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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때부터 현대까지 이어진 간척의 역사가 담긴 시흥시 '바라지 물길' ⓒ 김종성
경기도 시흥시에는 '바라지 물길'이란 곳이 있다. 바라지는 물왕저수지에서 호조벌, 연꽃테마파크, 갯골생태공원, 월곶포구, 배곧신도시, 오이도를 연결하는 총 길이 30㎞의 긴 물길이다.

바라지 물길이 흐르다 바다와 만나는 오이도에선 바다 위를 지나는 직선의 둑길 시화방조제(12km)가 이어져 있다. 바라지 물길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현대까지 이어진 간척의 역사가 담겨있는 길이다. 국가발전을 위한 간척사업 뒤에 숨겨져 있는 자연파괴 현장의 길이기도 하다.

물길 따라 자전거길이 나있어 자전거여행하기 좋은 코스이기도 하다. 월곶포구에서 오이도를 지나 한쪽 편엔 호수, 다른 편엔 바다가 펼쳐지는 시화방조제를 달려 대부도까지 갔다. 정겨운 포구에서 작은 섬, 이채로운 신도시 수변공원, 바다를 가른 광막한 방조제까지 다채로운 여행길이었다. 마침내 긴 겨울이 끝나려는지 얼굴에 닿는 바람에서 살랑거리는 봄이 느껴졌다.

* 주요 자전거여행길 : 월곶역, 월곶포구 - 배곧신도시 수변공원 - 덕섬, 오이도 - 시화방조제 -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 - 시화방조제 - 오이도역 (약 35km)

갯벌에서 간척으로 생겨난 월곶포구  

월곶포구(경기도 시흥시 월곶동 820-4)는 수인선 전철역(월곶역)이 있어 찾아오기 더욱 편해졌다. 가까이에 어시장, 관광지로 널리 알려진 소래포구와 오이도가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한산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한적하고 여유 있게 포구여행하기 좋다.

포구 주변에 바다가 보이는 산책로가 잘 나있고 어선, 낚시 배들이 정박해 있는 고즈넉한 포구의 모습이 펼쳐진다. 해질녘 고기를 잡으러 먼 바다로 떠났던 어선들이 들어오는 월곶포구 해안은 시흥 9경으로 선정됐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월곶(月串)의 곶은 바다를 향해 뾰족하게 내민 땅이란 뜻이다. 강화의 갑곶, 포항의 호미곶 등도 서로 지형이 비슷하다. 육지에서 바다로 내민 모습이 반달과 같다하여 월곶이란 이름이 붙었다니 재밌다. 곶자가 들어간 곳은 조망이 월등히 좋다보니 군사시설이 들어서곤 하는데, 월곶도 조선시대엔 수군만호(水軍萬戶)가 설치될 정도로 군사요충지였다고 한다.

밀물, 썰물 때에 맞춰 오가는 월곶포구 어선들. ⓒ 김종성
어른들만이 아는 생굴 맛. ⓒ 김종성
1991년까지만 해도 바다와 자원의 보고로 불리는 풍성한 갯벌이었던 월곳. 시흥시에서 바다를 메우는 매립작업(1992~1996)하여 현재의 횟집, 수산시장, 위락시설 등이 들어섰다. 오래된 수산물 공판장을 리모델링해 조성한 월곶예술공판장 아트독이 눈길을 끌었다. 요즘은 주변에 신도시가 조성되면서 다시 한 번 포구의 풍경이 바뀌고 있다.

월곶 포구가 주변엔 높다란 아파트가 들어선 신도시들이 서있다. 요즘은 전국 어디를 가나 신도시를 볼 수 있지만, 물고기를 가득 실은 작은 어선들과 짠내음 풍기는 바닷물이 들고 나는 곳에 세워진 인간의 거대한 건축물은 묘한 대조와 감흥을 일으키게 한다. 물때에 따라 어선들이 아파트 앞으로 지나가고, 썰물 땐 갯벌이 흐드러지게 펼쳐지는 이채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포구를 거닐다 월곶초등학교에 다닌다는 6학년 아이들을 만났다. 서로 자전거를 탄 채 손을 들어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친해졌다. 다른 동네에서 왔다고 하니 기특하게도 포구 안내를 해주었다. 포구와 바닷가가 앞마당처럼 있으니 다른 도시와 달리 동네 아이들 추억이 풍성해지겠다.

