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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감이 흐르는 땅, 연천
 
고구려성 호로고루 호로고루는 고구려가 임진강 유역에 쌓은 천혜의 자연요새이다. 강과 20m 높이의 주상절리와 절벽을 방어벽으로 활용하였다. 고구려는 호로고루에서 당나라와 최후의 결전을 벌인 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 변영숙
 
경기도 연천에는 언제나 긴장감이 흐른다. 마을을 조금만 벗어나면 곳곳에 철조망과 방호벽이 보이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지뢰' 표지판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어디서 총을 든 군인들에게 막혀 길을 돌아가야 할지 모른다. 일부 지역은 민간인 출입이 통제된다. 비극적인 현대사가 만들어낸 오늘날 연천의 모습이다.

비극적인 현대사의 한 장면을 걷어내야 비로소 연천의 모습이 보인다. 동쪽으로는 고대산, 보개산, 화인봉, 향로봉, 종자산이 남쪽으로는 감악산, 마차산, 종현산 등 부드러운 연봉들에 둘러싸인 연천 지역은 함경남도 두류산에서 발원한 임진강과 평강군 장암산에서 발원한 한탄강이 유유히 흐르는 산좋고 물좋은 풍요로움이 넘치는 땅이다. 

비옥한 토양과 풍부한 수량, 적절한 일조량 덕에 쌀농사와 인삼농사 등 안 되는 농사가 없는 연천평야는 철원과 함께 중부지방의 최대 곡창지대였으며 서해로 흘러가는 강줄기를 따라 형성된 포구들 덕에 6.25 이전 한강 이북의 최대 교역의 중심지였다. 
 
연천 전곡 지역은 한반도 최초의 구석기시대 거주지와 선사시대의 유적지가 다량 발굴되고 화산 활동으로 인해 형성된 주상절리 등이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는 등 한반도 지질 형성과 한반도 최초 인류의 비밀을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다. 연천은 우리나라 고대국가들이 명멸해갔던 숨막히는 역사의 격전지이자 중세 고려 500년 역사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와 인접한 곳으로 다양한 층위의 역사와 문화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 역사와 고고학의 현장이기도 하다. 

오랜시간 DMZ과 인접해 있던 탓에 모든 개발 가능성에서 밀려나 있던 연천 지역을 이제부터라도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삼국의 마지막 격전지 임진강 일대 
 
연천 장남면 호로고루가 위치해 있는 연천 장남면. 북한땅과 맞닿아 있는 장남면은 개성인삼의 맥을 잇는 인삼의 고장으로도 유명하다. ⓒ 변영숙
 
1400여 년 전에 역사속으로 사라진 고대국가의 유적을 만난다는 것은 마냥 설레는 일이다. 더욱이 남한 지역에서 매우 드물게 발견되는 고구려 유적이라면 설렘에 호기심까지 더해진다. 

회색 구름이 짙게 깔려 있던 날 임진강변의 고구려성 '호로고루'를 찾았다. 호로고루가 위치한 연천 장남면은 파주 적성면과 맞닿아 있다. 파주 적성 전통시장을 지나 장남교만 건너면 '인삼의 고장 장남면'이라 적힌 기념탑이 위풍당당하게 방문객을 반긴다. 

장남면의 또 다른 축은 고려인삼의 원산지격인 북한 개성의 장풍군과 맞닿아 있다. 토양과 기후가 같아 역시나 인삼이 유명하다. 장남면 들녘에는 그늘막이 세워진 인삼밭이 끝없이 어어지는데 이 역시 초행자에게는 매우 이색적인 풍경이다.

네비게이션의 안내대로 들녘을 가로지르니 텅 빈 논밭 너머로 얕으막한 구릉이 모습을 드러낸다. 호로고루의 첫인상은 성이라기보다는 농한기에 들판에 길게 누워 쉬고 있는 소를 연상시킨다. 

고구려성 호로고루 
 
호로고루에서 바라본 임진강 호로고루 부근은 수심이 낮은 여울목이 지난다. 이곳은 한양과 평양(개성)을 잇는 최단 육로로 대규모 병력이동이 가능한 전략적 요충지였단 까닭에 삼국간의 전투가 여러 차례 벌어졌던 곳이다. ⓒ 변영숙
 
호로고루란 명칭은 과거 이 지역이 임진강을 뜻하는 '호로하, 표하'라 불린 데서 유래했다는 설과 고을을 의미하는 '홀'과 '성'을 뜻하는 '고루'가 합해져서 생긴 명칭이라는 설이 있다. 

삼국사기에는 호로고루 인근에서 삼국이 전투를 했다는 기록이 여러 번 나오는데 이 지역이 육로로 평양과 한양을 잇는 최단 지역으로 대규모 병사 이동이 가능한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임진강 하류부터 고랑포까지는 수심이 깊어 강을 건너려만 배를 타야 했던 반면, 호로고루 부근은 수심이 낮은 여울목이 지나고 있어 걸어서도 강을 건널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원래는 백제의 영토였으나 4세기 중엽 이후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 6세기 중엽 이후 신라군에 밀려 임진강 유역까지 후퇴한 고구려는 임진강을 따라 호로고루, 당포성, 은대리성, 무등리보루, 덕진산성 등 10여 개의 성을 쌓는 등 최남단 방어선을 구축하고 120여 년간 신라와 대치하였다. 

