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14 19:57최종 업데이트 23.11.14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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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 [기자말]

2024학년도 수능 대비 전국연합학력평가가 시행된 지난 7월 11일 서울 종로구 경복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교육부가 지난달 '2028 대학입학제도 개편 시안'을 발표하였다. 표지에는 "미래 사회를 대비하는"이라는 수식어가 떡하니 붙어있지만, "과거로 한참 퇴행하는" 대입안이다. 교육부는 객관식 오지선다형 위주의 내신 9등급제를 구시대적 평가 체제로 규정하면서 9등급제를 5등급제로 전환했다. 하지만 본질은 내신 상대평가 체제의 강력한 적용이다.

방안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은 선택과목을 없애고, 공통과목 중심으로 개편했다. 영어, 한국사, 제2외국어/한문, 도입 예정인 심화수학은 절대평가를, 국어, 수학, 사회·과학 탐구, 직업탐구는 상대평가를 적용한다.


이번 대입 시안은 수능의 과목선택 유불리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고, 변별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고교학점제와 2022 개정교육과정의 취지 퇴색, 상대평가에 따른 학교 현장의 황폐화와 학생들의 부담 가중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고교학점제 취지 살리지 못한 대입안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고교학점제는 기본적으로 진로와 수준, 관심 등을 고려하여 학생 스스로 과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그러나 2028 대학입학제도 개편 시안에 따라 국어에서 '화법과 언어·독서와 작문·문학'이, 수학에서 '대수·미적분·확률과 통계'가 수능 출제 과목으로 선정되면 사실상 학생들은 이 과목을 모두 들어야 한다.

여기에 추가로 심화수학(미적분Ⅱ, 기하)이 반영되면 이 과목도 모두 학교교육과정에 반영해야 한다. 수능 반영과목도 사회탐구와 과학탐구에서만 줄였을 뿐 다른 과목은 그대로이다. 개편 방안에 따라 모든 학생이 수능에서 응시하는 통합과학과 통합사회는 고1때 듣는 과목인데, 이후 2년간 수능 대비를 위해 문제집 반복풀이를 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내신 상대평가 체제가 가져올 폐해가 크다. 내신 상대평가가 적용되면 학생들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얼마나 수강을 하는지, 강의를 듣는 학생의 규모 등을 고려하게 된다. 우수한 학생들이 많이 몰리고, 강의 듣는 학생들이 적으면 좋은 등급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작은 학교에 있는 학교는 내신 산출의 어려움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수능의 영향력은 여전히 크다. 수능의 비중과 역할을 커지게 되면 학교에서는 수능 반영과목을 중시하게 되고, 수능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설계하게 된다. 9등급제에서 5등급제로 변화되면서 내신 변별력이 약화되었다고 판단하는 순간, 수능 최저등급을 상향할 가능성이 크고, 이는 특수목적고(특목고)와 자율형사립고(자사고)에 유리할 수 있다.

고교학점제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결국 수능 반영교과목을 줄여야 하고, 수능의 비중을 약화시켜야 하며, 내신은 절대평가로 전환해야 한다. 하지만 교육부의 발표 시안은 고교학점제의 철학과 정신을 거의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이렇게 되면 다양한 교육과정을 설계해야 할 명분을 학교는 잃어버린 셈이다.

교육과정에 비춰볼 때, 대입안은 앞뒤가 안 맞는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10월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시안 발표에 참석해 선택형 수능 폐지 및 과목 통합과 관련해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교육부가 발표한 2022 개정교육과정을 다시 살펴보자. 진로와 삶을 스스로 개척하는 자기주도적인 사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창의적인 사람, 인류 문화를 향유하고 발전시키는 교양 있는 사람, 배려와 나눔, 협력을 실천하는 더불어 사는 사람을 추구하는 인간상을 제시하였다.

교수·학습은 참여형 수업과 토의·토론학습, 소집단 협동 학습, 실험 실습, 체험과 탐구 활동을 하라고 제시한다. 2022 개정교육과정 총론에는 '선택'이라는 용어가 무려 54번이 나온다. 학교는 학생이 자신의 진로에 적합한 과목을 이수할 수 있도록 진로⋅학업 설계 지도와 연계하여 선택 과목에 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안내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일정 규모의 학생들은 선택과목 개설을 요청할 수 있고, 학교는 학생의 선택과목 이수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제시하였다. 개별학교의 희망과 여건을 반영하여 필요한 경우 공동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명시하였다. 수행평가를 내실화하고, 서술형과 논술형 평가의 비중 확대라든지 과정 평가를 강조하였다. 학생들은 지역사회 기관에서 이루어진 학교 밖 교육을 이수할 수 있다. 학교는 과목별 최소 성취 수준을 보장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이번 대입발표안은 앞뒤가 안맞는다. "미래" "역량" "자기주도" "융합" "과목 선택" 등 멋진 용어로 2022 개정교육과정을 구성하였지만, 공염불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고, 대입제도가 교육과정과 학교 현장을 흔들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들이 고교학점제라든지 2022 개정교육과정을 고려한 대입 제도가 어떻게 설계되어야 하는가를 몰랐을까? 대통령실에서 수능 킬러문항을 건드릴 때, 평가 체제의 전면적 혁신이 이루어지는가를 기대했는데, 역시나 큰 그림은 없었고 두더지 잡기 게임 양상에 그친 것이다.

