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속> 스틸컷

영화 <보속> 스틸컷 ⓒ 인디그라운드


01.
<보속>
한국 / 2021 / 37분
감독: 양재준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굳게 믿으며 그동안의 죄를 뉘우치시고 사실대로 고백하십시오."

성아(강서희 분)는 고해성사를 하고 보속을 받는다. 보속은 가톨릭에서 고해를 한 후 신부가 내려주는 속죄를 위한 실천적인 과제를 말한다. 미워하는 사람의 지갑을 주웠지만 돌려주지 않은 탓이다. 그녀에게 주어진 보속은 묵주 기도와 함께 이틀 이상의 봉사와 선행을 베푸는 일이다. 하지만 자신의 죄를 씻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스스로의 과오를 지운다는 목적을 가진 행동과 순수한 의미의 봉사와 선행이 같은 모습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녀는 속죄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하지만 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들의 불편과 불만만 살뿐이다.

조금은 답답한 듯한 느낌의 4:3 비율의 좁은 화면, 인물들의 대화와 주변 소음만이 존재하는 건조한 분위기, 그리고 색채감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흑백 화면까지. 영화 <보속>은 첫 장면부터 자신을 바라보는 관객의 마음을 지그시 누른 채로 나아가는 작품이다. 직접 인물이 되어 그 심리를 오롯이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장치와 설정이 성아의 마음을 투영하고 있다. 보속을 위해 자신이 머물고 있는 재활원 공동체에 도움이 되고자 하지만 속죄도 할 수 없고 선행도 할 수 없이 표류하고 마는 한 사람의 내면이다.

극 중 성아는 안타까울 정도로 열심히다. 다 같이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는 먼저 나서 배식을 하고,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오래된 화장실 청소도 도맡아 한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 한 끼 식사를 대접하기도 하고 이제 막 처음 재활원에 들어온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자신을 찾아오라며 먼저 관심을 보인다. 마치 이 일이 아니면 자신의 존재가 부정이라도 당하는 듯한 태도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일까지 나서는 성아다.

문제는 그런 그녀의 행동에 모두가 하나같이 불편해하고 피해를 입는다는 것. 배식을 하는 도중에는 다른 사람의 옷 위에 음식물을 쏟고, 화장실 청소는 남자 신도들에게 불편을 끼치고 만다. 밥을 사러 나간 자리에서는 카드의 한도가 부족해 다른 사람이 대신 결제하는 상황이 일어나고, 타인을 배려하고자 했던 마음은 원하지 않는 관심이 되어 부담만 준다. 모두가 그녀의 잘못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그 시작점에 성아가 묘하게 놓여 있는 것도 사실. 하나 둘 사람들의 눈밖에 나기 시작한 뒤로는 모든 행동이 죄가 되는 듯한 굴레에 빠져버린 것처럼도 보인다.

"왜 우릴 계속 나쁜 사람을 만들어요!"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불편하지는 않을 텐데. 괜히 나서서 일을 벌이고 그때마다 실수를 하고 마지막에는 항상 미안하다고 머리를 조아리는 성아의 모습이 다른 신도들은 불편하기만 하다. 이제 영화는 묻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보속을 행하기 위해 선행을 하려는 사람과 다소 허술한 선행 앞에서 이를 힐난하고 나쁜 것으로 몰아가는 사람 중에서 더 악한 쪽은 어느 쪽인가'라고.

영화는 말미에 이르러 재활원을 나가 스스로의 죽음을 선택한 성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른 신도들이 자신의 보속을 불편해한다는 이야기와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는 불만을 알게 된 후다. 보통의 경우에 주인공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은 잔인한 표현의 생략을 위함이지만, 어쩐지 이 영화에서는 의미를 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배제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녀의 죽음이 오히려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된다는 듯한. 심지어 사무장(김수란 분)은 그녀의 죽음에 대해 어쩌겠냐는 미지근한 태도를 보인다.

다시 돌아가보자. 그녀는 아버지가 남긴 빚을 안고 자신의 생에 위태롭게 매달려 살고 있었다. 재활원에서 소개받는 일자리도 계속해서 그만둘 정도로 타인을 대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자신에게 주어진 보속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정말로 속죄를 위한 그녀의 행동 모두는 비난받고 배척되어야 할 정도로 악한 것이었을까. 이 순간에도 죄를 쌓으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속죄를 하려는 이의 간절하고도 연약한 마음은 발아래에 두어도 좋은 것일까. 영화의 죄와 속죄, 그 양단을 오가며 끊임없이 물음을 쏟아낸다.

