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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오대산은 1975년 2월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입니다. ⓒ 황주찬
쉼 없는 잔소리도 듣기 좋을 때가 있습니다. 산꼭대기를 백여 미터 앞두고 사춘기 큰아들이 내 옆에서 말 폭탄을 쏟아 붓습니다. 말 없던 아이가 산에 오르니 말문이 열렸습니다. 큰애 말본새는 꿀밤 맞기 딱 좋으나 오늘은 그냥 넘어갑니다. 큰애는 지금 사춘기 긴 터널을 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던진 말을 대충 추리면 이렇습니다. "배가 너무 많이 나왔다. 운동을 전혀 하지 않은 몸이다. 게으름 피운 결과다. 지방은 확실히 태워야 한다. 엄마와 산에 다녀야 한다" 아들의 짓궂은 소리가 내 귀엔 꾀꼬리 소리로 들립니다. 사춘기 아들이 말 많은 시어머니가 됐습니다. 모두가 산에 오른 탓입니다.

지난 21일 오전, 이른 아침 챙겨 먹고 숙소를 나섰습니다. 오대산으로 길을 잡았습니다. 갈 길이 멉니다. 경남 양산 대운산 휴양림에서 강원도 평창까지 차를 몰아야 합니다. 족히 다섯 시간은 달려야 하는 고달픈 길입니다. 하지만 마음은 가볍습니다. 반년 만에 나선 산행길이기 때문입니다.

가족 아름다운 새는 언제든지 날아갑니다. ⓒ 황주찬
대화 두 아들의 관심은 뭘까요? ⓒ 황주찬
짧은 대화와 깨끗한 몸가짐, 사춘기 이상증세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길을 나서며 큰애를 봤습니다. 귀에 이어폰 꽂고 묵언수행(?) 중인 아들 꼴이 밉상입니다. 말 없는 큰애와 대화 나눌 방법이 뭘까요? 사춘기라 함부로 말을 내뱉지도 못합니다. 저는 그저 끙끙거리기만 합니다. 이쯤해서 큰애 흉을 몇 자 적고자 합니다.

녀석은 요즘 몇 가지 이상증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첫 번째 증상은 '언어습관'입니다. 요즘 큰애는 '예'와 '아니요'로 대화를 마무리 짓습니다. 또, 큰애는 갑자기 아침과 저녁으로 몸을 씻습니다. 껍질이 벗겨질 정도로 닦아댑니다. 끝으로 운동복으로 1년을 버티던 녀석이 화려한 옷을 챙깁니다.

밉상인 아들과 대조적으로 나머지 두 아들은 나와 아내에게 친절합니다. 매번 주변을 맴돌며 말을 겁니다. 오대산 가는 자동차에서도 매한가지였습니다. 말없이 창밖을 보며 음악 듣는 큰애와 대조적으로 둘째와 막내는 연신 궁금증을 내뱉습니다. 그런 세 아들을 끌고 오대산에 도착했습니다.

팔각구층석탑 이 탑은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석탑으로 화려한 상륜부가 인상적인 조형물입니다. ⓒ 황주찬
상원사 동종 이 아름다운 범종은 음향이 맑고 깨끗하기로 유명합니다. ⓒ 황주찬
상원사 산행은 상원사 밑에 위치한 주차장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 황주찬
월정사와 상원사 그리고 적멸보궁 품은 오대산

오대산은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에 위치한 산입니다. 높이는 1563미터이며 백두대간에서 비켜 뻗은 차령산맥 서쪽 첫머리에 우뚝 솟아 있습니다. 주봉은 비로봉입니다. 오대산은 1975년 2월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으로 유서 깊은 월정사와 상원사 그리고 적멸보궁을 품고 있습니다.

월정사에는 팔각구층석탑이 있는데 이 탑은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석탑으로 화려한 상륜부가 인상적인 조형물입니다. 오대산이 품고 있는 또 하나의 절인 상원사에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동종이 있는데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36호로 지정됐습니다. 이 아름다운 범종은 음향이 맑고 깨끗하기로 유명합니다.

유서 깊은 절을 잠시 둘러본 뒤 산으로 향합니다. 본격적인 산행은 상원사 밑에 위치한 주차장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큰 아들은 아내와 열 걸음 떨어진 곳에서 묵묵히 길을 걷고 둘째와 막내는 아내 주변을 부지런히 맴돌며 길을 걷습니다. 저는 낯설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큰애의 관심은 뭘지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아름다운 절을 품은 오대산 ⓒ 황주찬
적멸보궁 적멸보궁 가는 길은 가파른 계단이 있어 몸을 괴롭힙니다. ⓒ 황주찬
비로봉 5월의 싱그러운 산하가 펼쳐졌습니다. ⓒ 황주찬
큰애 잔소리가 끝나자 사위가 조용해졌다

그렇게 큰애는 가족들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두며 산을 올랐습니다. 적멸보궁까지는 가파른 계단이 몸을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적멸보궁을 지나니 5월의 싱그러운 산하가 펼쳐졌습니다. 답답했던 마음이 풀리며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하지만 오대산 역시 쉬이 정상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코앞에 정상이 보이는데 몸이 예전처럼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 꼴을 먼발치에서 보고 있던 큰애가 내 옆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윽고 큰애가 내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혼잣말인지 대화인지 모를 말을 쉼 없이 내뱉습니다. 저는 그 소리가 꾀꼬리 소리로 들렸습니다.

그날 큰애와 나눈 대화 내용은 중요치 않습니다. 다만, 큰애의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영원히 듣고 싶었던 꾀꼬리 소리는 비로봉을 눈앞에 두고 끝나 버렸습니다. 큰애는 정상이 보이자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잠시 사위가 조용해졌습니다. 순간, 낯설고 아쉬운 마음이 일었습니다.

오월의 산은 참 아름답습니다. ⓒ 황주찬
정상 고운 새는 필요하면 다시 내 어깨에 내려앉습니다. ⓒ 황주찬
지친 날개 쉴 만한 곳 아빠라는 사실 기억해 줬으면

아쉬움 안고 비로봉에 닿았을 때 또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름다운 새는 언제든지 날아갑니다. 집착할 필요 없습니다. 고운 새는 필요하면 다시 내 어깨에 내려앉습니다. 사춘기 아들은 세상을 향해 날고 있습니다. 지친 날개 쉴 만한 곳이 아빠라는 사실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돌아오는 차안, 묵묵히 창밖을 보고 있는 큰아들이 아름다워 보입니다. 제가 철이 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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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