평양성이 함락된 후 고구려 부활군은 호로고루에 집결하여 마지막 항전을 하였으나 결국 당나라군에게 함락되고 말았다. 고구려 병사들은 뿔뿔히 흩어져 도망갔다. 더러는 신라군에 투항하기도 했다. 그렇게 고구려는 영원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고구려가 쌓은 10개의 성 가운데 현재 호로고루, 당포성, 은대리성이 발견되어 복원되었다. 호로고루는 6.25 전쟁 후 아주 우연한 계기로 그 존재가 드러났다. 6.25때 북한군이 포를 설치하는 바람에 크게 손상된 채 방치되어 있던 성벽에 (물론 고구려성인 줄도 몰랐다) 마을 주민이 뱀을 잡는다고 올라갔다. 그때 성벽의 일부가 무너져 내렸는데 무너진 성벽 안쪽에서 성 내벽의 일부가 드러나면서 호로고루의 존재가 밝혀졌다. 
 
호로고루 연천의 논을 가로 질러 임진강변에 세워진 고구려성 호로고루의 모습은 길게 누운 한 마리 소를 연상시킨다. ⓒ 변영숙
 
천혜의 자연요새 호로고루 

호로고루 입구에는 광개토대왕의 모형비와 홍보관이 세워져 있다. 비록 전시관에는 유물 한 점 없지만 호로고루에 관한 설명과 발굴 과정과 출토유물에 대한 설명이 비교적 잘 되어 있다. 연천군 문화홍보 담당관에 따르면 출토 유물은 발굴에 참여했던 기관들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산성과 달리 평지성인 호로고루는 우리가 흔히 보았던 성과는 다른 모습이다. 암갈색 현무암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성벽의 높이는 10m가 될까 말까 하고 위로 가면서 좁아지면서 비스듬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성벽의 양쪽에는 낮게 성을 한 겹 더 쌓은 듯 돌출된 작은 구조물이 있다. 
 
고구려성 호로고루 성벽 위에 올라서면 주변이 한 눈에 들어온다.호고고루 지역은 수심이 낮은 여울목이 지나 걸어서도 건널 수 있던 전략적 요충지이다. 한성과 평양을 잇는 최단 거리이다. ⓒ 변영숙
 
계단을 밟고 성벽 위에 올라서서 주변 지형을 둘러보면 왜 호로고루가 천혜의 자연요새인지 단박에 이해가 된다. 임진강 절벽 위에 세워진 호로고루는 동쪽을 제외한 삼면이 모두 15m 높이의 주상절리와 절벽이어서 그대로 성벽으로 활용되었고, 동쪽 평지에만 폭 40m, 높이 10 m, 길이 90m 성벽을 쌓아 방어벽을 구축한 것이다. 이런 지형을 찾아낸 고구려인의 혜안이 놀라울 뿐이다.

호로고루가 처음 고구려유적으로 확인된 것은 1991년도 군사보호구역 내 문화유 산조사를 통해서였다. 이후 2000년도부터 총 네 차례에 걸친 발굴조사 결과 다양한 문양의 붉은색 고구려 기와를 비롯해 토기, 토제 및 각종 동물 뼈와 탄화곡물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호로고루에서는 남한 지역의 고구려 유적들 중 가장 많은 기와가 출토되어 '고구려 기와의 보고'라고도 불린다. 
   
임진강변에 세운 고구려성 호로고루 임진강변의 삼각형 평지에 쌓은 고구려성 호로고루는 높이 10m, 길이 90m, 폭 40 m의 규모이다. 고구려 멸망 후 신라는 이 성을 고쳐 쌓았다. 고구려와 신라의 흔적이 동시에 남아 있다. ⓒ 변영숙
   
이외에도 주둥이가 뾰족한 휴대용 남성 소변기인 '호자', 상고(祥鼓)라고 적힌 악기의 일부분으로 보이는 토기조각, 고구려인 모자 형태의 토기제품같은 흥미로운 유물들이 다수 출토되었다. 이들 유물들은 고구려의 문화와 생활양식을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인 바 한국 고대사 연구의 진일보에 기여할 것이다.  
 
고구려 당포성 호로고루에서 14km떨어진 임진강변에 호로고루와 똑닮은 당포성이 있다. ⓒ 변영숙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호로고루에는 고요만이 가득하다. 이따금씩 물기 어린 새들의 날갯짓 소리가 들릴 뿐이다. 모든 것이 멈춰선 듯하다. 여기서 14km 떨어진 곳에 호로고루와 똑닮은 고구려의 당포성이 있다. 문득 텅 빈 대지 위에서 먼 과거의 시간과 마주하고 싶은 날 이곳으로 달려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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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행작가협회준회원, NGPA회원 저서: 포토 에세이 <사할린의 한인들>, 번역서<후디니솔루션>, <마이크로메세징> - 맥그로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