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뭘 해도 안 되는구나 지금은'이라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런 어려움을 안고 간지 몇 년째가 됐는데 아직 지나가지는 못했다. 그래도 같이 가보려고 한다. 그런다고 해서 제가 무너질 것 같지는 않으니까."
 
배우 장나라만의 '자존감을 지키는 법'이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27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225회 '해피엔딩' 특집 편에서는 한국 최초의 주한미군-하버드대 동시 재학 모녀 서진규-조성아씨, 소통 강사 김창옥, 배우 장나라가 출연하여 자신들의 인생 이야기를 전했다.
 
서진규 씨는 1970년대 미국으로 이주하여 미 여군에 입대하여 주한미군 중대장을 역임했으며 1990년에는 늦은 나이에 하버드 석사과정에 입학한 이색적인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딸 조성아 씨는 어머니의 뒤를 이어 하버드대와 ROTC를 거쳐 현재는 주에콰도르 미국 외교관으로 근무하면서 2대에 걸친 도전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어머니 진규씨는 미국에서 군인이 된 이유로 "살아남기 위해서 길을 찾아간 게 군대였다"고 고백했다. 진규씨가 어릴 때만 해도 '여자는 살림하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시집가면 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여성의 지위나 사회적 인식이 모두 낮았던 시절이었다. 젊은 시절 가발 공장 직공, 가사 도우미, 식당 종업원 등을 거쳤던 진규 씨는 문득 "내가 이러려고 세상에 태어났나? 하는 분노와 반발이 있었다"고 밝혔다.
 
진규 씨는 1972년 23살에 100달러 들고 새로운 희망을 찾아 미국으로 떠났다. 현지에서 한국 남자와 결혼도 해봤지만 가정 폭력과 생활고에 시달리며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8개월 된 딸을 한때 홀로 한국에 보내면서까지 그녀가 선택한 마지막 돌파구는 군대였다.
 
1976년 28세의 늦은 나이에 입대한 군대에서 진규씨는 10살 가까이 어린 동기들과 함께 훈련을 받아야 했다. 처음에는 팔굽혀펴기도 못하고 구보도 꼴등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악바리같은 노력으로 자신의 한계를 하나씩 극복해나갔다. "울다가 잠들고. 그러면 꿈에서 우리 딸도 만났다"라고 힘들었던 순간을 회상한 진규씨는 "이를 악물고 달렸더니 결국 졸업을 1등으로 했다"고 밝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진규 씨는 사병으로 시작하여 이후 장교로 임관했고, 1985년에는 주한미군 중대장이자 미군 최초의 여성 연락장교로 활약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딸인 성아 씨도 군인인 어머니의 모습을 동경하며 자연스럽게 군인의 꿈을 키우게 되었고 어머니와 같은 연락장교로 활약했다.
 
또한 진규 씨는 직업군인으로 근무하면서 학업에 대한 꿈도 포기하지 않았다. 주경야독을 병행하면서 1992년 하버드 대학을 석사로 졸업했다. 군대에서의 성공과 학업 사이에서 고민하던 진규 씨는 1996년 소령으로 예편하여 20년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따며 공부를 이어갔다. 딸 성아 씨도 재도전 끝에 1997년 하버드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하며 모녀가 함께 나란히 대학 동문이 됐다.
 
하루 15시간씩 공부에 매진했다는 진규 씨는 "내 삶을 헤쳐나갈 수 있는 방법은 공부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성적이 올라가면서 자신을 무시하던 사람들이 인정을 해주기 시작했다며 "너무 달콤했다. 포기만 안 하면 더 나은 삶으로 갈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지고 학교를 다녔다"고 털어놨다.
 
2000년 성아씨가 하버드를 졸업하면서 ROCT 임관식에서 관례에 따라 선배장교를 선택하여 임관 선서를 하는 상황에서 교관 대신 어머니인 진규 씨를 지목하는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성아 씨는 "너무 좋았다. 엄마는 저에게 한 팀이자 제일 친한 친구였다. 새로운 길을 밟을 때 엄마는 늘 그렇듯 옆에 계셨다"고 자랑스러워하며 "엄마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기 때문에 당연히 엄마한테 선서해야했다. 임관식은 제 순간이었지만 엄마의 순간이기도 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진규 씨는 미국으로 처음 떠나던 23살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로 "참 잘했다. 불쌍하고 가엾은 애를 네가 안 도와주면 세상은 너를 버릴 거야, 일어나라"고 응원하며 애틋한 심경을 드러냈다. 성아 씨는 자신의 인생을 책으로 쓴다면 첫 문장으로 "The cup is half full(반이 차 있는 물컵)"을 언급하며 "'물이 반이나 남았잖아'라는 긍정적인 생각만으로 기회가 생긴다"는 엄마의 조언을 언급했다.
 
