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오은영 리포트-알콜지옥>의 한 장면

MBC <오은영 리포트-알콜지옥>의 한 장면 ⓒ MBC

 
대한민국은 술을 사랑하는 권주(勸酒) 국가로 꼽힌다. 지난 2021년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한국 18세 이상 성인들의 음주 비율은 전체의 76.9%에 이르며 이중 무려 35.6%가 몸에 해로운 수준의 음주를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2022년 통계청이 집계한 한국인의 사망 원인으로는, 연간 알코올 관련 사망자만 5,033명으로 하루 평균 13.8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보건복지부 조사에서 한국의 알코올 사용장애 유병률은 남자가 17.6%, 여자는 5.4%로 집계되었다. 한국 국민이 평생 알코올 중독에 걸릴 확률은 약 11.6%로 전 세계 평균인 4.1%보다 압도적으로 높을 만큼 한국의 알코올 문제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27일 첫 방송된 MBC 교양 프로그램 <오은영 리포트, 알콜 지옥>(아래 <알콜 지옥>)에서는 술 때문에 일상을 잃어버렸다는 10인 지원자들의 '금주 서바이벌'을 통해 2023년 현재 대한민국 음주문화의 현실과 알코올 의존의 위험성을 조명했다.
 
신청자들은 모두 하나같이 매주 7일 내내 습관처럼 술을 마시는 것은 기본에, 지나친 음주로 건강이 악화되거나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호소했다. 술기운에 취해 음주운전-절도-폭력 등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경우도 다수였다고.

면담 당일까지도 음주 상태로 온 참가자

오은영은 최종 오디션에서 예비 참가자들과 면담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저마다 항암치료 중에도 술을 마셨다거나 혹은 술에 대한 가족력,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등 각양각색의 사연들을 고백했다.
 
특히 오디션을 받으러 온 당일에도 음주를 한 참가자들도 있었다. 특히 면접 장소에 오지 못해 영상통화로 오디션을 대체한 참가자는 성폭행을 당한 이후 충격으로 술에 의존하게 되었다는 사연에, 오은영도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했다. 참가자들은 이제는 알코올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새롭게 시작해보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오은영과 함께 대한민국 알코올 문제 권위자로 꼽히는 노성원 한양대병원 교수, 한창우 일산 명지병원 교수, 김장래 국립중앙의료원 교수가 '알코올 어벤져스'로 합류해 <알콜 지옥>의 금주 캠프를 이끌게 됐다.
 
노성원 교수는 "알코올 중독은 만성 재발성 뇌 질환"이라고 정의하며 "중독은 내 의지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알코올 사용장애는 단번에 치료가 어렵다. 술을 끊으려는 의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치료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최종 선발된 10인의 참가자들이 합숙소인 금주 캠프에 모습을 드러냈다. 젊은 2030 세대 위주로 구성된 참가자들은 직업도, 나이도, 음주 경력도 다양했다. 평범한 직장인이나 자영업자에서부터, 모델, SNS 셀럽, 유튜버, 주부, 무직자도 있었다. 음주 연차는 2년에서 최대 20년에 이르렀다.
 
5남매를 키우며 육아 스트레스로 인해 음주를 시작했다는 이지혜, 현재 직업이 없어 계속 술을 먹기 위해 부모님께 지원을 받고 명품을 판매하는 이재은, 틱 장애와 외모 콤플렉스 등으로 대인기피증으로 생겨서 가면을 쓰고 다닌다는 김지송 등 다양한 참가자들이 각자 술에 빠지게 된 된 계기를 털어놨다.
 
제작진은 한 자리에 모인 10인의 참가자들을 위해, 다음날부터 진행될 본 미션에 앞서 특별한 연회를 준비했다. 금주 기간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자유롭게 미리 준비된 술을 음식과 함께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이른바 '최후의 만찬'이었다. 처음에 잠시 머뭇거리던 참가자들은 하나둘씩 연회장에 가득 비치된 술병들에 시선이 꽂히며 결국 만찬이 열린 지 19분 만에 전원 음주를 시작했다.
 
술을 마시면서 참가자들의 문제와 충격적인 사연들이 하나둘씩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강석범은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술에 빠진 이후 체중이 40kg나 증가했고 고혈압, 당뇨, 통풍, 고지혈증 등 각종 질병들을 앓게 됐다고 밝혔다.

스스로 술을 절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러나...
 
 MBC <오은영 리포트-알콜지옥>의 한 장면

MBC <오은영 리포트-알콜지옥>의 한 장면 ⓒ MBC

 
캠프입소 전 사전 촬영된 VCR 일상 영상에서, 만취하여 귀가한 강석범은 건물에 화재경보가 울리는 돌발상황에서도 음주를 계속하다가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다행히 화재경보는 오작동이었고 소방대와 제작진의 안전체크로 큰 사고는 없었지만 실제였다면 위험천만한 사고로 이어질 뻔한 상황이었다.

강석범은 오은영과의 면담에서는 발목 깁스를 한 모습으로 등장했고 음주 상태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 부상을 여러 번 당했다고 고백했다. 지켜본 전문가들은 강석범이 알코올 사용장애의 전형적인 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음주 10년 차인 문아량은 강석범과는 정반대로 2년 동안 체중이 10kg 이상이나 빠졌다고 밝혔다. 문아량은 "일어났을 때 갈증이 나면 물을 벌컥 먹는 게 너무 부럽다. 나는 먹으면 토한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평소 소주로 2병 반 정도 먹는다는 문아량은 음식을 먹으면 속이 울렁거리고 역류하여 억지로 참다가 토한다고 털어놨다.
 
