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11 11:58최종 업데이트 24.01.1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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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보러 가기 겁난다'는 말이 나오는 요즘입니다. 2023년 통계청이 발표한 신선식품 지수 동향에 따르면 2년 사이 장바구니 물가가 25% 가까이 올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다른 나라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2024년 신년특집으로 세계 각국의 장바구니 물가를 소개하는 '글로벌 공동리포트'를 기획했습니다. 통계수치에서는 담지 못하고 있는 생생한 실물 경제의 명암을 공유하려고 합니다. [편집자말]

영국의 대형 마트 테스코의 빵 진열대 ⓒ 제스혜영


영국에 '팝 웍스'(pop works)라는 과자가 있다. 짭짤하고 달콤한 강냉이 뻥튀기인데 감자칩처럼 납작하게 눌려서 바삭하고 고소하다. 한 봉지(98g)에 1.20파운드(1984원). 한 봉지를 뜯기가 무섭게 순식간에 바닥이 보이고 손가락을 빨고 있을 만큼 맛있는 과자다.

한 동안 보이지 않더니 2.25파운드(3721원)란 가격으로 진열대에 돌아왔다. 3개월 만에 87.5%의 상승이라니, 미친 가격이다! 팝웍스뿐만 아니라 다른 식품의 가격도 마찬가지다. 저절로 손이 가다가도 멈칫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2023년 12월 현재 영국의 주요 식품 가격을 한 번 알아보자.

우유 1파인트(568㎖) : 90펜스(1488원). 닭고기 1킬로그램 : 4파운드(6615원). 다진 소고기 1킬로그램 : 8.30파운드(1만 3728원). 사과 1킬로그램 : 2.60파운드(4300원). 감자 1개 : 75펜스(1240원). 식빵 1 봉지(800g) : 1.37파운드(2265원). 감자칩 14그램 6 봉지 : 2파운드(3307원).
   
스코틀랜드에 사는 질리안은 고깃값이 너무 올라 채식을 주로 한다. 대부분의 식료품 가격이 올랐지만 최고로 상승한 것은 바로 고기다. 2년 전만 해도 소고기는 1kg에 6.16파운드(1만 188원)였고 닭고기는 1Kg에 2.78파운드(4598원)였다. 무려 34~43%나 올랐다.

영국 통계청에서 발표한 최신 소비자물가지수에 따르면 2023년 10월까지 식품 및 무알코올 음료 가격이 10.1% 상승했다. 2023년 3월 19.2%로 45년 만에 가장 높은 비율로 최고치를 찍은 후 몇 달 동안 완화되었다. 완화되었다 하더라고 2021년 10월에 비해 약 30% 더 높게 나왔다.

레스토랑과 카페의 가격은 2023년 10월까지 연간 8.8% 상승했다. 2023년 11월 생활양식 조사에 따르면 성인 10명 중 4명 이상(43%)이 지난 2주 동안 식품 구매를 줄였다고 답했다. 한 달 전에 비해 생활비가 올랐다고 답한 성인의 47% 중 가장 흔한 이유가 식비 상승이었다.

영국의 월평균 외식비, 1인당 44파운드(7만 2775원)
 

영국의 대형 마트 테스코의 고기 진열대 ⓒ 제스혜영


두 아들을 둔 제니는 남편과 함께 스코틀랜드 중동부의 클랙매넌셔에 산다. 제니는 버터나 식용유값이 많이 올라 버터는 대형마트 브랜드를 사고 식용유는 작은 양을 구입한다고 했다. 2년 전만 해도 버터 500g이 3.35파운드(5540원)였는데 지금은 16%나 올랐다.

또한 브랜드별로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루어팍 버터는 500g에 5파운드(8269원)로 가장 비싸지만, 영국의 대형마트인 아스다(ASDA)에서 자체 브랜드 버터를 사게 되면 1.10파운드(1819원)로 저렴해진다. 제니의 한 달 외식비는 보통 30파운드(5만 원)로 한 달 수입의 1.5% 정도다.

2023년 영국 평균 생활비 조사에 따르면, 성별과 나이에 따라 편차가 있으나 영국에서 월평균 외식비(배달음식 포함)는 성인 1인당 44파운드(7만 2775원)였다. 스코틀랜드에서 외식을 할 때면 10~15%의 팁을 따로 줘야 한다. 제니는 가족끼리 식당을 가기보다는 보통 피자나 햄버거 등을 배달시켜 먹는다고 했다.

세 자녀를 둔 나는 4년 동안 영국에 살면서 가족과 함께 외식을 해 본 적이 없다. 두세 달에 한 번씩 집에서 가까운 피시앤칩스를 시켜 먹는다거나 팁이 필요 없는 대형마트 음식점이나 맥도널드 같은 체인점을 찾게 된다. 5인 가족으로는 대개 35~45파운드(5만 8000~7만 4000원) 정도 나온다.
 

