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21 13:35최종 업데이트 23.11.21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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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박민 사장이 지난 14일 오전 여의도 KBS아트홀에서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겠습니다’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권우성

지난 13일 박민 신임 KBS 사장이 취임했다. 그가 문화일보 논설위원 시절 쓴 편향적 사설, 법조언론인클럽 회장 경력 등을 미루어 볼 때 KBS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박 사장은 KBS를 장악하고 철퇴를 휘두르는 모양새다.

그는 취임식도 하기 전에 메인뉴스 앵커와 시사 라디오 진행자를 교체했다. '뉴스9' 이소정 앵커, '뉴스광장' 김태욱·이윤정 앵커, '사사건건'의 이재석 앵커, '최강시사' 김기화 기자, '주진우 라이브' 진행자 주진우 기자 등이 전격적으로 하차했고, 시사프로그램 '더 라이브'는 아예 폐지됐다. 

혹자는 앵커나 진행자를 교체하는 게 뭐 그리 큰 대수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박민 사장 취임 이후 KBS 메인 뉴스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살펴보면, 이는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땡윤 뉴스, 그리고 북한 뉴스 증가
 

박민 사장 취임 이후 바뀐 KBS뉴스 ⓒ 임병도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9시 시보가 땡하고 울리면 '오늘 전두환 대통령은'이라는 앵커의 말로 그날 메인뉴스가 시작됐다. 이를 가리켜 '땡전뉴스'라고 했다. 

지난 14일 KBS 메인뉴스 프로그램인 '뉴스9'의 시작은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이날 KBS는 박민 사장이 대국민기자회견을 열고 불공정 편파보도에 대해 사과를 했다는 뉴스도 4번째 꼭지로 다뤘다. 윤 대통령에 관한 뉴스는 14일부터 20일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보도됐다. 지난달 중동 순방과 비교하면 뉴스 순서와 분량 모두 증가했다. 

지난 17일 사상 초유의 행정전산망 마비 사태가 벌어졌다. 이날 MBC·SBS·TV조선·JTBC·MBN·채널A는 메인뉴스로 보도했다. 그러나 유독 KBS만 윤석열 대통령의 APEC 정상회담을 톱 뉴스로 보도했다. KBS는 19일에는 윤 대통령의 영국 출국 소식을 5번째로 비중있게 보도했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사장이 바뀌니 땡윤뉴스가 등장했다"라며 "이게 뉴스냐, 이게 한국 공영방송 수준이냐"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또한 박민 사장 취임 이후 북한 관련 뉴스가 톱 뉴스로 보도되거나 연이어 나오고 있다. 11월 13일부터 16일까지 연이어 '북한 미사일 대응·위협'에 관한 뉴스가 보도됐다. 19일에는 '북한 정찰위성 발사 사실상 임박'을 시작으로 북한 컨테이너, 북한 화물열차 등 메인뉴스가 모두 북한 소식으로 채워졌다. 

보도지침? 대용산 사과?

<미디어스>는 지난 20일 김성진 KBS 보도본부 통합뉴스룸 주간(방송뉴스)이 이날 오전 편집회의에서 기존 국가 표기를 쓰지 말라고 권고했다고 보도했다. '한중일'은 '한일중'으로 '북미'는 '미북'으로 표기하라는 것이다. 또한 '한반도 비핵화' 표현도 자제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KBS 보도본부의 지침은 윤석열 정부의 기조를 따른 것이다. 지난해 말부터 외교부와 통일부는 '한일중'과 '미북'으로 표기하고, '한반도 비핵화' 표현을 '북한 비핵화'로 바꾸었다. 

지난 14일 박민 KBS 사장과 신임 본부장들이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윤창현 언론노조위원장은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KBS 내부의 저널리즘 문제가 있는 사례를 언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려면 내부의 평가 작업이 우선돼야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삭제됐다. 임명 이틀째인 박민 사장 체제에서, 막 내리꽂은 간부들이 이틀 만에 평가작업을 할 수 있었나"라며 "'대국민 사과'라고 하지만 사실상 '대용산 사과'를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수 정권마다 되풀이되는 언론장악... 그리고 분노하지 않는 기자들  
 

박근혜 정권 당시 기자회견, 당시 사전에 유출된 질문 순서와 똑같아 '사전 연출' 의혹이 벌어졌다. ⓒ KTV 유튜브 갈무리

 
이명박 정권에서는 YTN을 시작으로 MBC와 KBS 기자·PD들의 대규모 징계와 해고가 속출했다. 언론인들은 이 시기를 언론의 암흑기라고 불렀다. 2009년 한국의 '세계언론자유지수'는 69위로 2006년 31위보다 30단계 넘게 하락했다.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은 '국정원 MBC 장악 문건' 작성을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동관이었고, 방송통신위원장은 '방통대군'이라고 불리던 최시중이었다.

박근혜 정권에서는 '땡박뉴스'와 홍보성 보도가 주를 이루었고 비판 기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기자회견에서는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질문순서와 질문 내용이 사전에 유출된 내용과 똑같아 '사전 연출' 의혹도 받았다. 
 

2016년 11월 19일 박근혜 탄핵 촛불 집회 모습, 취재를 나온 방송사 차량 앞에는 시민들이 붙인 '이게 나랴냐'라는 손피켓이 붙어 있다. ⓒ 임병도

 
그래서일까? 2016~2017년 박근혜 탄핵 촛불 집회를 취재하는 방송사 카메라들은 수난을 당해야만 했다. 시민들은 기자와 카메라를 향해 야유를 보냈고, 이들은 시민들의 퇴출 요구에 자리를 떠나야만 했다. 

'세계언론자유지수'는 문재인 정부 들어서면서 41위까지 올랐다.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홍보성 보도는 줄고 비판 기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해직 기자들의 복직도 이루어졌으며, 당시 기자들이 쓰지 못할 얘기는 없었다.

보수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언론인에 대한 탄압과 언론 장악이 이루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을 방송통신위원장에 임명했다. 이명박 정권에서 방통위원장은 '방통대군'이라 불렀다는 점에서 언론장악을 위한 움직임이 재연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민들은 기자들에게 권력을 감시하고 정권에 맞서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싸우는 기자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언론 탄압에 분노하지 않는 기자들이 줄어들수록 시민들은 언론을 외면할 것이고 정권의 언론 장악은 지금보다 더 심해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독립언론 '아이엠피터뉴스'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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