오은영과의 면담에서 문아량은 이러다가 아사해서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을 느꼈다고 밝히며 "이렇게 약하고 의지 없고 몸까지 망친 소녀도 금주에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저는 정말 살고 싶어서, 너무 간절해서, 금주가 필요해서 지원했다"는 의지를 전했다. 문아량은 참가자들 간의 만찬에서도 어김없이 안주는 패스하고 술과 물만 마시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날 가장 심각한 모습을 드러낸 참가자는 음주 17년 차라는 한윤성이었다. 아스콘 포장공사업 종사자인 한윤성은 술이든 음료든 '원샷'을 즐긴다고 밝히며 지금까지 3000병 이상의 술을 원샷으로 마셨다고 고백했다. 한윤성은 참가자들 앞에서도 소주 한 병을 단숨에 원샷으로 비웠다. 화면으로 지켜보던 오은영도 심각한 표정으로 "원샷하는 데 6초밖에 안 걸린다. 저는 돌아가실까 봐 겁난다"고 우려할 정도였다.
 
한윤성은 본인이 "스스로 술을 절제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지만, 정작 폭음을 하다가 참가자들 중 가장 빨리 만취하면서 충동적 행동을 일삼기 시작했다. 참가자들은 점차 한윤성의 술주정에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고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급격히 어색해졌다. 결국 보다 못한 제작진이 개입하여 만취한 한윤성을 부축해서 먼저 숙소로 데려가는 것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알콜 지옥>은 청소년의 성문제를 다룬 시즌1, 이혼을 앞둔 위기의 부부들을 다룬 시즌2에 이어 세 번째 주제이자 스핀오프 특집 8부작으로 편성됐다. 800여 명의 사연 신청자 가운데 최종 선발된 10인의 지원자들은 금주 지옥 캠프 합숙소에서 7박 8일간의 여정을 함께하게 된다.
 
하지만 첫 회부터 방송의 자극적인 장면이 이어지며, 기획의도를 의심케 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아동청소년 전문가로 알려진 오은영이, 육아나 부부 갈등에 이어 알코올 의존 문제까지 다루는 게 적절한가 하는 지적도 나왔다. 정신건강의학도 세부적으로 다양한 분야로 나뉘며, 알코올 중독분야를 심층적으로 연구한 전문 의료인들이 별도로 존재한다.
 
이에 대하여 오은영은 <알콜 지옥>에서는 본인이 '솔루션'을 제시하는 역할이라기보다는, 해당 전문가들과 함께 알코올 문제에 대한 정보를 묻고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인터뷰어이자 진행자'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알콜 중독 치료가 아니라, 서바이벌?
 
 MBC <오은영 리포트-알콜지옥>의 한 장면

MBC <오은영 리포트-알콜지옥>의 한 장면 ⓒ MBC

 
한편으로 심각한 알코올 문제를 굳이 '서바이벌'이라는 경쟁의 소재로 삼는 점도 기획의 선정성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오은영은 "<알콜 지옥>은 '치료' 프로그램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그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고 건강한 삶으로 가는 문을 여는 계기가 되는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알코올 의존증은 전문가들도 단기적인 치료가 어렵다고 인정하는 '중독'이다. 참가자들은 모두 일반인들이고 현재 그들에게 알코올 의존증은 목숨과 인생까지 걸린 절박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방송은 금주의 의지를 다지며 모였을 참가자들에게, 캠프 첫 입성부터 일부러 대놓고 술판을 깔아줬다. 이는 미리 참가자들의 사전 인터뷰나 일상 VCR로 음주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만일 참가자들의 알코올 의존 성향과 금주 의지를 파악하기 위한 일종의 사전테스트라면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있었다.

심지어 제작진은 최후의 만찬이라는 핑계로, 술의 유혹에 약할 수밖에 없는 참가자들의 음주량이나 방식에 아무런 제약도 두지 않았다. 일부 출연자가 만취해 통제불능의 상태가 될 때까지 그대로 방치하면서 자극적인 행동을 은근히 부채질한 격이 됐다. 폭음을 하고 술주정을 부리던 한윤성은 잠시 야외로 나왔다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넘어지는 위험천만한 장면까지 발생했다. 자칫하면 출연자의 큰 부상이나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 프로그램이 과연 금주를 권장하는 솔루션인지 아니면 '음주 포르노'인지 의심하게 하는 장면이었다. 제작진과 전문가들이 해당 참가자들을 진심으로 걱정하기보다는, 방송을 만들기 위한 도구로서만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근본적으로 치료가 절실한 사람들에게 미션을 빙자해 상금을 걸고 경쟁을 시키겠다는 구성 자체가 자극적인 위험성을 내포한 발상이다. 또한 본인의 음주 상태에 대한 문제인식이 없거나, 출연의도에 의심이 가는 인물들도 있었다.

전체 참가자들은 제작진들이 봉투로 전달한 첫 번째 기상미션을 확인하는 것으로 금주 서바이벌의 시작을 알렸다. 이어진 다음주 예고편에서는 본격적인 금주 합숙훈련과 첫 번째 탈락자의 발표를 예고했다. 첫 회부터 선정성과 의문부호로 얼룩진 <알콜 지옥>의 기획의도가 과연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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