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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풍수학자 최창조 선생은 "마음 편한 곳이 명당"이라 했는데 나에게는 지금 살고 있는 산골 마을이 그렇다. 밥벌이인 일과 여행으로 전국 각지와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 보았지만 호젓함을 좋아하는 내게 이곳만큼 마음 편한 곳이 없다.

하지만 오래 전 지어진 시골집이라 겨울나기는 언제나 몸이 고달프다. 구들방을 데우느라 땔감을 마련하는 것은 처음에는 힘들지만 쌓여가면 통장에 잔고가 늘듯 뿌듯하다.

감내하기 어려운 것은 부엌과 화장실 물이 얼어버려 하루하루 사투를 벌여야 할 때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동네 용이 할매는 "돌아서면 또 나고 돌아서면 또 나는 게 풀이라예, 한평생 풀 뽑다가 다 보냈심더"라고 하셨다. 먹고 먹이고 살고 살아가야 하는 삶의 고단함을 일러주신 것인데 내게는 겨울 한 철 수돗물이 그랬다. 녹여 놓으면 또 얼고 녹여 놓으면 또 어는 이 무정한 놈의 물. 재작년 겨울에는 이상 한파가 와서 정화조까지 얼어버려 겨우 내내 산속 이곳저곳에 퇴비를 주는 산책으로 아침을 맞이해야만 했다. 
 
마음 편한 곳이 명당 몸이 불편하여 피한 여행을 떠나다. ⓒ 손승열
 
여우 무서워 피했다가 호랑이를 만나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보다는 멀리 도피해 물가 대비 따뜻한 나라에서 겨울도 나고 명상도 해보자며 태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 여행비면 수도 배관 공사를 단단히 하고도 남을 터인데... "날씨 네가 아무리 추워 봐라. 내가 옷 사 입나. 술 사 먹지." 뭐 이런 술타령 투다.

그러나 여우가 무서워 피했다가 호랑이 만난 격으로 명상 여행은 고통으로 시작됐다. 치앙마이 도착과 함께 감기 몸살에 37.5도의 고열이 겹쳐 숙소 침대를 끌어안고 지내야만 했던 것.

3일간 무리하게 이동한 탓도 있지만 30년간 절친했던 알코올&니코틴과 결별하고 명상 센터로 들어가려는 계획으로 인해 심리적 불안이 병을 만든 듯하다. 게스트 하우스 직원은 이렇게 증언했다.

"어젯밤 난 당신이 황천길 가는 줄 알았다. 밤새 끙끙 않고 비명을 지르고 헛소리까지,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연말의 치앙마이 인구 대비 방콕보다 관광객이 많은 듯, 길고긴 야시장 거리는 몰려든 여행자들과 장사하는 사람들로 걷기조차 힘든 북세통 이였다. ⓒ 손승열

아픈 몸을 이끌고 센터로 접수하러 가는 길에 합성 택시 썽태우에서 한국 중년 여성 두 분과 동행했다. 자신들 몸집만한 캐리어를 들고 온 그들은 요즘 핫하다는 치앙마이 한 달 살기를 하러 왔단다. 해외여행깨나 다녀본 듯한 한 분이 썽태우 안에 도배된 '보고, 즐기고, 체험하는 여행사 홍보 사진'들을 보며 한 마디 던진다.

"이번엔 이런 거 1도(하나도) 안 하려고요. 하루에 한 번 마사지 받고 저녁에는 재즈 댄스나 배우며 지낼 겁니다."
"저도 이런 거 1도(하나도) 관심 없고요. 우멍이라는 절에서 운영하는 명상 센터로 예약하러 가는 길입니다."
"일종의 아쉬람? 템플스테이 같은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술 담배 끊고 명상에 전념해 보려고요."
"아니, 그 좋은 걸 왜?"

