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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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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예퉁(광주리배) 투어 베트남 전통 배 투옌퉁(까이퉁) 투어...광주리 배 체험...광주리 배는 베트남 전통 배다. 이곳 베트남인 들은 고기잡이 및 이웃 간의 왕래 등을 위헤 광주리 배를 이용했다. 다낭 여행 중 광주리 배 투어를 하는 한국인들이 많다. 투망을 던지는 모습도 보여주기 위해서다. 누가 먼저일까. 베트남 전통 생활, 음악 체험이 아쉽다. ⓒ 문운주
동남아는 환경이나 기후 등이 비슷비슷해서 두 번 여행을 피하는 친구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무더운 날씨도 견딜 만하고 약간의 향이 들어간 음식도 싫지 않다. 우리보다 키가 작고 구릿빛 나는 얼굴을 한 그들에게 호감이 간다. 여행 마니아는 아니지만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친구 때문에 몇 번 다녀온 경험이 있다.

이번 여행도 친구 때문이다. 50여 년을 함께 한 친구다. 그에게서 다낭 여행 함께하지 않겠냐는 전화다. 비용이 저렴하다고... 3박 5일 해서 39만9천 원. 집을 나선다는 것은 구속(?)으로부터 해방이다. 여행은 힐링이다. 나는 물론 'ok'이었다.
 
나만의 여행 수칙을 정했다. '즐거운 마음 갖기, 불평하지 않기, 목적지는 포기하지 않기, 현지 환경 존중하기' 등이다. 그 자체를 즐기자. 더위와 현지 음식과 불편에 적응하다 보면 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운 나라에 와서 덥다고 하고 향이 있는 음식에서 냄새가 난다고 한다? 아니지 않는가.
 
베트남 다낭 국제공항 도착은 현지 시각으로 16일 새벽 4시경(한국 6시). 무안에서 오후 8시 55분에 출발키로 한 베트남 국영 항공기(VN)가 3시간 지연 출발한 탓이다. 다낭은 생각보다는 공항이 크고 이용객이 많았다. 입국을 위해 줄 서는 인파로 북적댄다. 사람에 떠밀리는 기분이다. 어느 신문을 보니 평일 1500명, 주말에는 5000명 이상의 한국인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수많은 인파로 북새통이다. 썰렁하기까지 한 무안공항과는 사뭇 다르다. 일부 중국인 관광객의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어지럽다. 여행의 출발은 사람과의 부대낌이 아닌가 싶다. 간신히 입국 절차를 마쳤다. 호텔까지는 15분 거리, 침대가 둘 있는 방이다. 다낭에서의 첫날밤, 가슴이 설렌다.
 
베트남 민간신앙의 본산인 오행산 
오행산 봉우리가 5 개인 오행산은 베트남 민간 신앙의 본산지다. 다양한 불상과 신을 모신 제단이 있다. 동굴이 많아 베트남 전쟁 때는 베트콩의 은신처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 문운주
오행산 1 ⓒ 문운주
오늘 일정은 순서를 바꿨다. 다낭 도착 시간이 지연된 탓이다. 먼저 오행 산을 둘러보기로 했다. 다섯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이어서 오행 산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베트남 민간 신앙의 총 본산지다. 각각의 봉우리 이름이 수, 목, 금, 토, 화(물, 나무, 금, 땅, 불 )이다. 전체가 대리석으로 이루어져 있어 마블 마운틴으로 불린다.

정상까지는 150여 계단으로 자연 동굴이 30여 개나 된다. 베트남 전쟁 중에는 베트콩 은신처로 이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가이드의 엄포(?)와 달리 승강기가 있어 오르기가 어렵지 않다. 36~37도의 더위에 계단을 오르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트레킹이라고 하기에는 약하고 가벼운 산책 정도라고 해야 할까. 승강기에 내려서도 계단으로 조금 올라야 한다. 숨이 가쁘다. 날씨가 무더운 탓이다. 동굴 여기저기 제단에 모셔진 불상이며 촛불들이 옛날 계룡산 등에서 봤던 우리네 모습과 흡사하다.

따가운 햇살을 피해 선글라스를 썼다. 제주도처럼 하늘이 맑고 파랗다. 계단이 습기가 많은 탓에 미끄러웠다. 동굴에 내려갈 때나 전망대에 오를 때 주의해야할 것 같다. 하마터면 넘어질 뻔 했다. 일행 중 한 명이 손을 잡아준 덕에 사고는 면했다.