성아 씨는 지금도 "밑져야 본전"이라는 엄마의 철학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면서 "해보면 어때, 안 되면 그만이고 그래도 해봤으니까.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그 말을 생각하면서 모든 것을 결정한다"라고 고백했다.
 
온라인 2억 뷰를 자랑하는 소통 전문 강연가 김창옥은 최근 치매를 유발하는 알츠하이머 유전자가 있다는 사실을 솔직히 고백하여 많은 응원을 받았다.
 
제주도가 고향인 김창옥은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공부도 못하고 장난기가 많았지만 사람들을 웃기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다고 고백했다. 사실 그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부모의 불화와 무서웠던 부친의 영향으로 주변의 눈치를 보는 성격을 갖게 되었다고.
 
3년 전에 작고한 부친은 청각장애가 있었고 그로 인하여 김창옥과 부자간의 소통과 유대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훗날 부친은 70년 만에 수술을 해서 소리가 들리게 되었고 김창옥은 아버지의 귀를 치료하는 과정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담아내면서 조금씩 관계를 회복했다. 부친이 작고한 후 오랜만에 영화를 다시 봤다는 김창옥은 "그거 보니까 처음으로 아버지가 보고싶더라. 그때 아버지가 처음으로 나한테 고맙다고 하셨다"라고 털어놓으며 주변을 뭉클하게 했다.
 
김창옥은 아버지가 처음으로 자신에게 어색하게 "고맙다"라고 이야기해주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는 "그 영화를 다시 보니 정말 아버지와 좋은 이별을 한 것 같았다"며 "어느날 아버지가 술을 살짝 드시고 검은 봉지에 포도를 사오신 적이 있는데, 그날 유일하게 기분이 좋아보였다. 폭력적이지 않은 거의 유일한 모습이었다. 희한하게 내가 자라서도 과일같은 걸 보면 사오게 되더라"라며 자신도 모르게 어렵고 불편하던 아버지를 닮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깨달았다.
 
김창옥은 "언젠가 우리가 또 만나게 되면 그때는 꼭 아버지하고 자연스럽고 진솔한 얘기를 서로 해보고 싶다. 여러가지로 힘드셨을텐데 잘 키워주셔서 감사하다. 제 마음이 더 풀리면 자연스럽게 아빠와 이야기하는 날이 올 수 있도록 또 아버지를 찾아오겠다. 편히 쉬세요"라며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게 인사를 전했다.
 
한편 50대에 알츠하이머 의심진단을 받은 김창옥은 "스트레스 때문에 강연은 쉬고 상담만 받겠다고 했는데, 며칠 사이에서 와전된 기사들이 쏟아지면서 벌써 저는 은퇴에 알츠하미어 환자가 되어있더라. 보도가 되면서 딸이 학교에서 울었다고 하더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아직은 의심단계이지만 김창옥은 조심스럽게 혹시 알츠하이머로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이들을 못알아보는 순간이 올 것을 걱정했다. 한편으로 그는 "알츠하이머 환자들이 기억은 사라져도 감정은 기억한다고 한다. 좋은 감정을 추억이라고 말하고 싶다. 추억은 시간이 자나도 선명해지 는게 있다. 정말 중요한 것들은 뇌가 마지막까지 갖고 있으려고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하며 열린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희망을 잃지 않았다.
 
결혼 후 첫 예능으로 돌아온 만능엔터테이너 장나라가 마지막 출연자로 등장했다. 장나라는 현재 신작 <나의 해피엔드>로 복귀를 앞두고 있다.
 
지난해 6월, 장나라는 6살 연하의 정하철 카메라 촬영 감독과 백년가약을 맺으며 행복한 신혼생활을 즐기고 있다. 남편과는 장나라의 출연작인 드라마 <VIP> 촬영 현장에서 배우와 스태프로 처음 만나 사랑을 키웠다고. 신혼생활을 묻는 질문에 망설임없이 "너무 좋아요"라며 방긋 미소를 지은 장나라는 "저와 성향이 잘 맞는다. 집에가면 베스트 프렌드가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멋있어"라며 여전히 달달한 신혼의 면모를 드러냈다.
 