이번 대입안을 통해 웃고, 우는 사람들
 

‘2028 대입제도 개편 시안 폐지, 전면 개정 촉구 기자회견’이 지난 10월 1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앞에서 전교조,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새로운 학교 네트워크 등 교육시민사회단체 주최로 열렸다. ⓒ 권우성


이미 시안은 발표되었다. 교육부도 체면이 있는데, 교육시민사회단체의 요구처럼 이제 와서 내신과 수능 절대평가의 전면 전환은 사실상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에 간곡히 부탁한다. 차라리 2022 개정교육과정과 고교학점제 전면 폐기를 선언하라. 누더기가 될 바에는 다시 교육과정에 관한 새로운 그림을 차기 정부와 함께 그리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것이 아니라면 공교육 정상화와 미래교육, 아이들의 인간적인 삶을 위하여 몇 가지 포석이라도 두기를 바란다.

우선 수능에서는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을 절대평가로 전환하자. 이 과목의 성격 자체가 깊이 있는 지식 습득보다는 기본 지식을 바탕으로 주제 탐구와 토의·토론, 프로젝트, 실험, 융합수업 등을 할 수 있도록 설계한 과목이다. 이런 과목 성격을 이해해야 한다. 교육부의 시안이 적용되면 고1 수업부터 파행이 일어난다. 오지선다형 문제풀이 수업으로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을 짓눌러서야 되겠는가?

또한, 선택과목이지만 심화수학 도입은 폐기하시라. 의대와 이공계에서 정말로 필요하다면 각 대학에서 심화 성격의 어떤 수학 과목들을 반드시 수강할 것을 요구하고, 지원 기준으로 설정하거나 과목별 가산점(가중치)을 주면 된다. 그렇게 따지면, 각 전공별로 심화과목에 대한 요구가 왜 없겠는가?

내신의 경우, 고1 공통과목은 상대평가 체제로 하되, 선택과목이 본격화되는 2-3학년에서 배우는 일반선택, 진로선택, 융합선택은 내신 절대평가로 전환해야 한다. 그것도 어렵다면 최소한 진로선택과 융합선택 과목만큼이라도 내신 절대평가로 전환하자.

우선 수능이나 내신을 상대평가로 무조건 해야 한다고 말하는 대학 주체들이 거의 없다는 점에 주목하자. 극히 일부 대학과 학과를 제외하고는 내신과 수능의 절대평가로도 학생 선발에 큰 문제가 없다. 지원 학생 수보다 대학 정원이 훨씬 적기 때문이다. 굳이 최상위 일부 학생들을 위해 자동차 레이싱을 적용할 이유가 없다.

운전면허증 시험을 앞으로 상대평가로 적용한다고 해보자. 어른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어른들도 상대평가 적용을 싫어하면서 유독 아이들에게는 왜 그토록 상대평가를 적용하는가? 대학교에서는 공부할 수 있는 학업역량 수준이 되는가를 판별하면 된다. 그런 시대가 이미 왔다. 전 세계적으로 사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낡은 상대평가의 유물이 '미래를 위한 시안'이 될 수는 없다.

내신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면 부풀리기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내신 부풀리기의 경우, 1등급 동점자수 정도 정보만 제공해 주어도 어느 정도 예방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성취 기준 중심으로 내신 평가가 진행될 수 있도록 내부 관리 시스템을 철저하게 구축하면 된다. 대학에서는 지원자의 수능과 내신 성적을 함께 보기 때문에 부풀리기 여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의문의 존재에 대해 문제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교육위원회이다. 교육부에서 시안을 발표한 이후에 국회에서도 더불어민주당 소속 강민정 의원이나 도종환 의원이 토론회를 진행하였다. 교원단체와 교육단체들은 이번 시안에 대해서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그럼에도 현 상황에서 국가교육위원회는 존재감이 거의 없다.

대입 시안에 대한 여론 수렴을 거쳐 결국 국가교육위원회가 결정을 해야 한다. 국가교육위원회는 기존의 관료조직과 무엇이 달라야 하는가? 충분한 여론 수렴을 해야 하며, 충분한 연구와 학습과 논의를 거쳐 정무적 판단이 아닌, 한국사회의 미래를 위해 어떤 대입안이 가장 바람직한가에 관해서 자주적·독립적으로·중립적으로, 전문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기존처럼 교육부의 방안을 형식적으로 추인할 생각이라면, 그냥 교육부 장관 자문위원회로 조직 명칭과 위상을 낮추어야 한다.

이번 대입안을 통해서 누가 웃고 있을까? 상대평가 체제는 곧 사교육 시장의 융성을 의미한다. 사교육 시장이 웃고 있다. 수능이 강화될수록 경제력을 가진 자들은 웃는다. 지방의 일반고는 수능 대비가 더욱 어렵다. 특목고와 자사고는 웃는다. 인적자본, 문화적 자본, 사회적 자본, 경제적 자본의 힘이 수능에서 알게 모르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신이든 수능이든 상대평가의 그림자가 공교육에 짙어질수록, 좋은 교육을 향한 열망은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지금 누가 울고 있을까? 오지선다형 문제풀이식 교육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교육과정-수업-평가를 꿈꾸었던 이들은 이제 다시 현장에서 침묵해야 한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조금이라도 숨통을 틔우기 위해 무엇인가를 시도 해보려고 했던 이들은 비아냥 거리는 소리를 들을 지도 모른다. "그것 보라고, 대한민국 교육은 절대 안 바뀐다고, 이럴 줄 알았다고, 그러니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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