표하면서부터다.

방폐장 계획이 무산된 뒤에도 21세기에 들어와서는 대기업의 골프장을 비롯한 초대형 리조트 건설 계획으로 섬은 다시 몸살을 앓았다. 이리하여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섬의 이름은 굴업도다. 굴업도란 섬 이름이 엎드려 일하는 사람을 닮아서 붙여졌다는 유래만큼이나 섬의 팔자는 고단하다.

굴업도는 중생대 백악기인 9000만 년 전의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다. 오랜 세월 고립되어 있었던 까닭에 섬은 원시 모습이 남아 있는 매우 희귀한 지형을 간직하고 있다. 수많은 남북방계 생명체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질학자에게 굴업도는 살아 있는 지질학 교과서이고 생물학자에게는 한국의 갈라파고스다. 사진작가에게는 일몰의 명소이자 송골매 등 희귀 새의 서식지이고 옛 추억을 간직한 어부에게는 민어 파시의 어장이다. 최근에는 신도 탐낸다는 천혜의 절경으로 '국내 백패킹 삼대 성지' 중 하나가 되었다.

굴업도는 먼 섬이다. 굴업도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군도를 이루는 41개 섬 중 하나다. 인천항에서 직선거리로 85㎞ 떨어져 있거니와 직접 가는 배편도 없어 덕적도에서 배를 갈아타야 한다.

굴업도는 작은 섬이다. 섬 면적이 1.7㎢, 섬 양 끝을 잇는 길이가 3.8km, 해안선 길이가 13km에 불과하다. 섬 전체가 높이 100m 안팎의 구릉으로 되어 있다. 
 
목기미해변 동섬의 덕물산과 연평산의 줄기는 아래로 내려와 외줄기 목기미해변으로 변한다. 왼쪽 봉우리가 연평산이고 오른쪽 보우리사 덕물산이다. ⓒ CHUNG JONGIN
 
동섬에 자리한 가장 높은 덕물산(138m)과 연평산(128m)의 줄기는 아래로 내려와 서해의 쪽빛 바다를 양옆에 낀 외줄기 해변으로 변한다. 동섬과 서섬을 연결해주는 목기미해변이다. 좌·우측이 활처럼 휜 해안선을 따라 단단하면서도 고운 하얀 색의 모래밭이 600m가량 이어져 있다. 목기미해변 남서쪽에는 사구습지와 모래 언덕이 있다.
 
연평산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코끼리바위 운이 좋아 썰물 때를 만나면 연평산 길목에서 코끼리바위를 만날 수 있다 ⓒ CHUNG JONGIN
 
연평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좌측의 목기미해변을 지나야 갈 수가 있는데, 서쪽 바다에 세 개의 바위 섬이 우뚝 솟아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선단여라는 바위섬으로 굴업도의 서쪽을 가리키는 표지석인 셈이다. 운이 좋아 썰물 때를 만나면 연평산 길목에서 코끼리바위를 만날 수 있다.

낙타 등을 연상시키는 두 개의 봉우리를 가진 연평산은 높이가 해발 128m에 불과하나 정상에 오르는 것은 개미가 낙타 등을 오르는 만큼이나 어렵다. 자갈과 모래가 많은 암봉이라 미끄럽고 고사목이 많아 나뭇가지를 잘 못 잡으면 오히려 큰 사고로 연결될 수 있다. 낮은 봉우리 하나를 넘어 다시 정상으로 올라야 하는데 마지막 코스는 수직 암봉이다. 밧줄을 잡아야 한다. 
 
연평산에서 본 굴업도 시간이 멈추고 숨도 멈춘 듯한 고요한 풍광이다 ⓒ CHUNG JONGIN
 
하지만 정상에 오르면 이 모든 어려움은 잊힌다. 굴업도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시간이 멈추고 숨도 멈춘 듯한 고요한 풍광이다. 맞은편 덕물산으로 가다 보면 바다가 아닌 연못을 만난다. 사구습지로 예전에는 마을에서 농업용수로 사구습지 물을 사용했었단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 계단식 농지의 흔적이 보인다. 지금은 미꾸라지의 서식지이며 흑염소와 사슴의 식수원이다.
 