베트남 전통 배 투옌퉁(까이퉁, 광주리 배) 체험
광주리배 체험 베트남 전통 배 투옌퉁(까이퉁) 투어...광주리 배 체험1 ⓒ 문운주
광주리배 야자수 사이를 노를 저어 달린다. 수 십척이 줄지어 달리는 모습이 장관이다. 아쉬운 점은 후세에 널리 보존하고 지켜가야 할 문화가 파괴되가는 안타까움이다. ⓒ 문운주
기내에서 바라본 다낭의 환한 불빛에 깜짝 놀랐다. 캄캄할 것이라는 예측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밤 문화가 이곳에서 시작한 것이 아닐까. 밤새워 맥주를 마시며 더위를 식힌다. 해수욕장에서도 오후 6시가 지나야 물속에 들어간다. 하지만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면 영락없는 우리의 70년대 농촌 모습이다. 여유롭게 꼴을 뜯고 있는 소들이 눈에 띈다.
 
밤은 다낭의 매력을 더 환상적으로 보여준다. 뜨거운 낮 시간에는 인적이 드물지만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오는 밤이면 화려한 조명들이 절정을 이룬다. 황홀하게 빛나는 다낭 시내를 내려다보며 신나는 음악과 함께 맥주나 칵테일을 즐긴다. 어쩌면 우리보다 더 멋을 아는 친구들이다.

과거와 현재가 병존하는 도시 다낭, 나는 이곳에서 현재가 아닌 과거를 찾는다. 연기에 시커멓게 그을린 부엌과 돼지 막이 있는 재래식화장실 등 불편했지만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다. 싸리나무 울타리 너머로 이웃과 음식을 나눴다. 냇물에서는 그물로 고기를 잡곤 했다.
 
자동차로 30분 정도 달렸을까. 투본 강의 조그만 어촌이다. 비포장 도로변에 바나나, 망고 나무가 눈에 띈다. "1달러, 1달러~~", 어린아이가 바나나 한 송이를 들고 집요하게 따라붙는다. 광주리 배는 투본 강에서의 생업에 종사하는 어민들의 교통수단이다. 고기를 잡을 때도 이웃집에 갈 때도 이용했다.

그들이 변했는지, 아니면 우리가 그들을 변하게 했는지 모르지만 지금의 광주리 배는 야자수 사이를 누비는 '광주리 배 체험'으로 이용된다. 대나무를 쪼개 엮어 사이사이에 소 똥을 발라 물이 새지 않도록 했다고 한다. 지금은 콜 타르를 바른다.
 
삿갓 모자를 사서 썼더니 베트콩처럼 보인다고 일행이 깔깔댄다. 광주리 배에 탑승 인원은 2명이다. 사공이 기다란 작대기로 노를 젓는다. 서로 경쟁을 하듯이 수많은 광주리가 야자수 사이를 누비고 다닌다. 물길을 따라 이리저리 사공의 현란한 몸동작과 야자수 밀림이 조화를 이룬다.

그런데 웬일? 갑자기 광주리 배를 야자수 잎 사이에 대더니 한국 음악을 틀어놓고 사공이 몸을 흔들기 시작한다. 마치 신들린듯 가슴, 허리, 엉덩이를 돌린다. 흔드는 동작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뒤로 빼기만 하던 사람들도 하나 둘 몸을 흔든다.
 
베트남 전통 음악과 노를 젓는 아오자이 아가씨... 노을빛 물결에 유유히 흘러가는 광주리 배가 더 낭만적이지 않을까. 아쉬움과 미안함 등 만감이 교차한다. 혹시 우리가 투본 강을 오염시키는 것은 아닌지.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호이안
  
호이안 신시가지와 올드타운 사이 하천(투본강) 야경을 즐기며 보트를 탈 수 있다. 소원 촛불도 강에 띄울 수 있다. ⓒ 문운주
호이안 보트 폐오수가 흘러들어 악취가 심하다. 하수도 시설이 안된 듯하다. 우리 70년대 모습이다. 열악한 환경을 탓할 수는 없지만 유적들이 훼손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 문운주
따가운 햇빛과 땀에 젖은 옷은 나를 더욱 긴장시키고 여행의 맛을 느끼게 한다. 은퇴한 뒤부터는 생활 리듬이 깨졌다. 취미도 잠깐이고 운동 또한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여럿이 함께하는 여행은 꽉 짜인 일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에너지가 샘솟는다.
 
