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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곡사 가는 길 마곡사를 휘감고 도는 마곡천을 따라 걷다 보면, 멀리 극락교가 보인다.ⓒ 정명조

아내가 떠났다. 딸과 함께 여행을 갔다. 딸은 오랜만에 한 달여 황금 휴가를 얻었다. 딸은 제안했고, 아내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딸과 아내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가득했다. 홀로 남은 나도 떠났다. 마곡사에서 하룻밤 보냈다. 수차례 방문한 마곡사다. 마곡의 유혹에 빠진 지 오래인데, 하룻밤 머물 생각에 또다시 마음이 설렜다.
 
템플스테이 가는 길 심검당 뒤에 템플스테이 숙소와 공양간이 있다. 휴식형은 주중에, 체험형은 주말에 진행된다.ⓒ 정명조

가장 성공한 문화체험
 
템플스테이는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우리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OECD는 "매우 경쟁력 높은 문화자원"으로 선정하며,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문화체험 상품으로, 국제화 잠재력이 높다"라고 평가했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이 '2018 템플스테이 우수 운영 사찰'로 선정할 정도로, 마곡사 템플스테이는 유명하다. "소나무 숲속 솔바람길 걸으며 명상의 시간을 가져 보고,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앞만 보고 달려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위로와 회복을 경험할 수 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친구는 은퇴하면 백일 동안 암자에서 살고 싶어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40년 직장 생활을 마무리한 후라면, 그만한 호사쯤 누려도 될 듯하다. 막연한 기대다. 분위기를 미리 느끼고 싶었다. '수리수리 숲소리' 휴식형 템플스테이를 신청했다.
 
첫째 날 오후 4시에 도착했다. 하룻밤 머물 방을 배정받고, 수련복으로 갈아입었다. 어색했지만, 몸은 편했다. 감촉도 좋았다. 사찰에 잿빛 옷이 많은 이유가 궁금했다.
 
청빈하고 절제된 삶을 나타내는 색깔이 필요했다. 아궁이에서 숯가루를 쉽게 구했다. 곱게 빻아 자루에 넣고 물과 함께 치대면, 잿빛 옷감이 만들어졌다. 사찰에서 잿빛 옷을 많이 사용한 계기다. 지금은 시대 흐름에 따라 다양한 색깔이 사용되고 있다.
 
대광보전 오층석탑과 대광보전, 대웅보전이 일직선으로 늘어서 있다. 청기와는 대웅보전 앞마당에서 보면 찾기 쉽다.ⓒ 정명조

대광보전 삿자리
 
사찰 안내를 받았다. 대광보전 '삿자리를 짠 앉은뱅이' 이야기가 걸작이었다. 180여 년 전, 앉은뱅이가 백일기도를 하며 부처님께 바칠 삿자리를 짰다.
 
"다음 생에 걸을 수만 있다면, 평생 불교에 귀의하여 살겠습니다."
 
삿자리를 짜며 기도하다 보니, 간절한 소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지금 이대로도 감사합니다."
 
백일이 지나고 삿자리를 완성한 후, 법당을 나섰다. 자신도 모르게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지금은 대광보전 마루에 카펫이 깔려 있고, 그 밑에 삿자리가 있다. 그때 짠 삿자리인지는 알 수 없다.
 
청기와를 보았다. 대광보전 용마루에 청기와가 하나 얹혀 있다. 대광보전 옆 계단을 올라 대웅보전 앞마당에서 찾아보면 쉽게 눈에 띈다. 저승에 갔을 때 마곡사 청기와를 보았는지 염라대왕이 꼭 물어본다고 한다.
 
명상과 요가
 
산사의 하루는 일찍 끝나고 일찍 시작된다. 9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사방이 어둠에 묻혀 고요했다. 소쩍새가 구슬피 울어 댔다. 눈은 감았지만, 정신은 초롱초롱했다. 한참을 뒤척였다.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찬 공기가 상쾌하게 다가왔다. 숙면으로 머리도 맑았다. 몸은 훨훨 날아오르고, 마음은 조용히 가라앉았다.
 
새벽 예불 후, 스님과 함께하는 명상의 시간이 있었다. 반가부좌를 하고 눈을 감았다. 긴 들숨과 긴 날숨, 그 사이 5초간의 멈춤. 호흡이 쉽지 않았다. 목탁 소리와 물소리, 새소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밤꽃 향기가 창문을 통하여 진하게 스며들었다.
 
호흡에 집중했지만, 명상 시간이 길어지자 잡념이 꼬리를 물었다. 이내 마음이 평안해지고, 무념무상에 들었다. 눈꺼풀이 한없이 무거워졌다. 하마터면 숙면에 빠질 뻔했다. 갑작스러운 죽비 소리에 화들짝 깨어났다.
 
간단한 요가 동작도 반복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쉬운 자세에도 삭신이 쑤셨다. 이마에 땀방울이 송알송알 맺혔다. 나이 탓이라고 에둘러 자신을 위로했다.
 
군왕대 마곡사에서 땅 기운이 가장 강한 곳으로, 조선 세조가 감탄한 곳이다.ⓒ 정명조

만세불망지지(萬世不亡之地)
 
군왕대(君王垈)에 갔다. 영산전을 거쳐 산신각 오른쪽 비탈길을 오르면 군왕대다. 조선 세조가 감탄한 곳이다.
 
"내가 비록 한 나라의 왕이지만, 만세불망지지인 이곳과는 비교할 수 없구나!"
 
왕이 나올 정도로 기운이 강하여, 암매장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 자손이 발복되어, 왕이 될까 봐 두려웠나 보다. 조선 조정에서는 암매장된 유골을 모두 파내고, 공간을 돌로 채웠다고 한다.
 
20평 남짓한 공터다. 땅 기운이 여러 갈래로 흘러 내려오다 멈춘 곳이다. 더는 가지 못하고, 이곳에 모두 모여 있다. 좋은 기운을 받기 위해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 나도 오랫동안 머물렀다.
 
명당을 차지해 운명을 바꾸려는 자들을 생각했다. 영화 <명당>의 천재 지관이 이곳을 보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삿자리를 짠 앉은뱅이의 깨달음이 부러울 뿐이다.
 
최고의 숲길 군왕대에서 나발봉 방면 1.2km가 마곡 최고의 숲길이다. 한여름에도 그늘이 지고, 평균 경사도가 1%로 산책하기 좋다.ⓒ 정명조
 
극락교 템플스테이 중 극락교를 건너며, 인간의 세계와 신의 세계를 들락거렸다.ⓒ 정명조

점심을 먹고, 하룻밤 머문 방을 정돈했다. 다음 인연을 기약하며, 마곡 최고의 숲길을 다시 걸었다.
 
집에 오는 길에 양조원에 들러, 알밤 막걸리를 샀다. 마곡사 자락 천연 암반수로 빚은 술이다. 이십 대를 즐기고 있는 딸에게 그 맛을 보여 주고 싶었다. 며칠 후 주말 저녁에 해물파전을 부쳤다. 딸과 아내는 파전만 맛있게 먹었다. 그들은 멀쩡하고, 나만 흠뻑 취했다. "지금 이대로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거워했다.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다. <중국 속담>
 
삿자리를 짠 앉은뱅이에게 기적은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었다. 우리는 지금 기적 속에서 살고 있다. 항상 감사하며 행복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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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