더럽고 냄새나는 화장실 한편에 나연(박세재 분)이 서 있다. 아무도 하지 않으려던 청소, 성아의 자리다. 그리고 여기에는 하나의 보속이 더 있다.
 
 영화 <거리두기> 스틸컷

영화 <거리두기> 스틸컷 ⓒ 인디그라운드


02.
<거리두기>
한국 / 2021 / 19분
감독: 이유정

유진(정은선 분)은 공무원 면접시험을 준비하던 중 자가격리 대상자가 된다. 운이 좋지 않게도 밀접접촉자에 의한 감염. 격리는 면접 바로 전날에야 해제가 된다. 조금씩 오르기 시작하는 열과 시험을 앞둔 조급한 마음. 시험에 집중하기 위해 집까지 따로 얻어 나왔으니 결과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건 옆집에서 들려오는 성인 남성의 반복적인 욕설과 고성이다. 현관문을 열자 복도 끝에 어린아이 하나가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서 있다. 초췌한 얼굴이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복도식 구축 아파트의 모습과 함께 등장했던 차가운 복도 위 애처롭던 모습의 그 아이가 맞다.

코로나 시대에 사회적 거리 두기는 서로를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행동이었다. 바이러스의 전파로 인해 감염자가 늘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방법.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고 난 이후에는 정해진 공간에 격리되어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 하기도 했다. 이른바 자가격리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사회로부터 떨어진 채로 홀로 지내야 하는 일은 사실 쉽지 않았다. 이제 코로나 바이러스를 걱정하는 시대는 지나갔지만 사회 속에는 여전히 그때의 거리 두기가 필요해 보이는 상황들이 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지나간 시간 속의 '거리두기'를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며 현재에 놓인 문제와 연결하고자 한다.

이 영화에서 '거리두기'는 중의적 표현을 가진다. 코로나에 감염되어 타인과의 접촉을 피해야 하는 유진에게 주어지는 의무적인 행동이 하나. 남자의 폭력적인 언어 이후 복도로 내쫓기듯 나와야 했던 아이 서영(백송희 분)에게 필요한 일이 또 하나다. 다만 전자가 타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후자는 당사자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영화는 같지만 다른 두 '거리두기'를 한 장면에 함께 놓으며 원래대로라면 서로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어야 할 두 사람을 연결시킨다. 물론 이를 위해 유진은 자신에게 부여된 '거리두기'의 틀을 스스로 깨트리고 나와야 한다.

서영의 '거리두기'를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거리두기'를 위반하고자 하는 유진의 행동은 용감하다. 지금 이 선택이 자신이 목표로 하는 공무원이라는 꿈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하지만 아이를 집 안으로 들인 뒤에도 그녀의 머릿속에는 온통 어떻게 하면 서영을 도울 수 있을지 하는 것뿐이다. 격리된 유진을 위해 엄마가 현관문 앞에 두고 간 반찬통을 정신없이 뒤지던 아이. 코로나가 뭔지도 모르고 감기에 걸리면 약을 먹어야 한다며 감기약을 가져다주던 아이. 무기력한 표정으로 아빠를 신고해도 소용없다고 말하던 아이.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는 수많은 선택 앞에 놓이게 된다. 그 선택 가운데는 일부는 몰라도 전체를 책임지기엔 어려운 일도 있고, 자신의 것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도 있다. 또 어떤 선택은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 오랜 후회를 하게 되는 것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것 역시 그런 선택의 문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전부를 책임질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고, 언젠가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 타인의 현실을 제 삶 속에 들이기 위해 문을 여는 행동도 그런 선택 위에 있다.

"저 다시 집에 가야 해요? 안 가면 안 돼요? 신경 안 쓰이게 조용히 있을게요."

자신을 어딘가로 다시 보낼듯한 유진의 질문 몇 가지에 다급한 서영이 한 말이다.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거리를 두어야 하는 것일까.
덧붙이는 글 이 작품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설립한 인디그라운드(Indieground)의 '2022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리플레이' 상영작입니다. 그동안의 기획전을 통해 소개된 작품 외에 별도로 선정된 72편의 작품이 2023년 11월과 12월 두 달에 걸쳐 순차적으로 공개됩니다. 해당 영화는 인디그라운드 홈페이지를 통해 무료회원 가입 후 시청 가능합니다.
영화 독립영화 인디그라운드 보속 거리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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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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