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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현정(破邪顯正). '사악한 것을 부수고 사고방식을 바르게 한다'는 뜻입니다. 교수신문은 이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았습니다. 촛불, 탄핵 인용, 조기 대선... 연이어 큰 사건을 경험한 2017년 한국 사회는 얼마나 변화했을까요. 내년엔 '파사'를 넘어 '현정'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올해 상황이 달라진 사안들, ‘보도 그 이후’가 알고 싶은 기사들, 사연 속 주인공의 현재가 궁금한 사례들을 모아 '2017 비포 앤 애프터'를 구성했습니다. [편집자말]
천안시 측은 30일 자정 장 아무개 씨 농장의 산란계 700여 마리를 살처분했다. ⓒ 지유석
충남 천안시 광덕면에서 햇살농원을 운영하는 장진씨는 지난해 12월 30일 자정에 겪었던 일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작년 겨울 조류인플루엔자(AI)가 창궐해 전국의 가금류 농장이 큰 피해를 입었다. 특히 천안 지역의 피해가 컸다. 2016년 12월 19일 기준 천안 지역에서만 가금류 246만여 마리가 살처분됐다. 그러자 천안시는 AI발생 지역 반경 3km 이내 산란계·종오리 농가에 예방적 살처분 명령서를 각 농가에 전달하고, 12월 29일과 30일 살처분 조치에 들어갔다(관련 기사 : 새벽 2시에 살처분, 아무리 필요하다지만...).
2016년 12월 30일 자정 서철모 천안시 부시장 등 약 50여 명의 공무원들이 경찰과 함께 천안시 광덕면 장씨의 산란계 농원에 들이닥쳐 농장 닭 700여 마리를 살처분했다. ⓒ 지유석
장씨는 시 당국의 살처분 명령을 순순히 따를 수 없었다. 우선 닭 사육두수가 700마리로 소규모였다. 게다가 그는 이전부터 공장식 사육이 AI 발생 원인으로 지목되는 점을 감안해 닭들을 케이지에 가두지 않고 풀어 키웠다.

실제 천안 지역의 상당수 농가가 AI 피해를 입었지만 장씨의 닭들은 아무렇지 않았다. 그럼에도 시 공무원들은 장씨에게 예방적 살처분 이행을 종용했고, 이에 따르지 않자 50여 명의 공무원이 자정에 농원으로 들이닥쳤다.

이후 1년이 지났다. 그 사이 정권도 바뀌었다. 그러나 장씨는 새정부도 사려 깊은 농민 정책을 펼치는 것 같지는 않다고 토로한다. 지난 17일 장씨가 운영 중인 산란계 농원을 찾아 그때를 복기해 보았다.

턱없는 보상금, 몸값 뛴 닭... "두 아들 등록금, 대출 알아봐"
지난 해 천안시의 강제적 살처분에 반대했던 장진씨 ⓒ 지유석
- 이제 꼭 1년이 다가온다. 그간 어떻게 지냈나?
"살처분 이후 6개월 동안은 영농으로 소득을 올릴 수 없었다. 시에선 아무런 대책도 마련해 주지 않았다. 천안시에서 살처분하러 왔을 때 천안시 부시장은 '농민의 입장에서 보상해 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막상 대책을 호소하니 만나주려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6월까지는 공사판에 나가 일을 했다. 11월에 와서야 겨우 600여 마리의 닭들을 축사에 들여올 수 있었다."

- 지난해 재수하는 큰아들과 고3 수험생인 둘째 아들이 수능시험을 치렀다고 말했는데. 아들들은 무사히 대학 진학했는지 궁금하다.
"두 아들 모두 1년 동안 다시 수능시험을 준비했다. 큰아들은 삼수를 한 셈이다. 올해 수능에서 만족할만한 점수를 받은 것 같다. 그간 그럭저럭 학원 비용은 댈 수 있었는데, 대학에 보내려니 정말 돈이 없다. 지금은 은행에서 대출을 알아보고 있다."

- 살처분 직후 천안시를 상대로 행정심판을 청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실제 법적 대응에 나섰나? 그리고 보상은 어떻게 이뤄졌나?
"법정 대응을 하려 변호사와 상의하기는 했다. 그런데 변호사에게 '관련 규정이 없어 심판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는 말만 들었다. 무슨 말이냐면, 살처분에 따른 보상이 케이지 산란계를 기준으로 하고 있을 뿐, 방사 유정란을 생산하는 닭에 대해선 관련 기준이 없다는 말이다. 보상도 케이지 산란계 보상 기준에 따라 시로부터 500만 원의 보상금을 받은 게 전부였다.

이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지난 5월 충남지역 가금류 이동제한이 모두 해제됐다. 이때부터 닭 농가들이 병아리를 구하고 나섰다. 케이지 사육 농가들은 한 번에 몇만 마리씩 입식(병아리를 축사에 들이는 일 – 기자 주)했다. 이러다 보니 품귀현상이 벌어져 병아리 값도 뛰었다.

나 같은 소규모 농가는 배정 우선순위에서 밀려 아예 병아리를 구하기조차 어려웠던 셈이다. 그래서 생후 8~90일 지난, 병아리와 닭의 중간단계인 중추를 구하고자 했는데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평소 중추는 4천 원 선에서 거래된다. 그러나 품귀 현상으로 중추 가격도 1만 4천 원까지 뛰었다. 그러다 9월에 가격이 9천 원 선으로 떨어져 겨우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보상금 500만 원으로는 정말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충남도에도 민원을 제기했다. 그랬더니 여기까지가 상한선이라며 200만 원을 더 줘 도합 700만 원만 손에 쥘 수 있었다."