장나라는 대본 리딩 현장에서 처음 만난 남편에 대하여 "앞에 앉아있는데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하는데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촬영을 할 때보니 애티튜드가 너무 좋았다"며 첫인상을 회상했다.어느 날 남편이 메인 감독과 대화를 하다가 웃는 모습을 목격하고 "안 웃을 때는 매서워보이는데 웃으니까 하회탈처럼 웃더라. 악의가 하나도 없는 얼굴이었다. 그날 제 마음 속에 들어왔다"며 처음으로 남편에게 반하게 된 순간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못했던 장나라는 드라마가 모두 끝난 후 용기를 내어 남편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문자를 주고받던 장나라는 "저는 좋아합니다"라고 과감하게 고백까지 했다. 처음에는 이성이라기보다 그저 동료로서 좋아한다는 의미로만 받아들였던 남편은 이후 장나라와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호감이 커졌다.
 
장나라는 남편과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문득 "결혼을 하겠구나"라는 느낌이 본능적으로 들었다고. 남편이 먼저 장나라에게 먼저 진지한 만남을 제안했고, 장나라는 그때 속으로는 "저는 그날 이미 생각했다. '(시집을) 갔다!"라고 털어놓으며 거침없는 직진 본능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장나라는 음악방송 VJ로 시작하여 시트콤 <뉴논스톱>, 장혁과 공연한 드라마 <명랑소녀 성공기> 등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장나라는 연기, 예능, 노래, 광고 등을 넘나들며 장나라의 성공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정작 장나라 본인은 당시 바쁜 스케줄에 치여사느라 인기를 실감하거나 누리지는 못했다고. 장나라는 "잠을 거의 못잤다. 술도 안 마시는 21살 여자애가 간과 위에 이상이 생겼다. 머리를 감다가 블랙아웃이 오기도 했다"는 놀라운 뒷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잘 지나왔다는 생각도 든다. 후회없이 화르륵 태웠다"고 긍정적으로 회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장나라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고 고백했다. 장나라는 "한때 '장나라는 귀여운 거 말고는 아무 것도 못할 거야'라는 이야기가 나오더라. 어렸을 때는 그런 이야기가 저를 파이팅 넘치게 만들었다"고 패기 넘치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그런데 최근 들어 오히려 나이를 먹을수록 연기에 한계를 느끼는 순간이 찾아오더라는 고민을 털어놨다. "저기 빛이 보이는데 아무리 헤엄을 쳐도 수면 위로 올라갈수 없는 느낌이라고 할까. 아무리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스스로 한계를 느낄 때는 너무 괴로웠다"고 고백했다. "재능을 주실거면 왕창 주셔서 누가 봐도 잘하는 재능을 주셨으면 좋았을텐데"라고 신을 원망했던 순간도 있었다고.
 
그러다가 어느날 문득 장나라는 씻다가 픽 웃음이 나면서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 찾아왔다. "내가 이 재능마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엄두에  못냈을텐데, 그러자 '어우,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나오더라"고 고백하며 미소를 지었다.
 
지금도 장나라는 작품을 할 때마다 한두 신을 꼭 망치는 징크스가 있다고 한다. 한때는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속이 타들어가고 작품이 끝날 때까지 괴로워했다는 장나라는 "어느 순간부터 제 능력으로 다할 수 없는 부분은 같이하는 동료들에게 맡기고 일단 미뤄두더라도 앞으로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니까 나아지더라"며 "극복을 못하더라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채로 어디 한 번 가보자라는 추진력을 얻게 된다"는 자신만의 슬럼프 극복 비결을 털어놨다.
 
장나라는 슬럼프나 한계를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다면서도 이제 그에 짓눌려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한결 성숙해진 자신감을 드러냈다. 스스로 자존감이 높다고 고백한 장나라는 "저는 제가 되게 괜찮다고 생각한다. 살아가는데 충분히 예쁘장하다고 생각하다"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대신 "직업적으로는 부족한 부분도 많다. 가느다란 목소리에 대한 지적도 많이 받았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나라는 "아무리 생각해도 감사했다. 제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받았으니까. 오히려 그 감사한 일을 20대 때는 식사 시간에 주문 밀린 짜장면을 소화하듯이 했던 게 죄송하다"고 털어놓으며 "나이가 들면서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 시간을 내서 봐주는 시청자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그 무게감을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마지막으로 장나라는 "앞으로 보시는 분들이 기대할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며 연기를 계속해도 해결이 안 되는 문제점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계속 노력할 것"이라며 다짐하며 한결 단단해진 여배우로서의 내공을 드러냈다.
유퀴즈 김창옥 장나라 유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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