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 '한여름밤의 꿈' 3막. 극중극은 기존낭만오페라를 위트있게 풍자한다.

국립오페라단 '한여름밤의 꿈' 3막. 극중극은 기존낭만오페라를 위트있게 풍자한다. ⓒ 국립오페라단


지난 11일부터 14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국립오페라단의 <한여름 밤의 꿈>이 성공리에 한국초연되었다. 극 초반에는 몇몇 관객만 웃음포인트를 알고 웃기 시작하더니 인터미션 후 3막부터는 아예 관객 모두가 박장대소했다. 어려운 오페라가 아닌, 이해를 넘어 공감의 오페라가 된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한여름 밤의 꿈>(1595-1596)은 역대로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으로 다시 만들어왔다. 영국 작곡가 벤자민 브리튼은 각색까지 직접하며 원작에 충실한 전개를 했다. 20세기 초중반 무조, 12음렬 사조가 팽배할 때, 브리튼은 바로크 선율의 투명함과 현대음악의 특징을 잘 섞어서 그의 <한여름 밤의 꿈>(1960)을 통해 몽환적인 음악으로 펼쳐냈다. 
 
볼프강 네겔레 연출은 요정 그룹, 남녀 그룹, 그리고 서민 그룹의 복잡한 남녀관계와 그것이 한갓 꿈에 불과했다는 메시지를 네모 모양 가정집과 숲속 무대로 상징적으로 표현해 이해를 쉽게 했다(무대 조명 스테판 메이어). 1막 초반 결혼생활의 권태로움을 표현하는 요정 티타니아 여왕(11일 배역, 소프라노 이혜정)의 짜증은 힘이 넘치는 콜로라투라 높은 음이다. 이에 반해 남편 요정 오베론 왕(카운트테너 제임스 랭)은 남자답지 않은 얇고 가녀린 높은 음이다. 둘의 합쳐지지 않은 에너지는 극 전체의 상징이며 이어진 남녀 두 쌍의 사랑이야기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가수 김동완은 요정 퍽 역할로 성공적으로 오페라에 데뷔하며 이번 초연의 또 하나의 중심이 되었다. 노래가 없는 대사만으로 이루어진 퍽 역할인데, 영국 현지 영어 같은 발음과 중세 연극같은 톤 처리와 코믹한 몸짓은, 제임스 랭의 고음의 바로크스타일 노래와 잘 어울려 극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함께 잘 이끌었다. 소프라노 이혜정은 히스테릭한 욕망의 여왕 티타니아를 맑고 힘 있는 고음으로 환상적으로 선보였다.
 
벤자민 브리튼의 <한여름 밤의 꿈>은 '마술피리', '사랑의 묘약', '팔리아치 & 외투' 등 전통오페라의 플롯과 기법을 자연스레 녹이면서, 전통을 찬양하기도 조롱하기도 한다. 오베론이 티타니아에게 복수하려 하고 이에 퍽이 마법의 즙을 잘못 뿌려 인간 남녀의 사랑이 얽히고, 서민배우 보텀과 요정 티타니아가 하룻밤 사랑에 빠졌다 마법이 풀려 서로의 진실한 사랑을 확인하게 되는 것은 오페라 <마술피리>와 <사랑의 묘약>이 섞여있다.
 
3막에서 다섯 명 서민배우들의 극중극은 '팔리아치 & 외투'를 떠올리게 하면서 동시에 오페라 역사를 비트는 것 같은 느낌이 신선하다. 이 극중극의 노래에서만큼은 앞 1, 2막처럼 현대음악이 아니라, 오페라 역사의 바로크풍, 모차르트, 베르디 오페라풍이 한꺼번에 터져나온다. 이 인용은 과거역사에 대한 존경으로서만이 아닌, 여장을 한 플루트(테너 강도호 분)의 고음에서 갈라지는 목소리, 그의 중국 경극배우 같은 높은 톤을 통해 "오페라 그렇게 엄숙하고 무거울 필요 있니?"라는 일종의 익살과 조롱, 풍자다. 
 
 마법에 걸리 티타니아(소프라노 이혜정)가 당나귀 머리로 변한 보텀(바리톤 박은원)을 사랑하게 된다.

마법에 걸리 티타니아(소프라노 이혜정)가 당나귀 머리로 변한 보텀(바리톤 박은원)을 사랑하게 된다. ⓒ 국립오페라단

 
성악가들은 이 새로운 오페라를 오페라답게 한 주인공들이다. 테너 김효종은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라이샌더를 선보였으며, 디미트리어스 역 바리톤 최병혁 역시 우렁찬 목소리와 표정연기로 중심을 잘 잡는다. 이들 둘이 나오는 장면은 기존 독일오페라를 보는 듯한 안정감이 있었다. 이들과 커플을 이루는 헤르미아 역 메조소프라노 정주연은 고혹적인 저음이 일품이었으며, 헬레나 역 소프라노 최윤정 역시 특히 커플싸움 장면에서 재미를 주었다. 퍽의 마법가루를 맞고 얼굴이 망아지로 바뀌고 티타니아와 사랑에 빠지는 '보텀' 역할의 바리톤 박은원을 비롯해 메조 소프라노 김세린, 베이스 박의현 등 국립오페라단 솔리스트들도 훌륭한 노래와 연기로 극을 입체적으로 해주었다.  
 
지휘자 펠릭스 크리거는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CBS소년소녀합창단을 이끌며 이 현대오페라를 탄탄하게 뒷받침해주었다. 인터미션 제외하고도 150분 동안 관객들은 극에 몰입했다. 특징적 아리아가 없어 박수칠 대목이 없었다는 관객도 있었지만, 공연 맨 마지막에 퍽 역할 김동완이 "박수 좀 주셔~!" 하며 퇴장하니 관객들은 환호감을 터트리며 "브라비!!"를 외쳤다. 
 
한편, 국립오페라단은 차기작으로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 작곡의 <죽음의 도시>를 5월 23일부터 26일까지 공연한다. 지휘자 로타 쾨니히, 막데부르크 오페라극장의 극장장인 줄리앙 샤바스가 연출을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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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전공하고 작곡과 사운드아트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대학강의 및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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