나는 '그 좋은 걸 너무 좋아했더니 탈이 나서요'라고 말하려다 부끄러워 말 못하고 허허 웃기만 했다. 그날 저녁 게스트 하우스에서 입소 전 마지막 음주를 시도했다. 그런데 술 한 잔, 담배 한 모금마다 몸이 쑤시고 아팠다. 고통이 너무 심해서 결국 맥주 한 캔을 못 비우고 침대로 향했다.

이종격투기 선수에게 두들겨 맞은 듯 비몽사몽 하는 머리를 감싼 채 고꾸라져 누워 있노라니 낮에 만난 여행자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그 좋은 걸 왜? 그 좋은 걸 왜?...' 하루하루 내 '소확행'이던 것들과 헤어져 몸과 마음을 강건하게 해보려는 '대확행'으로의 첫걸음은 그렇게 대고통으로 시작됐다.
 
왓 우멍 명상 센터, 남자 숙소 2mx2m 방에 샤워, 화장실은 공용이다. 여기서 나는 보름간 머물렀다. ⓒ 손승열
   
센터에서의 첫날. 같이 입소한 폴란드 부부, 한국에서 복무 중이라는 미국인 병사(한국어가 유창했으며 미국 특수부대 '델타포스'라는 소문이 나중에 돌았다)와 함께 젊은 스님에게 간단한 명상법을 배우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미국 병사는 궁금한 것이 많았다.

"붓다는 신인가? 인간인가?"
"그분은 '나는 깨달은 이다'라고 답했다."
"신이 아니라면 센터 안에 있는 불상들은 왜 있는 것인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 불상들은 무얼 하고 있나?"
"음, 명상을 하고 있다."
"그렇다. 말을 거두고 명상을 해보라. 자애로운 마음으로 그 무엇도 아닌 그대 자신의 호흡을 지켜보라. 그리고 몸의 느낌과 마음을 고요하게 지켜보라. 그것이 마음 챙김(mindfulness)이다."

호흡은 삶에서 가장 긴 드라마
 
야외에서 명상 중인 사람들 이곳은 실내나 실외를 가리지 않고 자기 마음 내키는 곳에서 명상을 한다. ⓒ 손승열
 
왓 우멍 명상센터에서 보름간 머물며 나는 들어오고 나가는 숨에 마음을 집중하는 호흡 명상을 했다. 왜 호흡일까? 물리학자 김상욱은 책 <떨림과 울림>에 이렇게 적었다.
 
"우주는 떨림이다. 정지한 것들은 모두 떨고 있다."
"인간은 울림이다. 우리는 주변에 존재하는 수많은 떨림에 울림으로 반응한다."
"사람은 한순간이라도 숨을 쉬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숨을 쉰다는 것은 산소를 들이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뱉는 것이다."
"산소는 반응성이 큰 원자다. 다른 원자를 만나면 바로 결합한다. 따라서 산소가 홀로 몸속을 어슬렁거리며 다니는 것은 위험하다. 산소가 몸을 이루는 원자들과 마구 결합하여 망가트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산소를 활성산소라 부른다. 노화의 주범이며, 죽음의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러니지만 몸의 모든 세포는 에너지를 얻기 위해 산소를 필요로 한다." 
 
떨림과 울림 커피잔 안으로 들어온 풍경이다. ⓒ 손승열
 
삶과 죽음 양쪽의 산소는 공평하게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하여간 우리의 일생은 호흡으로 시작해 유지되고 끝을 맺는다. 몇 해 전 여행에서 만난 티베트인 사진가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들어오는 숨은 생이고 나가는 숨은 멸이다. 우리는 평생 생과 멸을 반복 윤회하고 있다. 티베트에는 죽은 자의 몸을 잘라 독수리들에게 먹이로 주는 풍습이 있다. 숨의 끝인 목숨을 다한 시신은 한낱 고깃덩어리에 불가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고대 힌두교 경전 우파니샤드는 "이 세상 삶의 무대를 '변하는 곳', '방황하는 곳'으로 지칭하며 개개인이 이 세상을 바르게 알고 적극적으로 살아갈 것을" 권한다.