사구습지 사구습지의 물은 예전 농업용수로 사용했으나 지금은 미꾸라지의 서식지이며 흑염소와 사슴의 식수원이 되었다 ⓒ CHUNG JONGIN
 
굴업도 최고봉(138.5m)인 덕물산 역시 오르기가 만만치 않다. 정상까지 가는 것이 힘들다면 조금 아래에 있는 신선바위도 정상 못지 않은 전망대다. 덕물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굴업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길게 휘어진 목기미해변과 모래언덕, 멀리 보이는 개머리초원, 좌측의 썰물 때만 들어갈 수 있다는 토끼섬, 우측의 송신탑, 그리고 연평산으로 이어지는 길목의 붉은머리해변과 그 위의 사구습지 등, 마치 드론을 띄워 찍은 굴업도의 사진을 보는 것 같다.
 
개머리초원의 수크령 굴업도에 가을이 오면 개머리초원의 수크령이 노을빛 아래에서 넘실거린다 ⓒ CHUNG JONGIN
 
동섬에 연평산과 덕물산이 있다면 서섬에는 백패커들의 로망인 개머리초원이 있다. 남서쪽을 향해 내밀고 있는 개의 주둥이를 닮았다 하여 개머리초원이다. 20여 년 전 주민들이 소와 염소를 방목할 목적으로 나무를 베고 초지를 만든 것이 오늘날의 개머리초원이다.

방목이 중단된 후 들풀과 들꽃이 피고 가을이 되면 키 큰 강아지풀처럼 생긴 수크령이 넘실댄다. 파란 하늘 아래 햇살을 받아 눈부신 보랏빛을 발산하는 수크령. 이래서 굴업도는 가을이 가장 아름다운가 보다. 

큰말해변에서 약간의 오름을 거치면 감탄사와 함께 수크령이 가득한 개머리초원을 만난다. 수크령밭 사이에 난 오솔길을 걷다보면 수크령에 몸이 감싸이고 바람이 불 때마다 수크령의 사각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바람 소리를 압도한다.
 
개머리초원 낭개머리에서 본 일몰 해가 바다에 침몰하며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 CHUNG JONGIN
 
개머리초원의 사슴 떼 보기에는 평화로워 보이나 굴업도의 풀숲이 사라지는 원인이다 ⓒ CHUNG JONGIN
 
개머리초원의 끝자락에는 최고의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낭개머리가 있다. 늦은 오후에 도착하면 붉은 노을에 뒤덮인 바다를 볼 수 있다. 개머리초원과 낭개머리에 종종 나타나는 사슴 떼는 보너스다.

주민이 육지에서 가져와 키우던 사슴이 탈출하여 지금은 200마리 정도가 자연 서식을 하고 있다. 보기에는 평화롭고 굴업도의 상징이 된 사슴들이지만, 개체 수가 100마리를 넘으면서 풀과 나무껍질까지 벗겨 먹는 바람에 풀숲이 사라지고 많은 나무가 고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풀숲은 보기 힘들고 연평산 등산로에는 고사목이 많다.

개머리초원은 일몰이 압권이다. 낭개머리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보내면 바다에 침몰하며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지는 해를 볼 수 있다. 보름달이 뜨는 시기라면 달의 조명을 받은 환한 초원을 감상할 수 있고 달빛이 없는 어두운 밤이라면 하늘을 수놓은 무수한 별과 은하수를 볼 수 있다. 

낭개머리에서 하룻밤을 머무르지 않는다면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민박촌으로 내려오는 것이 안전하다. 조금 일찍 내려오더라도 일몰의 장관을 어느 정도 즐길 수 있으며 큰말해변에서도 칠흑 같은 밤하늘의 별 쇼를 볼 수 있다.
 
굴업도 선착장에서 본 일출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동쪽 섬 가도 위로 해가 떠 오르고 있다 ⓒ CHUNG JONGIN
 
굴업도의 일출 역시 일몰 못지않게 환상적이다. 해 뜨는 시각에 맞추어 목기미해변 남쪽의 선착장으로 가면 동쪽 바다의 섬 가도 위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볼 수 있다.

이렇듯 서해안의 작은 섬 굴업도는 사람들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특징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예쁜 해안선과 고운 모래 해변, 넓게 펼쳐지는 평원, 그 평원을 뛰노는 꽃사슴, 그리고 하늘을 나는 송골매와 희귀 철새들, 그 안에서 느끼는 마음의 평화.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던 주민들은 떠나고 이제는 관광객들과 그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사람들만 남았다. 굴업도는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은혜라는 "천혜"의 절경을 지닌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섬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50플러스 중부 캠퍼스 소식지인 2020년 중부락서에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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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미국 생활 후 한국의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