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17 13:26최종 업데이트 24.01.17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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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자유시보가 14일 1면 톱기사로 실은 집권 민주진보당 라이칭더 후보 총통 당선 소식. 라이칭더 당선자는 총통 당선 직후 기자회견에서 "대만인들은 행동을 통해 외부 세력의 개입을 성공적으로 막아냈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13일 치러진 대만 총통 선거가 민주진보당(민진당) 라이칭더 후보의 완승으로 끝났다. '선거의 해'라 불리는 올해 전 세계 44개 국가원수급 선거 가운데 사실상 첫 주요 선거였던 타이완 총통 선거에서 대만 국민들이 보여준 메시지는 분명했다 : 민주, 자주, 평화. 

대만 선거 역사상 어느 때보다 국제적 관심이 높았고, 중국의 노골적 압력이 심했던 이번 선거의 진정한 승자는 대만 국민들이었다. 전 세계가 '미중 대리전'으로 부르면서 해양-대륙 세력의 한판승부 구도를 그려냈지만 대만 유권자들은 신중하고 차분했다.


외교·안보 차원에서 노골적인 중국의 압박에 단호히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면서도 극단적인 '대만 독립' 프레임이 정치의 중심에 들어서는 것은 불허했다. 경제 차원에서는 비교적 양호한 차이잉원 현 총통의 성적표에도 불구하고 중국이라는 초대형시장을 포기하지 말라는 주문 또한 선거에 담아냈다.

호들갑스러운 언론들이 잠잠해졌으니 이제 차분히 따져보자. 과연 이번 대만 선거의 핵심이 '미중 대리전에서 승리한 미국' 프레임에 있을까? 양안문제(중국과 대만 문제)의 핵심은 '중국화'에 대한 찬성-반대의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친미, 반미의 문제 역시 아니다.

최근 수년 동안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이 보여준 범중화권 흡수 정책의 민낯이 무엇인지 조금의 민주주의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정확히 목도했다. 중화권이라는 정체성은 중국의 무리한 정치적 통합 시도 이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무리한 정치적 흡수통합이 문화 정체성의 활력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커먼웰스(영국문화권), 프랑코포니(프랑스문화권), 알아라비(아랍문화권) 등은 정치적 통합 없이도, 오히려 정치적 독립성 보장 이후 문화적, 경제적 원동력이 강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심지어 공식 언어가 같지 않아도 민주적 절차만 보장되면 더 강력한 통합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유럽연합이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 정부는 현대 인류가 가진 문화에 대한 이해와 정책을 역행하는 행태를 최근 수년간 보여왔다. 중국 정부가 인지하지 못하는 그들의 민주주의 감수성 결여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 정확히 보여준 경우가 바로 이번 대만 선거였다.

일차원적 이분법 '미중 대리전' 프레임
 

13일(현지시간) 대만에서 민주진보당 라이칭더 대만 총통 당선자의 지지자들이 선거 승리 후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중화권 민중들이 거부하는 것이 '중국화'가 아니라 '전체주의화'라는 것을 중국 당국뿐 아니라 언론들도 쉽게 놓치고 있다. 홍콩사태를 보도하는 대부분의 언론이 가진 프레임은 '홍콩의 중국화'에 대한 거부와 찬성으로 짜여 있었다. 이렇게 논점의 핵심을 비껴가는 보도 행태가 이번 대만 선거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그 결과가 바로 '미중 대리전' 프레임이다. 

이것은 중국이 정확히 바라는 양안관계 프레임이다. 중국 당국은 이번 대만 선거를 평화와 전쟁 사이의 선택으로 대만 유권자들을 내몰았다. 그리고 한국을 비롯한 수많은 국가의 언론들은 베이징의 문법을 그대로 좇았다.

대만 중국국민당(국민당)의 승리는 곧 대만 유권자들이 중국을 택한 것이고 그것은 양안관계의 평안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 대가로 대만 국민들은 홍콩과 마찬가지로 반민주주의와 전체주의를 그들의 정치적 숙명으로 수용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민진당의 승리는 이들이 중국을 밀어내고 미국을 택한 결과라는 논리다. 전형적인 이분법적 사고의 프레임이지만 많은 이들의 사고를 지배하는 틀이다. 대만 국민들은 결국 친미 국가를 지향하며 중국과 대결 구도로 나아간다는 논리다.

범중화권 의식이 전체주의 체제로의 굴복과 반미를 의미하고 반 중화권 의식이 중국 정부에 대항하며 친미 국가로의 지향성을 추구한다는 일차원적 이분법 사고는, 중국 정부의 저급한 프로파간다에 동화되지 않는 이상,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지난 13일 독일의 <디 차이트>에 실린 "대만은 감동하지 않았다" ⓒ 디 차이트


물론 세계의 모든 언론이 그 프레임에 기댔던 것은 아니다. 독일의 <디 차이트>는 이번 대만 선거를 '전쟁과 평화' 프레임으로 꿰려는 중국 정부의 각본이 대만 국민들을 전혀 감동시키지 않았다고 분석하고 있다.

스페인의 유력지 <엘 문도> 역시 "대만의 민주주의는 이웃 공산주의의 강한 압력과 위협에도 불구하고 자유는 중국어를 사용하는 사회와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며 이분법적 오류에서 벗어나 사안을 보고 있다.

대만 유권자들이 선택한 황금 구도

실제로 민주주의 지수 세계 10위(2022년)의 나라 대만의 국민들은 대부분의 전 세계 언론보다 성숙했다. 부재자 투표가 허용되지 않는 대만에서 유권자들은 13일 선거일에 즈음해 오로지 투표를 위해 마치 한국의 설날에서나 볼 수 있는 고속도로 정체현상을 연출했다. 이것이 선거라는 민주주의 최고 축제를 누릴 자격이 있는 자들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인가.

중국의 오만한 태도 앞에서 그들은 자주적 목소리로 대만의 민주주의와 정체성을 외쳤다. 그러면서도 선거기간 동안 정치인들이 극단적 주장을 자제하도록 압박했다. 차이잉원 현 총통보다 더 근본주의적 독립주의자인 라이칭더 당선자는 선거운동 기간 중 유권자들을 향해 자신의 임기 동안 독립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야 했다.

반면 국민당 출신 마잉주 전 총통은 선거 직전 유권자들을 자극하는 '시진핑 주석을 믿어야 한다'는 발언으로 곤욕을 치렀다.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국민당의 허우유이 후보는 마 전 총통의 이 발언으로 상당수의 표를 잃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단호함과 절제를 함께 보여준 대만 유권자들은 민주주의와 주체성을 중국과 전 세계에 알리려는 듯 총통 선거에 임했다. 반면 입법부 선거에서는 한 석 차이(52대 51)로 집권 민진당이 아닌 야권 국민당의 손을 들어줬다.

특히 총통 선거와 달리 입법부 선거에서는 거대 담론이 아닌 높은 부동산 가격이나 낮은 임금과 같은 민생 문제가 선거의 주요 이슈로 작용했다. 특히 커원저 후보를 앞세운 대만민중당(민중당)에는 8석이라는 적지 않은 의석을 부여해 사안에 따라 여당도 야당도 견제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구도에서는 민진당도, 국민당도 마음대로 입법 권력을 행사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러한 황금 구도를 만들어 준 유권자들에게 이제 대만의 정치 세력들은 그들의 민심 이해도를 보여줘야 한다. 주변국들과 국제사회, 언론의 오판을 허용하지 않으려면 중국의 '전쟁과 평화' 프레임에서 대만 정치권 스스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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