포구 가에 자리한 벌교횟집 아주머니가 가게 앞에서 굴을 까다말고 우리를 불렀다. 아버지와 아이들이 함께 자전거 타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갓 깐 생굴을 입에 넣어 주었다. 생굴은 '어른들만이 아는 맛'이 아닐까 싶다. 향긋한 굴향이 풍기면서도 물컹하고 밍밍한데다 비릿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생굴을 먹은 아이에게 맛이 어떠냐고 물어보니, 아무 맛도 안 난단다. 나도 아직 어른이 덜 된 걸까... 초장 맛만 느껴졌다.

신도시를 따라 난 이채로운 수변공원 

해안가 초소를 살려 만든 배곧 신도시 수변공원. ⓒ 김종성
월곶포구 바로 옆에 생겨난 배곧신도시는 바닷가를 따라 12km나 되는 이어지는 수변공원이 나있다. 그만큼 신도시 규모가 크고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도 품고 있다. 바다 건너편 동네 인천시 남동구 논현동과 이어져 있는 해넘이 다리는 정말 해질녘 저무는 노을 풍경이 멋질 것 같았다. 과거 다리 건너에 한화그룹 화약공장이 있었고 수송로로 쓰였던 다리는 이제 주민들의 산책로로 바뀌었다.

긴 수변공원가를 따라 39개나 되는 군인 없는 초소들이 이어졌다. 서해바다에서 내륙으로 깊이 들어오는 물길이다 보니 군사용 초소가 들어섰다. 이젠 쓸모가 없어진 삭막한 초소지만 없애지 않고 저마다 특색을 살려 꾸며 놓아 발길을 머물게 했다.

바닷가 어느 초소는 큰 음표 조각과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함께 피아노를 치는 아빠와 아이의 뒷모습이 참 평화로웠다. 이외에도 수변공원엔 바다가 가까운 장점을 살려 갯벌체험장, 해수풀장, 캠핑장 등이 있어 올 여름을 기대하게 했다.

똥섬으로 불렸던 오이도 동생 섬, 덕섬

군 초소들이 자리한 무인도 덕섬. ⓒ 김종성
배곧 신도시 수변공원을 지나 오이도로 들어서는 들머리엔 동생뻘인 아담한 무인도가 여행자를 맞는다. 형처럼 유명세를 타지 않은 채 숨어 있듯 바닷가에 자리하고 있다. 차를 타고 휙 지나가면 모를 정도로 작은 섬 '덕섬(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876-721)'이다. 22m 높이의 작은 동산도 품고 있다. 오이도처럼 육지와 이어진 섬 아닌 섬이다.

바다 위에 떠있는 진짜 섬이었던 시절 갈매기 등 다양한 새들이 날아와 배설한다고 해서 예부터 똥섬이라고도 불리는 섬이다. 남해안의 조도(새섬), 여수의 개도, 가평의 자라섬, 서울 한강의 밤섬 등 전국에 재미있는 이름을 지닌 섬이 많지만 똥섬은 그 가운데 최고로 기억에 남는 섬이 아닐까싶다. 덕섬은 개인 사유지로 주인이 이름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덕섬으로 개명했단다.

다행히 자유롭게 통행이 가능해 서해 바다를 바라보며 섬을 한 바퀴 둘러 볼 수도 있다.  철따라 꽃이 피어나고 서해바다가 만드는 갯벌과 바람이 가득해 섬 전체가 공원 같은 곳이다. 오이도 앞바다에 유일하게 솟아오른 섬으로 조망이 좋다보니 작은 섬에 여러 개의 초소가 들어서 있다.

바닷가 섬 산책을 하다보면 바위에 난 작은 동굴들을 볼 수 있다. 밀물 땐 바닷물이 들어차 보이는 않는 동굴이다. 덕섬 해안 동굴은 바다 생물들의 안식처이기도 하고 사람들의 기도처이기도 했다. 굴속에 촛농이 떨어진 자국이 있었다. 하루 두 번 서해안에 펼쳐지는 밀물과 썰물에 따라 덕섬 주변 풍경은 바뀐다. 달의 인력을 몰랐던 어릴 적엔, 밀물과 썰물을 보며 바다가 숨을 쉬는구나 생각했었다.

