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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전남사적지로 지정돼 있는 화순 너릿재 옛길. 숲길에 편백나무와 벚나무, 단풍나무, 소나무가 빼곡해 한낮에도 햇볕이 들지 않는다. 사철 호젓한 숲길이다. ⓒ 이돈삼
 
80년 광주를 그렸던 영화 <택시운전사>가 있었다.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 가운데 하나가 터널과 고개였다. 터널과 고개는 당시 고립된 광주와 외부를 연결해주는 통로였다. 택시운전사 김사복과 힌츠페터는 광주를 탈출하면서 필사적으로 고개를 넘고 터널을 지났다.
 
그 길이 어디였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영화에서 산길을 달려 고개를 넘고 주암 방면으로 갔으니, 너릿재였을 수 있겠다는 짐작만 할 뿐이다. 당시 고립된 시민군이 광주의 상황을 외부로 알려 항쟁을 확산시킨 곳 가운데 하나가 화순이다. 너릿재가 그 길목이었다.
  
5·18사적지로 지정돼 있는 화순 너릿재 옛길. 엿둣빛으로 봄물을 가득 머금은 숲길이 호젓하다. ⓒ 이돈삼
   
80년 5월 죽음을 무릅쓰고 광주의 참상을 취재해 해외에 알린 위르겐 힌츠페터의 유품을 묻어 둔 묘역. 광주시 운정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있다. ⓒ 이돈삼
 
너릿재에는 공수부대가 주둔했다. 계엄군의 총격으로 무고한 시민이 사망한 곳이기도 하다. 너릿재와 함께 화순군청과 경찰서 일원, 화순광업소가 5·18 전남사적지로 지정돼 있다.
 
화순군청 앞은 5월 21일 군민들이 무기를 구하려고 출발했던 곳이다. 화순경찰서에서는 시위대가 총기 750여 정과 실탄 600여 발을 획득했다. 화순경찰서 사거리는 차량 시위대가 화순광업소에서 획득한 다이너마이트를 싣고 광주로 향한 곳이다. 옛 화순버스터미널에선 주민들이 시위대에 빵과 음료를 제공했다.
  
80년 5월의 참상을 다 지켜 본 화순 너릿재 옛길. 그날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지금은 호젓한 숲길로 여행객들의 발길을 유혹하고 있다. ⓒ 이돈삼
   
너릿재 옛길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너릿재 도로와 화순읍내 시가지 풍경. 전망대에서 300년 된 느티나무 고목이 옛길의 정취를 더해준다. ⓒ 이돈삼
 
너릿재 옛길은 1971년 뚫린 터널 옆의 산허리로 난 길을 따라 넘나들던 고개다. 화순사람들은 80년 당시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길이 험했고, 눈이라도 내리면 차량 통행이 끊겼다. 부모들은 이 재를 걸어 넘어 광주에 있는 자식들을 찾아 나섰다.
 
너릿재는 대낮에도 도적이 나올 정도로 험했다고 한다. 옛날에 깊고 험한 이 재를 넘던 사람들이 도둑들한테 붙잡혀 죽임을 당해 널판에 실려 느릿느릿 내려왔다고 '너릿재'로 불렸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고개를 넘어가는 길이 가파르고 구불구불한데, 고갯마루는 제법 널찍하고 평평하다. '너른 재'에서 '너릿재'로 변했다는 얘기도 있다. 한자로는 널빤지 판(板), 고개 치(峙)를 써서 '판치'로도 통한다.
 
우금치 전투에서 패한 동학농민군이 내려오면서 여기에서 처형돼 '널재'라 불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동학농민군이 학살당한 곳은 너릿재 아래 이십곡리라고 한다. 한국전쟁 때도 수많은 널(관)이 이 고개를 넘나들었다고 한다.
  
너릿재 옛길에 세워져 있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사적지 표지석. 화순 너릿재는 80년 5월 시위대는 물론 무기류까지 넘나들던 통로였다. ⓒ 이돈삼
   
광주 주남마을에 세워진 위령비. 80년 5월 23일 화순으로 가던 버스에서 공수여단의 총격으로 부상을 입고, 공수부대에 의해 다시 사살돼 암매장된 2명을 기리고 있다. ⓒ 이돈삼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는 시위대가 다이너마이트를 싣고 광주로 넘어갔다. 계엄군에 의해 사상자도 나왔다. 너릿재로 오가는 길목인 주남마을 인근의 양민학살도 화순으로 가는 버스에서 일어났다.
 
5월 23일 오전 11공수여단이 18명이 탄 미니버스에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15명이 현장에서 죽고, 3명이 부상을 입어 계엄군에 붙잡혔다. 계엄군은 붙잡은 남성 2명을 사살해 뒷산 헬기장 인근에 암매장했다.

너릿재의 아픔은 광복 직후에도 있었다. 1946년 8월 화순탄광의 광부들이 광주에서 열리는 해방 1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려고 이 고개를 넘다가 미군과 경찰의 총격을 받았다. 100여 명이 죽거나 다쳤다.
 
1950년 7월에는 국민보도연맹에 연루된 사람들이 너릿재 인근에서 학살됐다. 9월에는 광주형무소에 있던 사람들이 끌려나와 너릿재를 넘어 화순읍 교리의 저수지 근처에서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능주 출신의 한말 의병 양회일이 이끈 의병부대도 1907년 화순을 점령하고, 너릿재를 넘어 광주로 가려다가 매복한 관군에 패했다. 양회일 의병장도 여기서 붙잡혔다. 1519년 기묘사화로 능주 유배길에 오른 정암 조광조도 너릿재를 넘었다고 전해진다. 광주에서 화순과 보성·장흥으로 오가던 이들이 넘나들던 너릿재다.
 
화순 너릿재 옛길의 시작지점에 있는 소아르갤러리. 호젓한 너릿재 옛길에서 예술적 감성까지 풍부하게 해준다. ⓒ 이돈삼
   
너릿재 옛길의 4월 봄날의 풍경. 벚꽃잎이 떨어져 옛길의 정취를 한껏 더해주고 있다. ⓒ 이돈삼
 
가슴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너릿재가 지금은 여행지로 뜨고 있다. 숲길의 나무들이 연둣빛 봄물을 가득 머금고 있다. 지난 4월엔 벚꽃으로 환상경을 연출했다. 가을엔 형형색색의 단풍으로 황홀경을 연출한다.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을 받기도 했다.
 
숲길에는 편백나무와 벚나무, 단풍나무, 소나무가 많다. 들꽃도 지천이다. 아름다우면서도 호젓한 숲길이다. 한낮에도 햇볕이 들지 않는다. 가족과 친구, 연인끼리 뉘엿뉘엿 걷기에 좋다. 비가 내리는 날, 우산 쓰고 걸으면 더 운치 있다.
 
전망대에서 만나는 300년 된 느티나무 고목도 너릿재 옛길의 정취를 더해준다. 여기서 내려다보는 너릿재 도로와 화순읍내 풍경도 장관이다. 옛길은 차량은 다니지 못하고, 사람과 자전거만 오갈 수 있다.
 
화순 너릿재 옛길의 봄날 풍경. 차량은 다닐 수 없고 사람과 자전거만 오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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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