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14 17:58최종 업데이트 24.05.14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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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7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거리가 폭우로 침수돼 차량들이 물에 잠겨 있다. 전날 두바이에는 1년 치 비가 12시간 동안 쏟아지며 주요 도로 등이 물에 잠겼다. ⓒ 연합뉴스

 
사랑은 가족과 연인 등 가까운 관계에서 출발하지만, 이웃과 사회 등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타자와 연결된 삶은 그저 인간관계에서 그치지 않고 반드시 자기가 몸담고 살아가는 모든 주변 환경, 자연과 우주 만물로 연장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윤리, 도덕이 아니라 생존의 사실임을 기후 위기가 가르쳐주고 있다. 기후 변화는 곧 닥칠 위기의 시나리오가 아니라 이미 심각하게 경험하는 현실이다. 올해만도 3월 말에 벌써 25도에 근접한 낮 더위가 시작되었다. 봄, 가을이 줄어들고 춥지 않은 겨울과 길고 뜨거운 여름에 열대 스콜이 장마를 대신한 날씨가 대한민국에서 일상이 되어 버렸다.


이는 이미 세계적 현상이다. 4월 중순에는 중동의 사막 땅으로 알고 있던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1년 동안의 강우량에 방불한 100㎜ 정도의 폭우가 단 12시간 만에 쏟아져 큰 피해가 일어났다. 과학자들이 통계를 들이대며 경고한 10년 후, 20년 후 이야기를 기억할 필요도 없이, 지구촌 곳곳에 이미 심각한 기후 위기 징후는 완연하다. 그저 예전보다 더워졌다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 이래도 될까?' 싶은 두려움이 생긴다.

그러나 뉴스는 뉴스, 닥칠 위기는 위기고, 우리는 당장 불편함을 참을 생각이 별로 없어 보인다. 물론 세계적으로도 기후 위기는 초미의 관심사이기에 유엔은 매년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를 열어 중요 현안을 논의해 결정한다. 작년 12월에 열린 총회에서도 첫날에 피해 입은 개발도상국 지원을 위한 '손실과 피해 대응 기금'이 합의되었고, 마지막 날에는 10년 안에 화석연료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환을 가속화 한다는 합의문 타협도 이뤄졌다.

그러나 화려한 외양과 달리 회의 분위기에서 절박함과 심각성에 의문이 생긴다. 무엇보다 이번 총회는 산유국인 UAE의 두바이에서 열렸고, 관례대로 기후변화협약 의장은 개최국 UAE의 국영석유회사 사장이 맡았다.

그는 의장임에도 화석연료 퇴출을 공개적으로 반대하며 석유 홍보를 하였고, 유럽 선진국들도 기후위기나 기후정의보다는 자신들의 강점인 환경 신산업 홍보에 열을 올리며 흡사 만국박람회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런데 올해 11월에 열릴 29차 총회도 UAE에 이어 역시 산유국인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릴 예정이라 정말 위기 탈출에 의지가 있는 것인지 매우 의심된다.

'손실과 피해 대응 기금'만 해도 부자 나라들이 가난한 나라에 기금을 지원한다니 얼핏 '맘 좋은 선심'처럼 보인다. 그러나 기후 및 환경 오염 물질은 부유한 나라와 지역이 그렇지 않은 곳보다 훨씬 많이 배출한다. 그런데도 피해는 가난한 나라, 지역에 거의 집중된다.

'옥스팜과 스톡홀름 연구소 등에 따르면 가장 가난한 10%보다 가장 부유한 10%가 최대 40배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데, 국제연합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1970년에서 2019년 사이 발생한 기후재난(날씨, 기후, 물 위험) 사망자의 91%가 개발도상국에서 발생'했다("기후 위기 아래, 우리는 '지구 한 가족'입니다" 기상청 네이버 블로그, 16기 기상청 국민정책기자단 박예원 기자, 2024년 5월 8일)

군비증강과 전쟁

그러므로 선진국이 내는 '손실과 피해 대응 기금'은 자선도, 기부도 아니고, 사실은 당연한 '피해배상'이다. 문제는 가해와 피해는 일방적인데 반해, 배상은 선택적, 자발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매년 확인되는 급격하고 심각한 기후 변화를 겪으면서도 2023년 한해 지출한 전 세계 군사비는 모두 2조 4430억 달러(약 3365조 원)를 넘는다. 2009년 이후 14년 만에 전 세계 5개 대륙 모두의 군사비가 증가했다.

이에 비해 떠들썩했던 작년 28차 총회 전 세계 197개국이 합의한 '손실과 피해 대응 기금'은 겨우 4억 달러(약 5200억 원)에 불과했다. 이중 작년 8860억 달러를 군사비로 지출한 압도적 1위 미국은 기후 대응 기금으로 약속한 돈이 고작 1750만 달러(약 230억 원)에 불과하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있다. 각각의 형편이 조금씩 다르지만 전 세계 개인, 단체, 기업 모두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위기 대응에 목표치를 정해 나름 총력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가장 역행하는 분야가 단연 군사 분야(국방, 무기)다.

예컨대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 전쟁이 일어난 지 한 달여 만에 양쪽에서 쏟아낸 이산화탄소가 총 6304톤이었는데, 이는 북유럽 선진국이 1년 동안 배출한 양과 비슷하다. 2019년 한해 전 세계 군대가 배출한 이산화탄소는 29억 5000만 톤으로 지구 전체 탄소배출량의 5.5%에 달한다고 한다.