온갖 조개음식을 먹을 수 있는 조개마을 오이도

바닷가를 따라 난 긴 산책로와 자전거길이 좋은 오이도. ⓒ 김종성
해가 저문 후에도 거닐기 좋은 오이도. ⓒ 김종성
오이도(경기도 시흥시 정왕동)는 가슴이 시원해지는 바다와 운치 있는 등대와 포구풍경, 아름다운 노을이 있어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는 도심 속 해양단지다. 수도권 4호선 전철의 종점인 오이도역이 가까이에 있어 대중교통편으로 찾아가기 좋다. 선착장 주변에 가득한 작은 어선들, 전망대가 있는 빨강 등대, 새우깡을 좋아해 아예 오이도 바닷가에 정착한 갈매기까지 정답다. 제일 좋은 건 바다를 곁에 두고 길게 이어진 산책로와 자전거길이다.

바다위에 뜬 길이 200m의 노란 부교를 따라 가면 황새바위섬을 볼 수 있다. 황새바위섬은 오이도 부속 섬 중 유일하게 섬으로 남은 진짜 섬이다. 울퉁불퉁한 돌섬을 바라보며 황새를 상상해보는 것도 재밌다. 갯벌 생태를 직접 관람할 수 있는 다리로 밀물 때는 바다를 가장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바다 산책로이기도 하다.

오이도는 소고기, 돼지고기 같은 육고기를 잘 먹지 않는 내겐 온갖 해산물로 풍성한 먹거리 천국이기도 하다. 오이도 방조제 둑길을 따라 '오이도 음식문화거리'가 길게 이어져있다. 어선들이 오가는 선착장과 하루 두 번 밀물·썰물이 교차하면서 바다와 갯벌이 생기다보니 자연스레 해산물이 풍부해졌고, 수산시장·음식점·조개구이집·횟집 등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오이도만의 특화거리가 됐다.

황새바위를 향해 바다 위로 길게 나있는 부교. ⓒ 김종성
온갖 조개음식을 먹을 수 있는 조개마을 오이도. ⓒ 김종성
보광호, 승리호, 대복호 등 어선이름을 간판으로 단 선창가 횟집은 80년대 포장마차가 대거 들어섰던 초창기 오이도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어촌마을 이었던 오이도가 현재 모습으로 변하게 된 계기는 1987년 시화방조제 착공이었다. 방조제가 생기면서 살던 마을을 떠나야 했던 어민들을 위한 이주단지가 이곳에 마련됐다. 이주한 주민들이 생계를 위해 조개구이집, 횟집을 시작했다.

오이도는 선사시대의 패총(貝塚, 조개무지 혹은 조개더미)이 남아 있을 정도로 조개와 인연이 깊은 어촌마을이다. 매년 '오이도 조가비 축제'를 할 정도니 조개마을이라 할 만하다. 바닷가 방조제를 따라 조개음식점이 길게 나있다. 바지락, 홍합 외에도 가리비, 키조개, 비단조개, 우럭조개 등 갖가지 조개가 들어간 조개음식을 맛볼 수 있다.

오이도엔 명소 맛집이 되어가고 있는 특별한 빵집도 있다. 오이도의 명물 등대를 모델로 만든 '등대빵'이 그 주인공. 빵집의 젊은 사장은 오이도에서 조개구이를 처음 시작한 원주민의 2세대다. 형은 바로 옆 건물에서 조개구이집을 하고 있었다. 등대빵을 만들기 위해 전국 유명하다는 빵집을 여러 번 오가며 연구했다고 한다.

바닷가와 모래사장이 남아있는 오이도 살막길 

오이도에서 사라진 해변과 모래사장을 거닐 수 있는 살막길 (2월 촬영). ⓒ 김종성
1987년 시작한 시화방조제 건설은 바닷가 마을 오이도의 모습을 9할쯤 잃게 만든 결정적인 국가 정책이었다. 오이도 사람들은 마치 거짓말처럼 은빛 모래사장과 해수욕을 ...게가 발을 물어 맨발로 걷기 힘들었다는 갯벌의 풍요를 추억으로만 얘기한다. - 시흥시 누리집 오이도 이야기 가운데


오이도 둑길 맨 끝에 있는 전망대용 군함을 지나면 오이도에서 사라진 풍경이 숨어있다. '오이도 살막길'이란 팻말을 따라 가면 파도가 찰랑거리는 바닷가와 푹신한 모래사장을 나타난다. '와~' 짧은 감탄이 한숨처럼 터져 나왔다. 작고 평범하기 만한 바닷가지만 간척으로 사라진 귀한 풍경이서다.

