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은 2009년 전라남도 순천의 한 시골 마을에서 부녀자들이 함께 청산가리가 든 의문의 막걸리를 마시다가 인명피해가 발생한 충격적인 사건이다. 범인으로 지목된 부녀는 놀랍게도 피해자의 남편과 딸이었다. 당시 수법의 잔혹함이나 근친-존속살인같은 자극적인 내용과 맞물려 언론에서도 큰 이슈가 되었고, 여론의 분노도 엄청났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흘러, 어쩌면 이들이 진범이 아니라 억울한 희생양일 수도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검찰에서는 왜 부녀를 살인범으로 지목했던 것일까. 과연 부녀를 향한 당시 검찰의 수사는 정말로 공정하고 떳떳하게 이루어진 것일까.
 
17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325호검사실과 4천장의 비밀문서' 편을 통해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의 진실을 추적했다.
 
지난 2024년 1월 4일, 15년 전의 순천 막걸리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각각 무기징역과 2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백씨 부녀가 나란히 형집행정지로 출소했다. 부녀는 오랜만의 재회에서도 서로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보지 못하고 어색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사건은 2009년 7월 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씨의 아내인 최씨를 비롯한 주민 4명이 일터에서 막걸리를 나눠 마신 뒤 2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누군가 최씨가 새참으로 챙겨나간 막걸리에 독극물인 청산가리를 대량으로 집어넣은 것.
 
그런데 사건발생 71일 만인 9월 14일, 당시 수사를 맡은 광주지검에서 놀라운 소식을 발표했다. 범인이 검거되었고, 그 주인공은 바로 사망한 최씨의 남편과 딸인 백 씨 부녀라는 것. 겸찰은 부녀가 공모하여 청산가리 막걸리를 미리 준비한 것이라고 밝혔다.
 
부녀가 자백했다는 범행의 동기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백씨 부녀가 친부녀지간임에도 지난 15년간 '부적절한 성적관계'를 유지해왔으며 이를 알게된 최씨와 갈등을 빚다가 결국 살인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재판에서 이들은 1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되었으나 2심과 3심에서 유죄가 인정되어 백씨에게는 무기징역, 딸인 희정씨(가명)에게는 20년형이 각각 확정됐다. 이 판결에는 결국 백씨 부녀의 자백이 결정적이었다.
 
그렇게 끔찍한 살인범의 멍에를 쓰고 잊혀졌던 이들은, 돌연 15년 만에 감옥 밖으로 나와 다시 세상의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재심전문 박준영 변호사가 이들의 사건을 맡게되어 2022년 재심을 청구했고 약 2년 만에 광주고등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형집행정지로 백씨 부녀가 출소하게 된 것. 복역 중인 사람이 재심을 통하여 석방된 사례는 최초라고 한다.
 
박 변호사는 당시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꼬집으며 "수사 기록이 4천페이지쯤 된다. 그런데 검찰이 이것을 전부 제출하지 않았다는 것은,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당시 검찰이 불리한 수사기록을 고의로 누락하거나 허위진술을 강요하여 부녀를 범인으로 몰아갔다는 주장이다.
 
사실 백씨 부녀는 지능이 다소 떨어지는 편이었고,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도 이를 알고 있었다. 백씨는 당시 범행을 인정한 이유에 대하여 글을 모르고 말주변이 없어서 검찰의 추궁에 제대로 된 해명을 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진범이라고 보기에는 정작 백씨는 사건에 대하여 제대로 아는 것이 거의 없었고, 현장 재현 시에도 머뭇거리며 주변의 눈치만 살피는 모습이 확인됐다.
 
또한 검찰은 희정 씨가 또다른 성폭력 사건 때문에 피고인과 대질하다가 막걸리 살인을 먼저 스스로 자백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희정 씨는 사건이 일어나기 얼마전, 이웃집 남성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백했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번복했다. 검찰은 이를 빌미로, 희정씨에게 친모를 살해한 사실을 은폐하려했다는 자백을 유도하려한 정황도 나왔다.
 