그리고 전 세계 군사비는 중국을 뺀 모든 개발도상국이 온실가스를 줄이고 기후변화 대처에 필요한 연간 예산 2조 달러보다 훨씬 많다(지구온난화 가장 큰 적은 '전쟁', 홍석재 기자, <한겨레> 2023년 12월 13일 자). 군비증강과 전쟁은 지구 온난화를 심각하게 가속화 한다.

더구나 군사 부문은 유엔기후변화협약의 의무적 국제 보고조차 면제받고 있다. 즉, 무기개발과 운영, 전쟁을 통해 발생하는 탄소와 온실가스가 얼마나 되는지 유엔에 보고할 의무조차 면제받고 있다는 말이다. 이유는 단 하나, 국내에서도 군 관련 비리나 사건, 사고가 일어날 때 자주 듣던 말, '국가안보상 비밀'이기 때문이다.

비록 유엔 보고 의무는 없지만, 한국 정부는 군 온실가스 배출량을 나름 산정하고 있다고 한다. 송옥주 의원실 자료에 의하면 2020년 우리 군의 온실가스 총배출량은 전국 783개 기관 전체 배출량보다 많다고 한다('세계각국 군 관련 온실가스 쉬쉬, 기민도 기자, <한겨레> 2024년 2월 8일 자).

기후 불평등
 

초여름 날씨를 보인 4월 14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송정해수욕장에서 시민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 연합뉴스

 
이제 좀 더 좁혀보자. 한국 사회, 공공영역의 편의와 서비스 수준은 짧은 시간 안에 놀랍게 발전했다. 내가 청년 시절만 해도 항상 공공화장실이 부족해 눈치 보며 은행이나 관공서를 찾았고, 위생이나 수리 상태도 안 좋았다. 그러나 지금은 공공화장실은 물론 거리, 건물, 공원 등 곳곳의 편의와 서비스가 넘쳐난다. 등산로 입구에 먼지 분사기까지 설치된 나라가 대한민국 외에 또 있을까?

그래서 서구에서 다녀간 외국인들조차 자기 나라에서도 누려보지 못한 한국의 호사를 부러워하더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한 마디로 '밝고, 넓고, 깨끗하고, 화려하다.' 너무 좋다. 문제는 이런 편의와 풍요가 과연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이냐다. 단지 한국경제의 문제만이 아니라 한국의 기후 대응 이야기다. 하다 하다 별것까지 트집이라 생각하지 말라.

지난 4월 중순에도 딸은 반 팔로 외출하는 내게 긴 팔 하나 챙겨가지 않으면 얼어 죽는다고, 자기는 도서관에서도 에어컨을 얼마나 강하게 틀어놓는지 집중이 안 되더라며, 오늘은 잘 버텨야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랬다.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의 환절기 온도 민원은 종사자들에게도 힘겨운 고역이다. 4월 1일부터 2주간 접수된 관련 민원만 161건이라고 한다.

물론 서울지하철은 여름철 24~26도, 겨울철 18~20도로 정해진 실내 온도 기준에 따라 냉난방기를 조절한다고 한다. 그러나 내 체감상 그게 잘 지켜지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어제는 더워서 에어컨을 틀었는데, 오늘은 바람 불고 빗방울이 떨어지니 바로 히터를 켜는 버스도 타 봤다.

이러한 일은 대중교통만 아니라 관공서, 공공시설 전체가 거의 그렇다. 사실 담당 공무원이나 업무 종사자가 받아야 할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정치와 행정, 그리고 국민 의식의 문제이기도 하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겨울에 땀이 날망정 추우면 안 되고, 여름에 외투를 껴입을망정 더우면 안 된다는 강박에 빠져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 주는 게 좋은 정치, 좋은 행정, 좋은 공공서비스라 여기며 빵빵 틀고, 펑펑 쓴다.

크게 덥지 않고, 크게 춥지 않은 애매한 순간에도 뭔가 작동해야 한다는 강박이 행정에도, 우리에게도 가득한 것 같다. 그게 정말 '국민(시민)을 위한 정치(행정)'일까? 심각한 기후 위기를 여전히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편리함에 길들여진 우리의 불온한 편리함이 정말 불편하다. 조금 더우니 에어컨 틀고, 그래서 더 더워지니 에어컨 더 틀어 기온을 더 올리는 악순환을 과연 지구가 얼마나 더 받아낼 수 있을까?

이미 저출산을 돌이키기 어렵고, 지금도 미분양 주택들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도 대한민국은 도시 주변 농지나 야산은 두고 볼 수 없다는 각오로 다 밀어버리고 어떻게든 아파트를 짓거나 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그건 내가 사는 광명도 예외가 없다. 그리고 이렇게 줄어드는 녹지와 습지는 기후 위기를 한층 재촉할 것이다.

사실 생태와 기후 위기 문제는 우리도 이미 체감하고 있고, 감내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보다 우리 다음 세대, 또 그다음 세대, 특히 빈곤한 이들이 더 집중적으로 떠안아야 할 것이다. 기후 불평등이다.

그러므로 기후 위기 시대에도 아랑곳없이 빵빵 틀고 펑펑 쓰며, 더 밝게, 넓게, 쾌적하게만 살려는 지금 우리의 생활방식은 다음 세대에 뿌릴 씨앗조차 당장 털어먹으려는 약탈과 다르지 않다. 미시적, 일상적 차원의 불편함을 각오하지 않는 거시적, 미래의 인류생존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는 아직 기후 위기를 정직하게 대면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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