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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유달산에서 내려다 본 고하도와 목포대교 부근 밤풍경. 목포 앞바다 야경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 이돈삼
 
코로나19 여파로 답답한 일상을 보내다가 맞은 5월이다. 사방이 탁 트인 섬으로 간다. 뭍에서 멀지 않은 섬이다. 오래 전에는 배를 타고 들어갔다. 2012년부터는 자동차를 타고 대교를 건너서 갔다. 지난해부터는 해상케이블카를 타고도 들어갈 수 있게 됐다. 목포 앞바다에 떠 있는 섬 고하도다. 전라남도 목포시 달동에 속한다.
 
목포를 대표하는 높은 산이 유달산이다. 고하도(高下島)는 그 산 아래에 있다. 섬의 생김새가 바다로 나아가는 용을 닮았다고 '용섬'으로도 불린다. 길게 늘어선 용이 목포의 남쪽 해안을 감싸며 목포항의 방파제 역할도 하고 있다.
 
섬의 북쪽 비탈은 바다 건너 유달산이다. 동쪽으로는 영산강 하굿둑을 마주하고 있다. 옛날에는 뱃길로 서남해와 내륙의 영산포를 연결하는 영산강의 관문이었다. 군사 방어기지로도 요긴하게 쓰였다.
  
고하도 용오름길에서 내려다 본 고하리 풍경. 목포대교로 연결되기 전, 배가 드나들던 포구가 있었다. ⓒ 이돈삼
   
고하도 해안데크에서 만나는 이순신 장군 조형물.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이 고하도에 머문 사실을 형상화해서 만들었다. ⓒ 이돈삼
 
섬에는 주민 100여 명이 살고 있다. 가장 큰 마을이 안쪽에 있는 원마을, 고하리다. 여기에 4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섭두르지, 뒷도랑, 큰목에는 몇 가구씩 산다. 영산강 하굿둑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갯벌에서 낙지와 바지락, 굴을 잡아 생계를 꾸렸다.
 
하굿둑이 생기면서 바다 생태계가 크게 변했다. 갯벌에 의지해 살던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 무너졌다. 금호호, 영암호 등 화원반도의 물길까지 막히면서 더 이상 바다로 나갈 수 없었다. 적막감이 감도는 섬이 됐다.
 
지난해 목포해상케이블카가 개통되면서 다시 활기를 되찾고 있다. 외지인들이 타고 오는 차량이 몰리면서 조금은 북적거리는 섬이 됐다. 목포시에서도 섬 개발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목화체험장 조성공사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고하도에 세워져 있는 조선육지면 발상지비. 육지면이 1904년 처음 재배된 사실을 기념해 세워졌다. ⓒ 이돈삼
   
고하도의 해안 데크와 목포대교. 고하도 해안의 진면목을 편하게 걸으면서 만날 수 있는 길이다. ⓒ 이돈삼
 
고하도는 육지면을 처음 재배했던 곳이다. 1904년 목포 주재 일본영사에 의해 심어졌다. 육지면은 고려 말에 문익점이 붓대롱에 숨겨 들여온 재래면과 달리, 남미가 원산지다. '미국면'으로도 불린다. 새하얀 데다 올이 길고 섬유도 잘 꼬여 품질이 재래면보다 한결 좋았다. 따뜻한 곳에서 잘 자라 수확량도 많았다.
 
여기에서 시험 재배된 육지면이 목포 전역으로 퍼졌다. 순천 등 전라도 동남부 지방까지 보급됐다. 전라도에서 재배된 목화솜은 목포와 광주, 군산 등지의 방직공장에서 고급 면직물로 가공됐다.
 
일제는 목포항을 통해 자국으로 면직물을 빼내 갔다. 목포는 쌀, 소금과 함께 하얀 목화솜까지 일본으로 빼앗기는 강제 수탈창구가 됐다. 일제강점 때 목포를 '삼백(三白)의 도시'라 한 이유다.
 
이순신을 모신 사당 모충각에서 가까운 데에 '조선육지면 발상지비'가 세워져 있다. 비는 높이 183㎝로 크지 않다. 1936년에 처음 세워졌다. 해방 이후 주민들에 의해 뽑혀 버려지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고하도 모충각 주변의 아름드리 소나무 숲. 숲길도 단아해 뉘엿뉘엿 하늘거리기에 좋다. ⓒ 이돈삼
   
고하도 소나무 숲에 들어서 있는 모충각. 이순신 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 이돈삼
 
13척의 판옥선으로 133척의 일본함대를 물리친 명량대첩에서 대승을 거둔 이순신 장군도 고하도를 중요하게 여겼다. 이순신은 1597년 10월 29일부터 이듬해 2월 17일까지 이 섬에 머물렀다. 완도 고금도로 통제영을 옮겨가기 전까지 108일 동안이었다.
 
이순신은 고하도에서 군량미를 확보하고, 조선수군의 전열을 가다듬었다. 이순신은 '(고하도가) 서북풍을 막아주고, 수군의 배를 숨기기에 아주 제격'이라고 <난중일기>에 적었다.
 
