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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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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경기도 안산 세월호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 내에 안치 된 위패들 중 실종자인 단원고 허다윤 학생의 영정액자에 사진 대신 "세월호 속엔 아직 다윤이가 있습니다"가 적힌 노란 종이가 대신 하고 있다. ⓒ 이희훈
엄마는 저 바다의 깊이를 가늠할 수가 없다. 한 번도 닿아본 적 없는 저 바다 밑바닥, 그래서 상상할 수도 없는 물 속 세계. 거기에 딸이 있다.

배 타고 수학여행 떠난 자식들은 눈을 감은 채 차가운 몸으로 돌아왔다. 항구의 부모들은 그 차가워진 몸을 안고 울었다. 엄마도 같이 울었다. 모두 소중한 자식, 딸의 친구들 아닌가.

기다리면 돌아오겠지. 죽일 놈의 바다를 보면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생환의 기대를 접어야했던 끔찍한 시간, 차가워진 딸의 육신을 기다리는 참혹한 시간. 지옥은 멀리 있지 않았다.

가장 견딜 수 없는 슬픔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슬픔이다. 바다의 깊이처럼, 이제는 이 슬픔의 끝이 가늠이 안 된다. 딸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 500여 일을 기다리면 돌아올까?

주인공 없는 생일, 엄마는 학교에 가지 못했다
다윤이의 생일 10월 1일, 다윤이 엄마 박은미씨는 병원에 입원한 남편을 찾았다. 생일 상을 큰 딸에게 맡긴 다윤 엄마는 "도저히 교실에는 못가겠어요"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 이희훈
허다윤 양의 아빠 허흥환씨는 추석을 팽목항에서 보내던 중 허리에 디스크 증세가 나타나 서울의 한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 이희훈
허다윤 양의 아빠 허흥환씨는 추석을 팽목항에서 보내던 중 허리에 디스크 증세가 나타나 서울의 한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병석에 누운 다윤 아빠의 핸드폰 케이스에는 두 딸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 항상 꽂혀 있다. ⓒ 이희훈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고, 잡을 수 없는 시간은 꾸준히 흘렀다. 그리하여 10월 1일 아침이 다시 밝아왔다. 18년 전, 딸을 낳은 날이다. 이름을 허다윤이라고 지었다. 허다윤... 바다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아이.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9명 중 한 명이다.

[슬라이드] 다윤이의 방  

생일상을 차려야 하는데, 손과 가슴이 떨려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윤이 언니 허서윤씨와 이모들이 대신 생일 음식을 마련했다. 허서윤씨와 두 이모(박은경, 박은정)는 케이크와 음식을 들고 1일 단원고로 향했다. 다윤이 생일상을 차리기 위해서다.

그 순간 다윤이 엄마 박은미씨는 서울 하늘병원 10층에 있었다. 다윤이 아빠 허흥환씨가 허리디스크 질환으로 그곳에 입원해 있다. 남편 입원이 아니어도 엄마는 단원고에 갈 수 없었다. 작년 4월 16일 이후 단 한 번도 학교를 찾지 않았다.

"딸에게 미안하잖아요. 너무 미안해서 갈 수가 없어요. 배에서 꺼내주지도 못 하고...  제가 어떻게 다윤이 학교에 갈 수가 있어요."
다윤이 언니 허서윤씨는 다윤이가 키우던 애완견 깜비를 안고 단원고 교실을 찾았다. ⓒ 이희훈
2학년 때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의 교실은 3학년 교실이 되었다. ⓒ 이희훈
다윤이를 그리워하던 두 이모는 다윤이 언니 허서윤씨와 함께 엄마를 대신해 생일 상을 책상위에 차리며 계속해 가슴을 쓸어 내렸다. ⓒ 이희훈
다윤이 이모들과 언니가 책상 위에 생일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 이희훈
"다윤이가 김치를 싫어 해서 안가져 왔어요. 그래서 미역국이랑 좋아하는 반찬들 해왔어요" ⓒ 이희훈
다윤이가 공부하던 2학년 2반 교실은 '명예 3학년 2반'이 됐다. 교실에서 복도 쪽 맨 뒤가 다윤이 자리다. 아이들이 있어야 할 자리마다 꽃, 사진, 편지 등만 가득했다. 교실은 고요했다.

언니와 두 이모가 다윤이 책상 위에 생일 음식을 차렸다. 흰 쌀밥, 검은 미역국, 잡채, 전, 샐러드, 다윤이가 좋아하는 치킨이 올려졌다. 언니 허서윤씨가 흰 케이크에 꽂힌 초에 불을 붙였다. 초는 19살을 의미했다. 모두 한 마디씩 했다.

