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SF 시리즈 ‘삼체’

넷플릭스 SF 시리즈 ‘삼체’ ⓒ 넷플릭스

 
OTT 서비스인 넷플릭스에 모처럼 흥미진진한 SF 시리즈가 올라왔다. 그런데 제목이 특이하다. <삼체>, 영어 원제는 'Three Body Problem'인데 원뜻은 '세 개의 물체간의 상호작용과 움직임을 다루는 고전역학'이란다. 

물리학 용어를 제목으로 쓴 만큼 이 시리즈엔 '페르미 역설'이니, '오캄의 면도날', 혹은 '어둠의 숲 가설' 같은 물리학 용어가 등장한다. 진 청(제스 홍), 오거스타 살라자르(에이사 곤잘레스), 사울 듀런드(조반 아데포), 윌 다우닝(알렉스 샤프), 잭 루니(존 브래들리) 등 시리즈를 이끌어가는 주인공 역시 영국 옥스포드 대학 물리학과 출신 과학자다. 

솔직히 과학은 모른다. 그래서 페르미 가설이니 하는 개념은 이해 못한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재밌다. 1990년대 말 미국 드라마 < X 파일 >을 보다 업그레이드 한 듯하다. 

가장 흥미를 끄는 대목은 외계문명인 '삼체'가 지구에 오기 전 과학자의 '씨'를 말리려 한다는 설정이다. 

'삼체'의 실체에 다가간 진 청 박사와 정보기관 수장 웨이드(리엄 커닝험)는 '주님'과 인류 문명의 발전 속도를 주제로 논쟁을 벌인다. 바로 이 장면에서 '삼체'가 전세계 과학자들을 표적 살해하려는 의도가 드러나는 동시에 인류 문명이 어떤 궤적으로 발전해왔는지를 일깨워준다. 

결론부터 말하고자 한다. 인류문명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해왔다. 지난 과정을 되짚어보자. 인간이 수렵에서 농사를 짓기까지 수 만년이 걸렸다. 그러나 산업문명으로 발전하는 데엔 '수천 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21세기 인류는 IT문명을 구축했다. 그것도 고작 수십 년의 시간 동안.

삼체가 우려하는 게 바로 인류문명의 기하급수적인 발전 속도다. 삼체는 스스로 위험한 존재라고 미리 경고한다. 그럼에도 젊은 날의 예원제 박사(진 쳉)는 그들을 불러들인다. 

하지만 삼체가 인류를 염탐해보니 기술 발전 속도가 만만찮다. 그래서 지구에 도착하기 전 사전 정지작업으로 과학문명 발전의 싹을 자르는 게 좋겠다고 판단한다. 그래야 손쉽게 지구를 정복할 수 있을테니까. 

예원제 박사는 왜 삼체를 불러 들였을까? 

무엇보다 의미심장한 대목은 예원제 박사가 삼체를 불러들인 이유다. 삼체의 이야기는 마오쩌둥 시절 문화대혁명에서 시작한다. 

예원제 박사의 아버지는 칭화대에서 물리학를 가르쳤던 예저타이 교수였다. 그런데 예저타이는 문화대혁명 와중에 숙청당한다. 상대성 이론과 빅뱅 이론을 가르쳤다는 게 숙청의 이유였다. 

물리학에서 상대성 이론은 이제껏 능가할 수 없는 공식으로 자리 잡은지 오래고, 빅뱅 이론은 물리학 입문 과정에서 배우는 기초이론이다. 그런데 왜 이게 숙청의 이유가 됐을까? 잠시 극중 대화를 들어보자. 
 
 넷플릭스 SF 시리즈 ‘삼체’ 의 이야기는 중국 문화대혁명에서 시작한다.

넷플릭스 SF 시리즈 ‘삼체’ 의 이야기는 중국 문화대혁명에서 시작한다. ⓒ 넷플릭스

 
예저타이 박사: 상대성 이론은 물리학의 기초이론인데, 입문수업에서 안 다루겠는가?
홍위병 탕홍징: 헛소리! 아인슈타인은 미국 제국주의로 가서 원자폭탄 만드는 걸 도왔다. 아내를 단상에 올려라. 진정한 물리학자이니 진실을 알 것이다. 
예저타이 아내: 난 이제 확실히 깨달았어. 청년 혁명가들 덕분이지. 난 이제 인민편에 서겠어 예저타이, 어차피 부인 못해. 반혁명적인 빅뱅 이론을 가르쳤지 
예저타이: 우주의 기원설 중 빅뱅이론이 가장 그럴듯한 가설이야. 
예저타이 아내: 허튼소리 하지마! 시간이 언제 시작됐는지 논하는 이론이잖아. 신의 영역이 있을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야!
예저타이: 신의 존재여부를 과학은 어느 쪽으로도 증명하지 못했다. 


결국 상대성이론은 '미제' 앞잡이 노릇을 한 아인슈타인의 이론이고 빅뱅이론은 신의 존재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이론이기에 '불온'한 것이고, 그 이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예저타이는 무자비하게 숙청 당한 것이다. 그리고 예원제 박사는 눈앞에서 아버지가 죽임 당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몇 년의 시간이 흘러 예원제 박사는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몬 홍위병 탕홍징과 재회한다. 예원제는 탕홍징에게 참회를 기대했지만, 탕홍징은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예원제는 여기서 또 한 번 충격을 받는다. 예원제 박사가 삼체를 불러들이면서 보낸 메시지는 꽤 의미심장하다. 

"우리 문명은 자구력을 잃었다. 그러니 오라. 우리가 돕겠다."

지금 한국의 한 신학교에선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계열인 서울신학대학교가 이 학교 교수를 중징계하려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해당 교수가 창조과학을 비판하고, 과학을 신이 자연을 통해 계시하는 일반 계시에 대한 탐구로 이해하는 '유신진화론'을 옹호했다는 게 징계 이유란다. 

이 같은 일에서 문화대혁명기 중국이 겹쳐 보인다. 다만 당시 중국이 공산혁명정신에 맞지 않는다며 일체의 형이상학을 배척한 반면, 이 나라 '기독교' 계열 신학교는 구약성서 창세기에 적힌 창조론을 부정한다는 이유로 과학을 배척하는 게 다를 뿐이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는 R&D 예산을 깎아 과학계의 반발을 샀다. 이는 지난 4.10총선에서 여당이 패배하는 원인이 됐다. <삼체> 시리즈의 세계관에 비추어보면 이 정부는 외계인의 지구정복에 '나름' 기여한 셈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 정말 삼체 아니라 다른 어떤 외계문명이라도 불러 들여 문명 전반을 심판하고 싶어진다. 인류는 자구력을 잃었음이 분명하므로. 
덧붙이는 글 미주 한인매체 <뉴스M>, 그리고 제 개인 브런치에 동시 송고합니다.
삼체 넷플릭스 서울신학대학교 문화대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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