"경찰과 들이닥친 공무원... 나로선 저항할 수밖에"
햇살농원 장진씨는 닭들을 풀어 키운다. 지난 해 장씨의 농원은 AI 때문에 예방적 살처분 조치를 당해야 했다. ⓒ 지유석
- 그 사이 정권이 바뀌었다. 행정당국이 새벽에 들이닥치다시피 해서 살처분을 강행했는데, 지금은 달라졌다고 보는가?
"정부 기관이 농민을 대하는 태도 자체는 달라진 게 없다고 생각한다. 보상 규정만 봐도 그렇다. 앞서 말했듯 살처분에 따른 보상은 케이지 산란계를 기준으로 산출된다. 방사 유정란 보상도 이 기준에 따라 이뤄진다.

그런데 닭의 가치는 달걀의 가치로 매겨진다. 따라서 보상 기준 대로라면 케이지 양계와 방사 유정란 산란계의 가치가 같다는 것이다. 천안시와 충남도는 바로 이런 시선으로 정책을 펼친다. 방사 유정란에 대한 보상 기준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면 조항을 신설하면 된다. 그래서 관계 관청에 민원을 제기해 봤지만 지금까지 묵묵부답이다.

더구나 보상금은 살처분된 닭에 대한 보상이지 농업 손실에 대한 보상은 전혀 없었다. 이후 병아리를 구할 때도 지원은 난망했다. 요약하면, 농민에 대한 무관심은 현 정부라고 다르지 않았다. 적폐가 따로 있나? 이게 나라인가?"

- 일전에 <오마이뉴스> 기고를 통해 'AI발생 여부는 국가 방역 시스템의 실력'이라고 지적했었다. 정권이 바뀌고 나서 '실력'이 좀 나아졌다고 보는가?(관련 기사 : 나는 왜 강제 살처분에 끝까지 저항했는가)
"현상만 보면 AI가 만연하지는 않아 야박하게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천안은 AI 상시 발생지역이다. 특히 지난해 AI창궐은 방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관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올해엔 전남 영암 등 일부 오리 농장에 AI가 발생했고 이에 정부는 대전과 광주, 세종, 충남, 전북, 전남 등 6개 시도 가금류 사육 농가 등에 대해 10일 새벽 0시를 기해 24시간 일시 이동 중지 명령을 내렸다. 이런 걸 보면 초동 대응은 잘 하고 있다고 본다."

- 만에 하나, AI 방역이 뚫려 또 지난해와 같이 시로부터 예방적 살처분 명령을 받게 된다면?
"난 지난해 최선을 다했다. 내 행동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올해 똑같은 일을 당한다면 작년과 마찬가지로 최선을 다해 막을 것이다. 사실 살처분 명령에 따르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이 명령을 집행하는 행정 기관의 자세 때문이었다. 수십 년 동안 친분 관계에 있던 지역 공무원들이 전국적으로 살처분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명령에 따라줄 것을 호소했고, 그래서 수용하려고 어느 정도 마음은 먹고 있었다.

다만, 살처분에 앞서 모이 한 번 더 주고 달걀을 낳게 한 후 해달라고 했지만 공무원들은 우격다짐 식으로 자정에 수십 명이 들이닥쳤다. 그것도 경찰을 대동하고서 말이다. 왜 경찰이 이 자리에 와야 했나? 농민이 범죄자인가? 이게 국민에 봉사한다는 관계관청의 자세일까? 또 한 번 같은 일이 되풀이된다면, 나로서는 저항할 수밖엔 없다."

"예방적 살처분이 능사? 농정 미래 보지 않아 아쉬워"
장진씨는 닭들에게 모이를 주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지난 해 장씨의 농원은 AI 때문에 예방적 살처분 조치를 당해야 했다. ⓒ 지유석
- AI가 창궐하면 가금류는 살처분이라는 수난을 당하기 일쑤다. 몇몇 동물보호단체를 중심으로 살처분의 실효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인가?
"나 역시 예방적 살처분이 능사인지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AI 대란 때 살처분 된 가금류의 30~40%가 예방적 살처분에 따라 희생됐다. 사실 엄청난 비중이다. 예방적 살처분으로 농민들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예방적 살처분이 AI 확산을 막는데 기여했다고 볼 과학적 근거가 있을까?

무엇보다 AI 확산을 막기 위해선 개별 농가의 방역이 필요하다. 그리고 AI가 바이러스를 통해 전파되는만큼, 국가가 이를 차단할 시스템을 구축하고 개별 농가를 지원해야 한다. 공청회가 됐든, 공개 토론회가 됐든 형식과 관계없이 예방적 살처분이 과연 실효성이 있는지 공론의 장에서 논의되고 검증되어야 한다."

- 새정부에 바라는 농민정책이 있다면 말해달라.
"어느 정부가 됐든 정부가 농민을 대할 때 서비스 정신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한 예로 바닥에 생석회를 깔면 AI 확산을 막을 수 있다. 내가 운영하는 농원에도 이미 생석회를 깔아 놓았었다. 그런데 천안시 축협 사료공장에서 지난 12일 생석회를 수령해가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 공장은 성거에 위치해 있는데 우리 농원과는 정반대 위치다.

생석회는 구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비용 부담이 크지 않다. 그래서 정부가 AI 발생시기 즈음인 11월쯤 농가에 직접 공급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런 점만 봐도 정부가 구태의연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충남도로 확대해보자. 안희정 지사가 삼농혁신 정책을 내놓았지만, 이걸 제대로 이해하는 농민을 본 적이 없다. 심지어 공무원 조차 이를 제대로 이해 못하는 모습이다.

20년 넘게 농민으로서 살아보니 정부가 농민이 어떻게 해야 미래에 살아남을 수 있는지, 또 농민이 피부로 체감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고민한 적은 별로 없었다. 대증요법에서 벗어나 장기적 미래를 내다보는 농정이 그저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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