경전 속 현자들은 우주의 법칙을 생성, 유지, 파괴의 호흡으로 보고 인간의 호흡도 같은 방식으로 들숨, 정지된 숨, 날숨으로 작동한다고 파악했다. 그들은 브라마(우주, 참된 실재)와 아트만(개체아, 참 자아)의 호흡을 동일하게 본다. 브라마라는 단어 자체가 '넓게 펑퍼짐하게 퍼져 있는'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브라마와 아트만은 하나다'라는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이다.
 
부분과 전체는 하나다 명상이 되지 않는 날 땡땡이 치고 무작정 걷다가 발견한 곳. 산위로 무작정 걸어 올라가니 치앙마이 제일 명소 도이수텝이 나왔다. ⓒ 손승열
 
현자들은 숨을 찬미하고 호흡 수련을 적극 권한다.

"근원으로부터 호흡은 시작됐다. 사람의 몸에 마치 그림자 같이 호흡은 연결돼 있다. 마음의 움직임으로부터 호흡은 동시에 몸으로 스며든다."

타고르의 정신적 스승인 15세기 신비로운 성인 까비르(kabir)는 이렇게 노래했다.

"구도자여, 어디에서 나를 찾는가. 나는 사원에도 없고 제식에도 요가 수행에도 출가 수행에도 없다. 나는 그대 곁에 있다. 그대가 진정한 수행자라면 나를 볼 것이다. 매 순간 그대는 나를 만날 것이다. 신은 모든 존재의 호흡 속에 있다. 그 숨 속의 숨이다."

불교의 호흡 명상은 이런 신비로운 신의 영역이 아닌 인간의 영역을 탐구한다. 남방의 테라바다(Theravada, 장노들의 길이란 뜻, 상좌부라고 한역) 전통의 명상은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대상으로 그 대상을 통찰하는 명상이다. 24시간 끊임없이 들어오는 TV 뉴스처럼 호흡은 온종일 쉼 없이 일어나는 사건이다.

이를 주시하고 알아차리는 명상법은 너무나 심플하다. 이 심플함이 사건 사고 없는 뉴스나 드라마를 보는 듯이 지루할 수 있지만 온전한 관심으로 지켜보면 호흡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생사에서 가장 긴 드라마다. 아나빠나 삿띠경(Anapanasati Sutta, 들숨 날숨에 마음 챙김경)에 나오는 호흡 관찰의 16단계 중 앞부분은 이렇다.
 
"수행승들이여, 호흡에 대한 알아차림의 집중을 수행할 때 다음과 같이 분명하고 확고하게 알아차려야 한다. 들이쉬는 숨이 길면 '길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내쉬는 숨이 길면 '길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들이쉬는 숨이 짧으면 '짧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내쉬는 숨이 짧으면 '짧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호흡의 전 과정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수행하고, '호흡의 전 과정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수행한다. '호흡을 고요히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수행하고, '호흡을 고요히 하면서 내쉬리라'며 수행한다." 
 
명상중인 여인, 왓 람퐁에서 태국어로 왓은 절을 뜻함. 왓 우멍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이곳도 명상 센터를 운영 중이다. ⓒ 손승열
 
뒤늦게 깨달았다, 절제란 좋은 것임을

숨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고 호흡 명상은 현재에 머무는 연습이다. 이미 지나간 과거와 오지도 않은 미래에 번민하지 않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자신의 뉴스를 생생하게 관찰하는 것이다. 혜민 스님은 이해하기 쉽게 이렇게 표현한다.

