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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자이온 국립공원 인근에 케이밥(Kaibab)이라는 아주 작은 마을이 있다. 이 작은 마을에 '파이프 스프링 국가기념물(Pipe Spring National Monument)'이 있다.

'국가기념물'이란 국립공원으로는 좀 모자라지만 공적으로 관리가 필요한 자연물이나 시설물 또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것들을 공원으로 지정한 것을 말한다. 즉, '거의 국립공원' 정도의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국가기념물로 지정되어 관리하면서 시설을 확충하거나, 관리 대상물이 넓어지거나 커지는 경우, 아니면 좀 더 치밀한 관리가 필요해지는 경우 국립공원으로 승격시키기도 하는데, 미국에서 가장 젊은 국립공원인 뉴멕시코 주의 '화이트 샌즈 국립공원'이 여기에 해당한다.
 
파이프 스프링 비지터 센터 비지터 센터가 공원 입구역할을 하고있어서 비지터 센터를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가면 각종 전시물을 만날 수 있다. ⓒ 이만섭
 
공원 주변은 자잘한 관목들만 자라는 황무지다. 주변에 번듯한 건물 하나 없고, 그저 방문자 센터와 허름한 건물 몇 채가 들어서 있는 곳이 왜 국가기념물로 지정된 것인지 몰랐다.

아침 일찍 찾은 우리가 첫 방문자였는지 굉장히 반갑게 맞이한 안내원에게 요금 수납 절차를 마치고 공원 지도와 안내문을 받아 들었다. 이내 공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공원 안에 있는 건물과 기타 시설물은 스스로 둘러볼 수 있지만, 공원 가운데 있는 건물(Winsor Castle이라고 한다)은 공원 안내원과 동행해야 하니, 필요할 때 알려달란다. 그래서 우선은 다른 시설물들과 공원 내 탐방로를 둘러보기로 했다.
 
황무지 공원에서 바라본 공원 주변 풍경 ⓒ 이만섭
 
아무것도 없이 황량하기만 한 사막에 샘물이 하나 있었다. 이 샘물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이곳에 머물면서 나무도 심고 채소도 가꾸며 삶을 이어갔다. 처음엔 고대 푸에블로(Pueblo) 족이었고, 그다음엔 파이우트(Paiute) 족이다. 어쩌다 아파치 족이나 나바호 족들도 샘물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러나 결국에는 파이우트 족만 남아 케이밥 지역에 정착을 했다. 세월이 흘러 문명세계 사람들이 우연히 이곳을 지나다가 샘물을 집적거렸는데, 그들 가운데 몰몬교 개척자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소를 데리고 와 목장을 만들었고, 다행히도 파이우트 족과 평화적으로 공존하게 되었다. 그들은 이 샘물을 '파이프 스프링'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던 1800년대 중반쯤에 원주민 연합이 우물을 얻기 위해 싸움을 걸어온 일이 있었다. 그 싸움 이후 몰몬교 개척자들은 샘물 위에 전쟁에 대비한 성을 지었지만,  한 번도 전쟁 기지로 사용된 적은 없었다. 몰몬교 본부에서는 이 성을 관리할 사람을 보냈고 그의 이름을 따서 성을 '윈저 캐슬(Winsor Castle)'이라고 불렀다.

이후 몰몬교도들은 떠났고, 원래 그곳의 주인이었던 카이밥 파이우트족이 관리하다가 정부에서 매입하여 공원화한 뒤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파이우트족들은 이 공원 바로 가까이에 캠프 그라운드를 운영하고 있다.
   
공원 전경 비지터 센터를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면 보이는 공원의 모습 ⓒ 이만섭
 
윈저 캐슬 원저 캐슬의 앞모습 ⓒ 이만섭
   
윈저캐슬 내부 윈저캐슬 창밖으로 보이는 건물 모습 ⓒ 이만섭
 
지금 보면 대단해 보이지 않는 과거의 것들이 당시에는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현재의 시각과 가치로 과거를 평가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고 무모하게 보인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심혈을 기울인 문화들이 세월이 흘러 후손들이 볼 때 어떻게 보일까를 생각해보면 현재 하고 있는 것들을 소홀히 할 수 없게 되는 것 같다. 이런 생각과 성찰이 과거의 유물과 유적을 돌아보는 까닭이지 싶다.

공원을 채우고 있는 유물들은 대부분 몰몬 개척자들이 남겨놓은 것들이다. 그 이전의 파이우트 족이나 프에블로족들의 유물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다. 당시의 유물들은 우리 눈에도 익숙할 만큼 과거 동시대인들의 생활상을 잘 보여준다. 공원에 유일하게 그 당시의 주거문화를 재현해 놓은 곳이 있다. 특별해 보이는 주거 방식이나 건축양식은 없으나 별다른 도구가 없던 시절을 살던 사람들이 어떻게 주변 환경을 활용하고 이용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주거 유적지 공원 안에 재현해 놓은 원시 시대의 주거지 ⓒ 이만섭
 
사실 이러한 방식은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이라도 아무런 문명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라면 이와 비슷하게 조직할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그들의 삶은 원초적이고 본능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면에서 본다면 당시를 살던 사람들이 어떻게 자연과 동화하고, 다른 편으로는 자연을 극복하면서 살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물이다.

그리 넓지 않은 공원을 채우고 있는 유물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아마도 당시의 이동수단이었을 마차일 것이다. 마차의 양식이랄까  모양이랄까 용도에 따라 달리 만들어진 것이 오늘날 자동차들이 그렇듯 아주 다양하다.

물론 원형 그대로 전시되는 것도 있고, 많이 상한 것들도 있는데 좀 이상해 보이는 점은 이들을 보호하거나 보전할 수 있는 별도의 장치 없이 그냥 밖에 놓아두고 전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물론 그들 나름대로의 생각과 규칙이 있을 테지만, 우리네의 상식과는 좀 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다.
 
마차 보호 장치 없이 야외에 전시되고 있는 마차 ⓒ 이만섭
 
이곳을 찾는 이들은 그리 많지는 않다. 외진 데다가 허허벌판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어 겉으로는 볼 만한 것이 없는 것 같기 때문일 것이다. 혹시라도 자이온 국립공원에서 그랜드 캐니언으로 가거나 앤텔로프 캐니언이나 호스슈 밴드 등으로 여행하게 된다면 그 길 가운데 있으니 한번 들러봄직하다. 그리 크지 않아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고, 도로에서 가까이 있으니 길에서 버리는 시간도 없을 것이다.

캠핑을 원한다면 파이우트 족이 운영하고 있는 캠프 그라운드(Kaibab Paiute Tribal Campground)가 바로 옆에 있다.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고 저렴하며(18불/1박) 시설도 잘 되어있다. 그것보다도 이곳을 둘러보면서 비록 여기 살지는 않을지라도 오늘 우리가 존재할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이런 이들이 척박한 땅에서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준 덕분이지 않을까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캠프그라운드 파이우트 부족이 운영하는 캠프그라운드. ⓒ 이만섭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다음 브런치(https://brunch.co.kr/@leemansup/177)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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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노동자, 한 달에 한 번은 주말을 이용해서라도 여행을 하려고 애쓰며, 여행에서 얻은 생각을 사진과 글로 정리하고 있다. 빛에 홀려 떠나는 여행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