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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사 오리숲길 아름드리나무들이 십 리의 반인 오 리에 이르는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올해는 단풍이 늦게 내려오고 있다.ⓒ 정명조

갑사 오리숲길을 걸었다. 황매화 마을을 지나 일주문과 갑사를 거쳐 용문폭포에 이르는 숲길이다. 회화나무, 말채나무, 느티나무, 갈참나무 등 아름드리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추갑사(秋甲寺)'의 명성도 오리숲길의 풍광에서 나온 것일 성싶다.
 
가을이 익어가는 십일월 초에 갑사를 찾았다. 오리숲길의 아기단풍은 이제 막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이라서 관광객은 많지 않았다. 사람들이 몰려올 즈음, 추갑사의 아쉬움을 품은 채 마곡을 향했다. 김구 선생이 걸었던 길을 달리고 싶었다. 120년 전에는 온종일 걸었을 백 리 길을, 차로 이동하니 50분 남짓 걸렸다.
 
마곡사 입구 김구 선생이 120년 전 마곡사에 처음 올 때 보았을 풍광이다. ‘만산풍엽은 누릇누릇 붉읏붉읏’이라고 백범일지에 기록하였다.ⓒ 정명조

갑사에서 마곡사로
 
종일 행보하야 마곡사 남편 산상에 등(登)하니, 일색은 황혼인데 만산풍엽(滿山楓葉)은 누릇누릇 붉읏붉읏 하여 유자비추풍(遊子悲秋風)인 데다가, 저녁 안개가 산밑에 잇는 마곡사를 잠을쇠하야, 나와 같은 온갖 풍진 속에서 두출두몰(頭出頭沒)하는 자의 오족(汚足)을 거절하는 듯한데, 저녁 종소리가 안개를 헤치고 나와서 내의 귀에 와서 "일절 번로를 해탈하고 입문하라"는 권고를 하는 듯하다. <정본 백범일지>

홍시가 저절로 떨어지는 때였다. 백범 선생은 탈옥 후 남도를 떠돌다 갑사에 도착한다. 공주 이 서방을 만나 마곡사까지 동행한다. 이 서방은 스님이 되어 편하게 지내려고 생각하며, 백범 선생도 스님이 되기를 은근히 권한다.

"이 자리에서 노형과 결정하면 무슨 필요가 있겠소. 절에 들어가서 중이 되려는 자와 중을 만들 자 사이에 의견이 맞아야 할 것 아니요?"

다시 권하는 이 서방에게 백범 선생이 이처럼 말하며, 매화당(梅花堂)에 도착한다.
 
매화당 마곡사 태화선원의 중심으로 스님들이 안거하는 곳이다. 빨간 단풍으로 둘러싸였다.ⓒ 정명조

마곡사 남원

매화당은 스님들의 수행공간인 남원(南院)에 있다. 본래 생활 공간이었으나 지금은 태화선원 중심 건물이다. 평상시에는 적막에 잠긴 곳이다. 조용히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다.
 
마곡사에서 남원의 단풍이 가장 아름답다. 단풍을 보기 위하여 사람들이 모여든다. 단풍철이면 스님들 수행에 적잖은 어려움이 있으리라. 그러나 어쩌랴. 그런데도 끊임없이 정진하는 것이 최고의 수행인 것을.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사진 찍는 소리가 공간을 마구 휘젓고 다닌다. 거기에 웃음소리가 더해진다. 모두의 얼굴에 행복이 가득하다. 남은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 즐겁게 보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영산전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각이다. 현판 글씨는 조선 세조 작품이다.ⓒ 정명조
 
영산전 천불 과거 칠불과 현겁 천불이 있다. 기도를 마치고 눈을 떴을 때 맨 처음 마주친 부처가 자신과 인연이 깊다고 한다.ⓒ 정명조

배우자 얼굴을 닮은 부처

남원의 중심은 영산전이다.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각이다. 군왕대의 맥이 산신각을 지나 이곳까지 흐른다. 유명한 기도처다. 여기서 기도하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하여,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영산전 안에 과거 칠불과 현겁 천불이 있다. 조용히 눈을 감는다. 기도를 마치고 눈을 떴을 때, 맨 처음 마주친 부처가 자신과 인연이 깊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배우자 얼굴을 닮은 부처와 눈이 마주친다. 천생연분이다. 그러나 배우자를 닮지 않았다고 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다음 생의 인연을 미리 봤을 수도 있으니.
 
현판 글씨는 세조 작품이다. 조카인 단종을 몰아내고 왕이 된 세조는 김시습을 보러 마곡사를 찾는다. 세조가 온다는 소식에, 김시습은 부여 무량사로 급히 떠난다. 세조는 영산전 현판 글씨와 자신이 타고 간 마차를 마곡사에 남기며 아쉬워한다.
 
묵직한 필체의 현판에 세조대왕 어필이라고 쓰여 있다. 마차는 성보박물관에 있다. 임진왜란 후 60년 남짓 동안 폐사되었음에도, 세조 어필과 마차는 지금도 잘 보관되어 있다.
 
희지천 삭발바위가 있는 희지천에도 가을이 내려앉았다.ⓒ 정명조
 
명부전 춘마곡의 초록은 간데없고 명부전 앞마당에 울긋불긋 단풍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정명조
 
해탈문 해탈문을 지나자마자 행복한 미소를 짓게 하는 풍광이 펼쳐진다.ⓒ 정명조

추갑사 못지않은 추마곡이었다. 가을에 찾은 마곡사에 부처는 없고, 단풍에 취한 중생만 가득했다. 모두 부처가 되어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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