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최대 격전지는 유격수 부문이었다. 오지환(LG 트윈스)와 박찬호(KIA 타이거즈)는 올시즌 공수에 걸쳐 KBO리그 최고 유격수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판정승을 거둔 것은 오지환이었다. 12월 11일 서울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2023 신한은행 SOL KBO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오지환은 박찬호를 제치고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수상이었다.
 
투표 결과에서 보듯 두 선수 훌륭한 성적을 남겼다. 2023시즌 오지환은 총 126경기에 출장해 타율 2할6푼8리(113안타) 8홈런 62타점 65득점 16도루 출루율 .372, 장타율 .396, 수비율 .970, 실책은 14개를 기록했다. 소속팀의 28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과 MVP라는 타이틀까지 추가했다.
 
박찬호는 130경기에 출장해 타율 3할1리(136안타) 3홈런 52타점 73득점 30도루 출루율 .356, 장타율 .378. 수비율 .973, 실책 14개를 기록했다. 개인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지만 막바지 큰 부상과 소속팀의 PS 탈락이 아쉬웠다. 그래도 개인 통산 첫 규정 타석 3할-30도루를 기록하며 리그 최고의 20대 유격수로 발돋움한 시즌이었다.
 
전반적으로 타격에서는 장타력과 wRC+(조정 득점 생산력)에 앞선 오지환의 우위, 수비에서는 유격수 수비 이닝(1042.2이닝)과 안정감에서 앞선 박찬호의 근소한 우위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골든글러브 투표가 정규시즌의 성적만 평가한 것이 아니라 포스트시즌 결과까지 반영된 점도 오지환에게 유리했다. 오지환은 한국시리즈 5경기에서 타율 .316 3홈런 8타점으로 팀의 우승을 견인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오지환과 박찬호, 두 선수는 올해 처음 만들어진 'KBO 수비상' 유격수 부문에서 유일하게 공동 수상을 기록하기도 했다. KBO 수비상은 정규시즌의 성적으로만 평가받는다. 골든글러브 경쟁 역시 치열했다. 물론 많이 이들이 예상한대로 오지환이 154표(52.9%)로 최종 수상의 영예를 안기는 했지만, 박찬호도 무려 120표(41.2%)나 받으며 오지환을 끝까지 위협했다. 다른 6명의 후보들이 받은 투표수는 모두 합쳐도 17표에 불과했다.
 
비록 수상 결과는 엇갈렸지만 두 선수가 모두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모습은 훈훈한 장면을 연출했다. 두 선수는 이날 시상식에 참가하여 나란히 서로를 언급했다. 박찬호는 이미 발표 전부터 오지환의 수상을 예상하며 "원래 올 생각이 없었는데, '2위의 품격'을 위해서 왔다"라며 "지금 자체만으로도 즐겁고 수상자를 축하해주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박찬호는 "상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은 전혀 안 했지만, 오지환 선배와 (경쟁자로) 내내 같이 언급된 선수로서 같이 자리를 빛내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상식장 풍경이 궁금하기도 했다"라며 "나도 언젠가는 수상자로 와야 하니까"라고 덧붙였다. 경쟁자의 실력과 성과를 존중하면서도 언젠가 본인도 그 위치에 올라설수 있다는 자신감도 숨기지 않았다. 품격과 자존심을 모두 지킨 모범답안과도 같았다.
 
오지환 역시 박찬호를 언급했다. 오지환은 박찬호의 인터뷰를 전해듣고 "정말 멋있는 친구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후배지만 내가 배워야 할 존경심이 든다"라며 "야구장에서 종종 박찬호와 대화를 한다. 올해 박찬호가 3할을 쳤으니까 앞으로 여러 가지를 물어봐야겠다"고 후배를 칭찬했다.
 
또한 유격수 부문에서 치열했던 경쟁 결과에 대해서도 "표 차이가 적어서 아쉽다기보다는 관심을 많이 가져주셔서 감사하다"라며 "유격수라는 자리는 그만큼 경쟁을 치열했었던 자리였고, 그만큼 출중한 선수들이 많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격수와 대비되는 포지션은 포수였다. 양의지(두산)는 포수 부문에서 350명 중 214명의 표를 받아 득표율 73.5%로 수상자로 선정됐다. 역대 9번째 수상으로 이 부문 최다인 이승엽 감독(10회)을 바짝 쫓았고 이중 포수로만 8번째 수상하며 김동수(7회)를 넘어 KBO 포수 부문 최다 수상자에 이름을 올렸다. 
 
세월을 넘어선 양의지의 꾸준한 활약은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한편으로 '대항마'의 부재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올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박동원(LG)이 그나마 경쟁자로 뽑혔지만 투표에서는 63표(21.6%)을 얻는데 그쳐 양의지와는 여전히 격차가 컸다.
 
최정(SSG, 통산 8회)이 오랫동안 군림해오던 3루수 포지션에서 올시즌 홈런왕 노시환(한화)이 생애 첫 수상을 안으며 '세대교체'의 신호탄을 알린 것과 달리, 포수에서는 어느덧 36세가 된 양의지와 비견될만한 라이벌은 고사하고 후계자가 될만한 20대 포수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동시대를 풍미했던 강민호는 양의지보다도 2살이 더 많고, 박동원도 벌써 33세의 베테랑이다.

훌륭한 경쟁자의 존재는 선수를 더 성장시키고 프로스포츠를 더 흥미롭게 만드는 이슈를 제공한다. 라이벌(Rival)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같은 분야에서 또는 같은 목적을 위해 서로 경쟁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그 어원은 강을 뜻하는 리버(River)의 라틴어 어원인 리파리아(Ripaira)와 강가를 두고 마주보고 있는 이웃을 뜻하는 라발레스(Rivales)에서 비롯됐다. 생존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물의 소유권-강의 통행권 등을 놓고 가까운 이웃이면서도 때로는 선의의 경쟁을 펼쳐야하는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승엽 VS 심정수, 선동열 VS 최동원 등은 동시대에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슈퍼스타이자 라이벌로 꼽혔다. 이들은 비록 그라운드 위에서 만날 때마다 치열한 자존심 경쟁을 펼쳤지만, 서로를 자극하는 페이스메이커이기도 했고, 경기장 밖에서는 서로의 능력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관계였다. 오지환과 박찬호 역시 선의의 라이벌 경쟁 속에서 함께 발전할 수 있었다.
 
다가오는 2024시즌에는 유격수 경쟁 구도가 더욱 다원화되고 치열해질 가능성이 높다. 국가대표 2루수이자 2021년 유격수 골든글러브 수상자인 김혜성(키움 히어로즈)의 유격수 복귀 가능성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 박성한(SSG), 노진혁(롯데), 김상수(KT) 등 충분히 수비상과 골든글러브를 노릴만한 유망주-베테랑들이 존재한다.
 
수상자 오지환은 "리그에 정말 출중한 유격수가 많다. 그게 내게는 더 자극이 된다"며 다음 시즌에도 경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음을 밝혔다. 유격수 뿐만이 아니라 다른 포지션에서도 대등한 수준의 라이벌들이 더 많이 등장해야만 KBO리그도 더 발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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