당시 이 사건을 담당했던 강모 검사라는 인물은, 그해 순천지청에 부임하자마자 미제 사건들을 연이어 해결하며 이름을 날린 이른바 '스타 검사'였다. 당시 희정씨의 검찰 진술을 녹화한 영상에는 강 검사가 희정 씨를 수시간째 몰아 붙이면서 원하는 자백을 유도하는 듯한 정황이 담겼다.
 
희정씨는 친적인 이모와 동행했을 때는 정상적으로 수사하던 검사가, 혼자 조사를 받으러가자 태도가 달라져서 윽박을 지르고 위협했다고 주장했다. 진술 영상에서는 희정씨가 조사를 받는 상황에서도 테이블 위를 정리하거나, 강 검사에게 음료수를 공손하게 건네는 등 눈치를 보는 모습도 포착됐다.
 
희정씨의 영상을 분석한 전문가인 김태경 심리학 교수는 "가슴 아프긴 하지만 이 사람이 지적 능력이 부족한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이 사람의 입장에서는 무언가 생존 전략이 필요했고, 지나치게 순종적이 되어서 주변의 눈치를 살피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처음엔 범인으로 지목받은 것은 희정 씨의 단독범행이었다. 하지만 희정씨가 체포된지 하루 만에 아버지 백씨까지 공범으로 연루된 2인조 살인으로 둔갑하게 된다.

표창원 범죄분석 전문가는 해당 영상을 보고 "실제 피의자가 한 말은 '네'밖에 없다. 이 부녀가 조사에 임하는 태도는 '어떻게 이야기하는 게 정답인지 알려만 주세요' 라는 모습이 보인다"라고 분석하며 "그동안 무수하게 발생했던 허위자백-허위진술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태도"라고 꼬집었다.
 
강 검사는 '공정한 게임'을 운운하며 백씨 부녀를 압박했지만 정작 수사 절차를 공정하게 진행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강검사 본인이었다. 진술 영상을 보면 검찰 역시 백씨가 지능이 떨어지고 문맹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작성한 조서를 읽어주거나 변호인의 도움을 받아도 된다는 자세한 설명은 해주지 않았다. 강 검사는 백씨 부녀를 조사하면서 고압적인 반말을 쓰거나 강제로 마스크를 벗기게하는 등 모멸감을 주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행동도 서슴치 않았다.

이에 백씨는 당시 수사과정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며 검찰이 이전에 작성한 조서를 삭제하고 똑같은 질문을 반복했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표창원은 "범행을 부인해도 같은 질문이 끝없이 반복되고 인정할 때까지 조사가 이어지는 상황을 겪으면서 결국 자포자기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작진은 심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희정 씨가 그때 왜 허위자백을 했는지 당시의 상황을 분석했다. 희정 씨는 "검사가 조사를 하면서 자백을 안하면 감옥에 처넣을 것"이라고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검찰 수사관이었던 이 모씨는 희정 씨의 아이가 백씨와 혈액형이 같다는 이유로 부녀가 근친을 한 것이 아니냐고 몰아붙였다고 한다.
 
희정 씨는 과거에 가출을 했던 경험이 있었고 그때 아이를 가지게 됐다. 이후 아이는 결국 입양을 보내야했다. 검찰은 희정 씨를 수사하면서 사건의 맥락과 관계없는 아이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자꾸 꺼내면서 희정씨의 마음속 아픈 부분을 자극했다. 그리고 이를 아버지와의 근친이나 어머니의 살인사건 의혹과 결부시켜서 자백을 압박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희정 씨는 아니라고 해명했는데도 불구하고 검사가 계속 DNA 검사를 내세워 아버지의 아이가 맞다고 인정할 것을 압박했다고 주장했다. 당시를 회상하며 아이 이야기가 나오자 희정씨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김태경 교수는 "아이 이야기를 통하여 수치심과 죄책감, 미안한 마음들이 계속 고조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준영 변호사는 "부녀간의 근친도 충격적인데, 입양한 아이가 아버지의 자식이라는 의심을 받게한 것은 너무나 잔인한 것"이라고 검찰의 수사 행태를 비판했다.