광주리 배 체험을 끝내고 도자기 마을을 거쳐 호이안에 도착한 때가 오후 3시쯤. 1시간여를 걸었더니 갈증이 심하다. 시원한 망고주스 한 잔, 뼛속까지 시원하다. 누군가 동남아 지역을 여행할 때는 망고, 바나나 등 열대 과일을 실컷 먹으라고 한 말이 떠오른다.
 
카지미에르츠 크비아트콥스키 폴란드 건축가로 호이안, 후에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데 큰 공헌을 했다고 한다.1999년 모노코 유네스코 회의에서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 ⓒ 문운주
호이안올드타운 나무 사이에 걸치고 휴식을 취 할 수 있는 그물 ...2 개에 us10 $ 를 부른다. 피식피식 웃으며 장사하는 모습이 노련하다. 한 개를 덤으로 준다고 유혹한다. ⓒ 문운주
다낭 남쪽으로 30km 위치한 호이안은 잊힌 도시가 아닌 숨겨 놓은 도시다. 16세기 바다의 실크로드라고 불리던 중요한 국제 무역 항구였다. 중국, 일본, 네덜란드의 상인들, 인도인 등이 드나들었다. 19세기 이후 무역항의 중심이 다낭으로 이동하고부터 작은 항구마을로 전락하고 말았다.
 
당시에 무역항으로서 번창했고 다낭으로 이동을 한 탓에 공동화 현상이 일어났다. 지금은 도심 재생사업처럼 옛것을 찾는 동경심으로 다시 번창하고 있다. 특히 이곳은 후에와 더불어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고부터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되었다.

호이안은 하천을 경계로 신시가와 구시가(올드타운)로 나뉜다. 주차장에서 5분 정도 걸으면 안호이 다리를 만난다. 조금 우측으로 내원교가 눈에 들어온다. 올드타운은 내원교 좌측에 일본인 마을, 우측에 중국인 마을이다. 1593년 일본인이 세운 내원교는 베트남 국보로 지정되기도 했다. 화폐 2만동 뒤편의 배경사진이다.
호이안 골목 길 걷다 보면 서양인들이 눈에 띈다. 특히 노부부가 손을 잡고 걷거나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멀리 떨어져 걷고 있는 우리세대의 부부와는 대조적이다. 가게에서 음료수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다. ⓒ 문운주
호이안 올드타운 올드타운 구 시가 타임머신을 타고 200여 년 전으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걸으며 ⓒ 문운주
하천 도로를 따라 발길을 돌렸다. 옛날식 주택과 상점 등이 밀집되어 있다. 도로에는 자전거, 사람, 오토바이, 씨크로 등으로 북적댄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다. 명동이나 충장로 거리처럼 사람에 떠밀려서 사람 구경을 하면서 걸었다. 간혹 아오자이 차림의 아가씨들이 눈에 띈다.

거리를 걷다 보면 과거로 달려온 느낌이다. 가게마다 걸린 홍등은 중국의 어느 도시에 온 것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다. 건축물은 주로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은 듯 중국풍이다. 약 2㎞에 달하는 오래된 거리는 가게마다 촘촘히 있다. 임대료가 한 칸에 우리나라 돈으로 월 250만~300만 원에 달한다고 한다.

한 바퀴 돌다 보니 어느새 내원교 앞이다. 이곳에서 기념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베트남 화폐 뒷면에 나온 역사적인 다리다. 나도 베트남 2만 동 화폐를 손에 들고 "찰칵".
내원교 중국인과 일본인 마을을 연결하기 위해 1593 년 일본인에 의해 놓여젔다. 일본교로 부르다가 지금은 내원교로 부른다. 베트남 화폐 2 만 동 뒷면의 배경사진이다. .16 세기 중반애는 이곳 베트남을 중심으로 무역이 활발했다. 네덜란드, 중국, 인도, 일본 활발하게 드나들었다고 한다. ⓒ 문운주
호이안 신시가지 올트타운에서 바라본 신시가지. 밤에는 야시장이 열리고 야경을 즐기는 관관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휘황찬란한 홍등이 여행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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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며 삶의 의욕을 찾습니다. 산과 환경에 대하여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