'살막'은 어살을 쳐놓고 고기를 기다리기 위해 지어 놓은 움막이다. 살이 놓인 위치에 따라서 아랫살막말, 가운데살막말, 뒷살막말이란 마을이름을 붙였다. 고즈넉한 바닷가 너머로 멀리 갯벌을 가로지르는 시화호방조제가 보인다. 이곳에서 5분여를 달리면 시화방조제 들머리가 나온다.

12km 바다 위 둑길 시화방조제를 달리다 

사시사철 풍경에 변함이 없는 광막한 시화방조제길. ⓒ 김종성
서서히 육지화 되가고 있는 시화호. ⓒ 김종성
1987년에 시작해 1994년 완공한 시화방조제는 당시 '동양 최대 간척 사업'이라 불렸다. 공사기간이 7년이나 걸린 건 많은 환경단체와 시민단체는 물론, 대대로 살던 정든 고향을 떠나야 하는 시흥시와 화성시 지역 어촌마을 주민들이 반대해서였다. 시화방조제의 '시화'는 경기도 시흥과 화성의 준말이다.

작년에 경기도 화성시 문화재단 담당자에게 들은 시화호와 방조제 탄생 '비화'는 처음 들어본 조금은 놀라운 이야기였다. 1970년 대 후반, 중동 건설 경기가 쇠퇴하면서 철수한 건설장비들을 활용할 방안이 마땅치 않았다. 기업들은 건설 경기가 국내에서 계속 이어지길 바랐고, 이런 요구는 정부의 공업단지 육성, 국토확장 개발 정책과 맞아떨어졌다.

정부는 반월과 시화에 대규모 공업단지를 조성하고, 간척 농지도 만들었다. 공장과 농경지에 물을 공급하려면 큰 호수가 필요했다. 안산 지역은 큰 하천이 없어 공업용수를 공급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필요에 의해 오이도와 대부도 사이의 너른 만(灣)을 둑으로 막아 저수조를 만들게 된다. 시화방조제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바닷물은 물길을 막고 가두어도 오염되거나 썩지 않는다고 여겼던 걸까. 방조제로 바다를 막아 만든 시화호는 한동안 '죽음의 호수'로 불릴 정도로 수질이 심각했으나, 최근엔 해수 유통으로 사정이 나아졌다. 오이도와 대부도를 잇는 12km의 시화방조제를 달렸다. 언덕도 곡선도 없는 오로지 직선의 바다 위 둑길이다. 차도 옆으로 자전거가 달릴 수 있는 길이 나있다.

지은 지 23년이나 지났지만 시화방조제 주변 풍경은 여전히 삭막하기만 했다. 봄이나 겨울에 가도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철없는 곳이기도 하다. 바다를 막아 만든 너른 시화호가 육지가 되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시화방조제 중간에 만든 조력발전소와 홍보용 전망대. ⓒ 김종성
돌아오는 길에 만난 아름다운 노을. ⓒ 김종성
방조제 중간에 서해 조수간만의 차이를 이용한 조력발전소가 들어서있다. 바닷물이 발전소를 지나갈 때 마다 '발전중'이라 써있는 빨간 조명이 켜졌다. 시화방조제, 시화호, 조력발전소 등 모든 것이 국가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하는 것 같았다.  

방조제 길에 홍보관과 함께 관광용 전망 타워까지 만들었지만, 주변 전망은 바다 위에 지은 둑과 송전탑, 공단뿐이다. 특히 시화방조제와 시화호 내 크고 작은 둑을 짓느라 필요한 골재를 위해 처참하게 깎인 산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경기도 화성지역에 있는 형산이다. 

동양 최대의 간척사업이란 실은 동양 최대의 자연파괴와 같은 말이구나 깨닫게 되는 모습이었다. 시화호를 바라보며 대부도를 향해 달렸던 시화방조제 길. 돌아올 땐 여객선과 어선들이 떠다니는 서해바다를 바라보며 달릴 수 있다. 

오후 6시가 넘으면서 붉은빛·주홍빛·분홍빛으로 주변을 물들이는 석양을 내내 바라보며 달렸다. 느릿느릿 저무는 노을처럼 하루가 무척 길게 느껴졌다. 흔히, 하기 싫은 일을 할 땐 시간이 잘 안 간다고 한다. 하고 싶은 걸 즐기면서 하는데도 시간이 빨리 흐르지 않는 건 자전거여행 밖에 없는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지난 3월 3일에 다녀 왔습니다.
제 블로그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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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에디터만 아는 TMI'를 연재합니다. 그림책을 좋아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 2019년 성교육 전문가와 함께 하는 대화집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