"숨은 우리 몸과 마음을 연결해주는 아주 중요한 다리다. 숨이 편하면 마음도 편해지고, 숨이 거칠면 마음도 거칠게 된다. 반대로 마음이 급하면 숨도 역시 급하게 변하고, 마음이 고요해지면 숨도 역시 고요해진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숨은 항상 현재에서 쉬고 있다는 점이다. 숨을 놓치지 않고 있으면 결국 현재를 놓치지 않게 된다. 그렇게 숨을 느끼다 보면 자연스럽게 숨이 편안하고 깊어지면서 마음도 역시 따라서 편안하고 깊은 침묵 속의 평화를 맛보게 된다."

호흡 명상은 단순 간결하며 모든 명상의 기본이다. 기본기가 좋으면 그 다음은 저절로다. 미술의 기초는 드로잉이다. 그림에 무관, 무능했던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친구가 그리는 그림에 반해 3년간 칠판 쪽을 보지 않고 종이라는 모든 종이에 그림만 그렸다. 그러자 당시 인기있던 만화 잡지 <보물섬>에 나오는 만화 주인공들을 똑같이 보고 그릴 수 있었다.

다시 3년을 그렇게 보내니 인물 초상화를 사진처럼 묘사했다. 또 3년이 흐르자 명화를 모작할 수 있었다. 순수하게 좋아하고 연마한 결과다. 물론 칠판 쪽을 바라보지 않은 피해는 막대하다. 미술가의 삶이 이렇듯 생고생인 줄 알았다면 나는 분명 좀 더 열심히 칠판 쪽을 보았을 것이다. 
 
왓 람퐁 명상 센터 이곳은 여성 수행자들이 많고 걷는 명상을 많이 한다. ⓒ 손승열
 
명상 여행을 다녀온 지 1년이 지난 지금 생각하면 명상은 아무 도구도 필요 없고 아무것도 만들어내지도 남기지도 않는 제로(0) 예술이다. 평온하고 밝게 빛나는 마음의 본래 성품을 깨닫는 가장 순수한 예술이 바로 명상이라고 느낀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들어간 첫 명상 센터에서의 사흘간 나는 밤마다 앓았다. 첫날은 감기 몸살에 배고픔, 알코올, 니코틴 고픔이 합세해 사면초가에 갇혀 혼미하게 밤을 지새웠다. 둘째, 셋째 날은 더 극심한 고통 속이었다. 등과 어깨에서 뭔가 빠져나가려는 듯 가렵고 괴로워 좀체 등을 대고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몸서리치도록 고통스러운 금단의 밤, '이토록 내 생활이 무절제했구나'라고 되뇌자 눈물이 주르룩 흘렀다. 크리스마스 밤 나 자신에게 하는 고해성사였다.

'좋아함도 독이고 싫어함도 독이다'라고 했는데 내 그토록 좋아하고 아끼던 것들이 내 등에 비수를 꽂는것 같았다. 아니, 내가 던진 비수에 내가 맞은 꼴이다.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명상홀에 앉아 명상에 돌입하면 잠 삼매경에 빠지는 신비로운 체험을 하였다. 그리고 사흘이 지나 뒤늦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왔다. 감기 몸살과 금단이 완화되고 단 몇 시간이지만 숙면을 취한 것. 수면 시간은 짧았지만 몸은 편안하고 정신은 맑아져 이런 일이 가능함에 스스로 놀라웠다. 생애 처음 절제의 미덕을 맛본 것이다. 넘치면 모자란 것만 못한 것. 절제란 좋은 것임을 이제야 알았다.

* 명상여행 팁
치앙마이의 두 명상 사원 왓 우멍(wat umong)과 왓 람퐁(wat ram poeng)은 도심과 가깝고 수시로 접수를 받는다. 치앙마이에서 40km 떨어진 람푼 지역에 위치한 담마 시만타(Dhamma Simanta)에서는 고엔카 스타일의 위빠사나 10일 코스를 진행하고 있다. 사이트(Thailand Vipassana Centre Dhamma Simanta)에 공지된 날짜를 보고 미리 신청하는것이 좋다. 코스는 태국어와 영어로 진행되지만 한국어로 통역한 오디오를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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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 -마르셀 푸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