영국식 아침식사 ⓒ 제스혜영

 
영국의 주식은 오븐에 구운 닭이나 소고기 요리,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피시앤칩스, 인도카레 등을 들 수 있다. 스코틀랜드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스코틀랜드 전통음식 하기스(Haggis)를 빠트릴 수가 없다. 하기스는 양의 심장, 간, 폐에다 오트밀을 섞어 양파, 고춧가루 등 향료를 넣고 소시지처럼 만들어 삶은 요리다. 양 말고도 다른 동물의 내장을 쓰기도 한다. 한국의 순대와 비슷하지만 후추향이 아주 강하다.
 

영국의 대형 마트 아스다의 음식 코너 '판쿠' ⓒ 제스혜영

 
대형 마트 아스다에 '판쿠'(Pankku)라는 핫한 음식 코너가 생겼다. 일본, 태국, 한국음식을 파는 곳이다. 외식비를 절약하고 한 끼정도 특별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점인 셈이다.

"판쿠는 1년 동안 가격을 올리지 않았어요!"

판쿠에서 1년 동안 일했다는 비비가 말했다. 일본 브랜드인 판구 본점에서 원재료가 배달되면 비비는 이른 아침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직접 요리를 해 개별 포장을 한다. 군만두, 유부초밥, 초밥, 데리야키치킨, 소고기덮밥, 닭강정 등 3.5~7파운드(5788~1만 1577원) 정도면 한 끼 식사로 괜찮다. 비비에 따르면 제일 잘 팔리는 음식이 데리야키치킨이란다. 닭강정을 먹어보니 맵지는 않았고 생각보다 맛있었다.
      
써니는 대형마트 세인스버리(Sainsbury)에서 일한다. 2023년 대형 마트별 가격 지수를 살펴보면 세인스버리가 다른 마트보다 9.8%로 최고 상승세를 보였다. 써니는 물가가 오른다고 해서 본인의 월급도 오른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2년 전 9.5파운드(1만 5712원)였던 최저임금이 11파운드(1만 8193원)로 올랐을 뿐이라고 했다. 직원이기에 10%를 할인받지만 세일상품 말고는 주로 더 저렴한 마트를 이용한다고 덧붙였다.
 

영국의 대형 마트 세인스버리에서 일하는 써니 ⓒ 제스혜영


이용자가 80만 명 늘어난 푸드뱅크

스코틀랜드의 학교 무료급식은 초등학교 5학년까지만 해당된다. 그 이후로는 도시락을 싸거나 학교 급식을 사서 먹어야 한다. 학교 급식은 2~3파운드(3307~4961원)로 파니니 샌드위치, 토마토 파스타, 중국식 볶음국수 등 요일별로 제공되는 두세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 가정의 경우 무료로 제공된다.

스낵이나 음료는 개인이 챙겨가기 때문에 감자칩이나 팝콘처럼 낱개로 포장되거나 곡물과 초콜릿이 들어 있는 그래놀라바 등이 인기가 많다. 그래서 마트별로 스낵 부분을 할인하거나 몇 달간 가격을 고정하는데 그럴 때면 그래놀라바를 여러팩 사다가 쟁여 놓기도 한다.
 

대형마트에 있는 푸드뱅크 함. 물건을 계산한 소비자들은 식료품, 생리대, 화장지처럼 필요한 물품을 이곳에 넣는다. ⓒ 제스혜영

  
많은 사람들이 여러 방법으로 식비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누군가는 줄여 볼 식비조차 없어 고통과 불안의 나날을 보내기도 할 것이다. 이런 이들을 위해 푸드뱅크가 있다.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식료품을 무료로 제공해 주는 곳이다.

학교에서도 1년에 두세 번씩 학생들에게 식료품을 가지고 오라고 한다. 보통 참치캔, 스파게티 누들, 야채수프캔, 토마토소스, 우유나 주스, 비스킷 등 캔이나 병, 박스에 들어 있는 음식들이 모여진다.

이렇게 모여진 식료품들은 푸드뱅크로 전달된다. 학교뿐만 아니라 대형마트에도 푸드뱅크 함이 있다. 물건을 계산하고 나서 그중 한두 가지 식료품, 생리대, 화장지처럼 필요한 물품을 푸드뱅크 함에 넣는다. 다 모여지면 푸드뱅크로 전달되고 푸드뱅크는 지역센터나 교회로 보내져 그곳에서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무료로 제공된다.

스코틀랜드에 있는 틸리쿠트리 침례교회에서는 일주일에 두 번씩 푸드뱅크의 음식을 나눠주고 있다. 그곳 자원봉사자 데이비드의 말에 의하면 신체적, 정신적인 이유로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이나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의 난민, 재정이 어려운 유학생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2023년 299만 명이 푸드뱅크를 이용했는데 219만 명이었던 2022년도에 비해 이용자가 80만 명 더 늘었다. 어려운 사람들이 있을수록 그들을 도우려는 사람들 또한 존재하고 있다. 이들이 물가만큼이나 혹독한 이 추운 겨울을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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