검사 강씨는 그 사건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2013년 법무부에서 근무하다가 향응수수 혐의로 면직되었고, 2019년에는 변호사 법을 위반하여 자격을 상실하고 3년형을 선고받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현재는 강남의 한 경영컨설팅 회사의 대표로 등재되어 있는 게 마지막으로 밝혀진 행적이었다. 하지만 인터뷰를 위하여 찾아간 회사에서는 그가 이미 건강문제로 사직한 상태라고 밝혔고, 바로 다음날 법인등기에서 그의 이름은 지워진 것으로 드러났다.
 
강씨는 수사 당시 재판부에 제출해야할 중요한 증거들을 고의로 누락시킨 정황도 발견됐다. 당초 오이농사에 청산가리가 쓰인다고 했던 주민들의 증언이 유황가루를 잘못 오인했다는 내용이 경찰 보고서를 통하여 정정되었음에도, 강씨는 이를 재판부에 제출하지 않았다. 박준영 변호사는 "오인했던 사람들의 진술만 제출한 것은 명백한 의도가 있다"라고 꼬집었다.
 
또한 강씨는 백씨 부녀의 무혐의를 입증하는 데 어쩌면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었던 CCTV 자료화면을 1심이 끝날 때까지 단 한 장도 법원에 제출하지 않았다. 결국 유일한 증거로 남은 것은 허위자백이 의심되는 피의자들의 진술 뿐이었다. 이를 두고 박 변호사는 "유죄를 받기 위한 목적만 있다고 생각된다. 판사들 입장에서도 판단자료로 삼아야 할 증거들을 조작한 검사에게 분노해야 할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검찰은 법원의 재심결정에 곧바로 항고를 한 상태다. 백씨 부녀에게 유죄를 선고했던 2심 재판이 다시 열릴지는 대법원의 판단에 달려있다. 재심을 결정한 광주고법은 부녀의 진술녹화영상을 보고 난후 강씨의 신문방식이 부적절했다는 것을 인정했고, 부녀에게 유리한 증거인 CCTV 화면을 제출하지 않은 것도 재심결정의 중요한 이유로 꼽았다. 하지만 어쩌면 억울한 누명을 썼을지도 모르는 백씨 부녀의 잃어버린 시간과 명예, 그리고 상처는 아직 회복된 것이 아니다.

그런데 항고를 담당한 순천지청이 제작진에 전한 입장문이 말미에 공개됐다 검찰은 희정씨에게 자백을 강요한 것이 아니라, 성폭력 사건으로 피고인과 대질하던 중 스스로 고백했다는 입장이다. 또한 CCTV 자료는 번호 식별의 한계가 있어서 제출하지 않았을 뿐이고, 재판과정에서 누락된 경찰의 수사기록은 크게 의미없는 것들이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눈여겨볼 부분은, 놀랍게도 15년 전 검사 강씨가 백씨 부녀를 일방적인 범인으로 몰아가며 했던 주장과, 여전히 판박이처럼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재심의 다른 말은 어쩌면 '기회'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백씨 부녀에게는 제대로 된 기회에서 정당한 재판을 다시 받을 수 있는 기회, 재판부에게는 바뀐 상황에 적법한 정의를 실현할 기회, 그리고 검찰에게는 피해자의 인권을 존중하며 동시에 증거를 감추지 않고도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있음을 증명할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15년전 검사 강씨와 검찰이 말로만 늘어놓고 실천하지 않았던 '공정한 게임'이 이제부터라도 진정으로 시작되어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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