고하도는 해안선 12㎞밖에 안 되는 섬이지만, 제주도와 울돌목으로 통하는 바닷길에 자리하고 있다. 바닷길과 영산강의 내륙 수로가 연결되는 지점이기도 했다. 이순신은, 고하도가 무너지면 호남의 곡창지대를 일본군한테 고스란히 내줄 수밖에 없다고 봤다. 작은 섬 고하도가 조선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한 셈이다.
  
모충각에 세워진 높이 227㎝, 폭 112㎝의 이순신 기념비. 1772년 통제사 오중주와 이순신의 5대손 이봉상이 세웠다. ⓒ 이돈삼
   
모충각 주변의 아름드리 소나무 숲. 적송과 육송이 멋스럽게 무리를 지어 있어 송림욕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 이돈삼
 
고하도에 이순신 유적지가 있다. 조선육지면 발상지비 옆 아름드리 솔숲에 있다. 장군을 모신 사당 모충각(慕忠閣)이 있고,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유달산 노적봉이 바라다보이는 자리다. 기념비는 이순신이 머물고 간 지 175년이 지난 1772년 통제사 오중주와 이순신의 5대손 이봉상이 세웠다. 높이 227㎝, 폭 112㎝의 비다.
 
비문에는 이순신이 고하도에 통제영을 설치한 경위, 고하도진의 당곶진(현 목포하당) 이설, 기념비 건립 내역 등이 소상히 적혀 있다. 기념비는 일제강점 때 일본군에 의해 야산에 버려졌다.
 
광복 이후 주민들이 되찾아 다시 세웠다. 당시 일본군이 쏜 총탄 자국이 비석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섬에 그때 진성의 흔적도 일부 남아 있다. 지형과 바위를 이용해 쌓은 석성이었다.
 
모충각 주변의 아름드리 소나무 숲도 좋다. 적송과 육송이 멋스럽게 무리를 지어 있다. 소나무 숲길도 단아하다. 솔숲에서 뉘엿뉘엿 하늘거리다 보면 소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가 느껴진다. 코로나19로 지친 몸과 마음이 금세 상쾌해진다. 송림욕의 묘미다. 돗자리 깔고, 준비해 간 도시락을 먹으며 차분히 쉬면 더 좋다.
   
고하도에서 본 목포대교와 목포해양대학교 풍경. 목포와 홍도를 오가는 쾌속선이 목포항으로 들어오고 있다. ⓒ 이돈삼
   
유달산과 고하도를 잇는 목포해상케이블카. 유달산과 목포시가지, 목포 앞바다를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다. ⓒ 이돈삼
 
숲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도 좋다. 숲길이 용의 형상을 한 섬의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이름도 '고하도 용오름길'로 붙여져 있다. 모충각에서 용머리까지 편도 3㎞ 남짓 된다. 숲길에서 보는 유달산과 다도해 풍광도 매혹적이다.
 
목포 앞바다를 오가는 해상케이블카도 한눈에 들어온다. 해상케이블카에서는 목포 시가지와 유달산, 고하도 인근 바다를 다 내려다 볼 수 있다. 운행거리 3230m로 국내에서 가장 긴 케이블카다.
 
용오름길의 숲길도 호젓하다. 봄물이 잔뜩 오른 숲길을 따라가면, 오른편으로 목포항과 유달산이 보인다. 그 배경으로 바다에서 크고 작은 배들이 물살을 가른다. 다른 쪽으로는 다도해 풍광이, 앞에서는 목포대교가 위용을 뽐낸다.
 
숲에서는 연둣빛 신록이 마음속까지 환하게 밝혀준다. 숲에서 재잘거리는 새들의 소리도 귓전을 간질인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바닷물 일렁이며 들려주는 파도소리도 감미롭다. 탕건바위, 칼바위, 말바우, 용머리 풍광도 빼어나다. 용머리는 목포팔경의 하나로 꼽힌다.
  
고하도 용오름길에서 만나는 말바위. 바위의 생김새가 말발굽을 닮았다고 이름 붙여져 있다. ⓒ 이돈삼
   
고하도 전망대.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13척의 판옥선을 형상화하고 있다. ⓒ 이돈삼
 
이 모든 풍경을 한 자리에서 조망할 수 있는 고하도 전망대도 있다.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13척의 판옥선을 형상화하고 있다. 전망대에서 용머리까지는 해안데크를 따라 바다의 암석이 빚어놓은 해식애도 볼 수 있다. 용을 형상화한 용머리 포토존과 이순신 조형물이 설치된 포토존도 있다.
 
다도해를 시뻘겋게 물들이는 해넘이의 장관이 사라질 때쯤 해안데크에 경관조명도 들어온다. 휘황찬란한 목포대교와 유달산의 경관이 한데 버무려져 황홀경을 선사한다. 색다른 목포밤바다의 매력이 한껏 펼쳐지는 순간이다.
 
고하도 해안데크에서 만나는 용 포토존. '용섬' 고하도의 이미지를 떠올려준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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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