"다윤아, 생일 축하해."
"다윤아, 조금만 기다려. 곧 꺼내줄게."
"엄마는 마음 아파서 못 왔어. 이모들이 대신 왔어."

바람 없는 교실에서 촛불은 흔들리지 않고 타들어갔다. 촛불을 끌 사람은 자리에 없었다. 언니와 두 이모는 모두 고개를 돌렸다. 생일인데, 웃음이 아닌 눈물이 터졌다. 다윤이가 키우던 강아지 '깜비'는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반짝이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렸다.

"다윤아, 깜비도 왔어. 깜비도 다윤이 생일 축하한대."
다윤이 자리에 앉은 깜비. 다윤이는 수학여행을 떠나며 보낸 마지막 문자에도 깜비의 안부를 물었다. ⓒ 이희훈
"심장이 너무 벌렁거려요", 다윤이 큰 이모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다 결국 교실 밖에 나와 눈물을 터뜨렸다. ⓒ 이희훈
다윤이 책상 위에 놓인 선물들. ⓒ 이희훈
생일상을 책상 위에 올려 놓은 다윤이 이모는 뒤돌아 차창 밖을 한창 바라만 보았다. ⓒ 이희훈
큰이모 박은경씨는 더는 견디지 못하고 교실 밖 복도로 나갔다. 복도에서 우두커니 서서 울었다. 아이들의 웃음이 사라진 복도에 흐느낌이 퍼졌다.

주인공 없는 케이크 위에서 촛불은 바닥까지 탔다. 언니 허서윤씨가 작은 불꽃을 입으로 불어 껐다. 이제는 교실을 떠나야 할 시간. 교실을 둘러보니 벽에 시인 황지우가 쓴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 적혀 있었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직장도 잃은 아비에게 소송... "딸을 찾고 싶습니다"

다윤이의 두 이모는 꽃을 들고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로 향했다. 분향소 내 다윤이 얼굴이 있어야 할 곳에는 사진이 없다. 노란 종이 위에 글자만 적혀 있다.

"세월호 속에 아직 다윤이가 있습니다."

두 이모는 헌화를 한 뒤 한참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지난 500여 일처럼 다시 눈물이 터졌다. 큰이모는 세월호 희생자 얼굴이 가득한 그곳에서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묻었다. 솔직한 말이 터져 나왔다.

"다윤야... 이모가 많이 힘들어. 엄마, 아버지도 많이 힘들어..."
다윤이가 아끼던 강아지 깜비는 큰 이모 박은경씨가 흘린 눈물을 계속해 닦아 주었다. ⓒ 이희훈
이모들은 눈물을 훔치며 분향소를 떠났다. ⓒ 이희훈
분향소에서 다윤이를 만난 두 이모는 시민들이 보낸 다윤이 생일 축하 문자에 다시한번 목 놓아 울었다. ⓒ 이희훈
분향소에서 다윤이를 만난 두 이모는 시민들이 보낸 다윤이 생일 축하 문자에 다시한번 목 놓아 울었다. ⓒ 이희훈
두 이모는 서로를 부축하며 분향소를 떠났다. 얼마 뒤 인터넷에 한 뉴스가 떴다. '세월호 분향소 설치된 안산 상인들, 유족에게 손배소.' 합동분향소가 위치한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 인근의 상인들이 분향소 탓에 영업 피해를 봤다며 세월호 유가족, 안산시, 경기도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는 소식이다.

다윤이 하버지 허흥환씨가 병원 침대에 누운 채 한 말이 생각났다.

"세월호 참사 뒤 직장을 잃었죠. 딸 찾아야 하니까. 당연히 생활이 어려워졌는데, 세상 사람들은 그러더라고요. '수십 억 벌었으면서 왜 죽는 소리 하느냐'고..."

딸 죽음으로 수십 억 원 번다는 오해를 받는 상황. 세월호 참사로 가족을 잃고, 여전히 못 찾은 이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엄마는 말했다.

"원하는 건 딱 하나예요. 다윤이를 찾았으면 좋겠어요. 혹시라도 미수습자 유실되지 않도록 세월호 인양작업이 제대로 이뤄졌으면 합니다. 인양 작업하는 사람들 다치지 않았으면 하고요. 딸을 꼭 찾고 싶어요."

기다림은 언제 끝날지, 딸은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 역시 가늠이 안 된다.
아이들의 교실은 작년 봄 4월 16일에 시간이 멈췄다. 아이들이 기억하는 가족들과 시민들의 관심으로 교실에는 노란 꽃이 지지 않고 있다, ⓒ 이희훈
'다윤아 꼭 돌아와죠' ⓒ 이희훈
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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