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t your friends랑 같이 있으면 I am 신뢰에요~."

이 문장은 비문이다. 영어와 한국어가 묘하게 섞였지만, 결코 바이링구얼(이중 언어 사용자)의 화법은 아니다. 한 문장에 영어식 동사 'am'과 한국식 동사 '에요'가 함께 쓰이다니. 

이런 화법을 구사한 인물은 전청조. 미국 출생의 재벌 3세 행세를 하며 타인에게 보낸 메시지가 뉴스로 보도되자 이른바 '전청조체'가 탄생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SNS는 물론 기업 마케팅, 언론, 공공기관까지 전씨의 말투인 'I am OO에요'를 따라하고 있다. 그의 우스꽝스러운 말투가 유행하는 '밈(meme, 유행어)'이 된 상황. 
 
SNS를 뜨겁게 달군 '밈'
 
 '태계일주' 유튜브 채널 제목으로 등장한 일명 '전청조체'.

'태계일주' 유튜브 채널 제목으로 등장한 일명 '전청조체'. ⓒ 태계일주

 
'청조체'의 주인공인 전씨로부터 피해를 봤다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했다. 대출 중개 플랫폼을 통해 신용도와 금리를 조회하고 대출을 받도록 유도했다는 제보를 토대로 전청조씨는 사기 및 사기 미수 혐의로 고발됐다. 중국 사업 투자금 명목과 앱 개발 투자 명목 등으로 수천만 원을 탈취했다는 보도도 이어졌다. 이외에도 아동학대, 스토킹 등 여러 혐의로 입건되었다.

전씨는 교포 출신 재벌가 혼외자로 둔갑하여 지인들에게 접근하였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업가 주민에게 접근해 친분을 쌓는 과정에서 메세지를 보냈다. 한국말이 유창하지 않은 척 영어를 섞어 사용한 전씨의 화법이 26일 JTBC 보도로 공개된 이후 SNS를 뜨겁게 달군 '밈(meme)'이 되었다. 일명 '전청조체'가 그것이다.

시작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전씨의 화법을 흉내낸 'I am OO에요' 식의 댓글과 게시물이 넘쳐났다. SNS에서 인기를 끌자, 기업 마케팅에도 '청조체'가 등장했다. 위메프, 한국투자증권, 현대차증권, 상상인 증권 등이 'I am 신뢰에요'를 사용해 기업 홍보에 나섰다. 예능계도 '청조체' 유행에 합류했다. SBS <런닝맨>, MBC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3>등에서 각각 자막과 영상 제목으로 사용했다.

'청조체' 열풍에 마침내 공공기관도 나섰다. 충주시 공식 유튜브 채널은 고향사랑기부제를 홍보하기 위해 '청조체'와 함께 사기 행각을 위해 경호원을 대동했던 전씨의 모습을 따라했다. 파주시청 공식 트위터 계정은 운정호수공원 불꽃 축제 홍보를 위해 '청조체'를 사용하였다가 논란이 일자 삭제했다.

전씨의 말투가 유행이 된 상황을 두고 논쟁이 일고 있다. "유머는 유머로 여겨야 한다", "청조체가 전씨의 범죄 행각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전씨의 화법이 '밈(meme)'이 된 건 자연스러운 문화 현상" 등 긍정적인 시선이 있다. 반면, "범죄 행위가 가볍게 여겨지는 분위기다", "피해자가 있는 사건인데 2차 가해가 염려스럽다" 등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충주시 공식 유튜브 갈무리.

충주시 공식 유튜브 갈무리. ⓒ 충주시

 
 충주시 공식 유튜브 갈무리.

충주시 공식 유튜브 갈무리. ⓒ 충주시

 
범죄자의 말이 유행해도 될까?

넷플릭스 <애나 만들기>의 실제 인물이나 유럽 출신 상속녀 행세로 사기 행각을 벌인 안나 소로킨은 2019년 화려한 옷차림의 '법정 패션'으로 주목받았다. 2021년에는 법정 속 연쇄 살인마 니코 젠킨스의 표정이 화제였다. 누군가를 노려보는 듯한 그의 표정을 흉내 내는 틱톡 챌린지가 크게 유행하기도 했다. 

이때 염려되는 점은 2차 가해다. 유명해진 범죄자를 옹호하거나 그의 감형을 요구하는 사례는 빈번하다. 또한 엄연히 피해자를 만들어 낸 범죄자임에도 범죄 행각 외의 다른 이유로 사회적 관심을 받는 자체가 행위의 심각성을 저해한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전씨의 '청조체' 유행은 어떠한가. 이를 두고 '가해자를 조롱하는 것이니 문제 될 게 아니다', '전씨의 화법을 해학적으로 풀어낸 유행이다'로 보는 시선이 대다수다.

과연 '청조체'는 해학의 본기능을 하고 있을까. 이는 발화자의 정체성과 별도로, 하나의 재미 요소로 인식하는 것에 가깝다. '청조체'의 유행은 전씨가 저지른 범죄 행각에 대한 관심이나 사회 전반에서 발생하는 사기 사건에 대한 자정으로 이어지고 있지 않다.

'청조체'의 본질은 사기다. 타인을 속이기 위해 만들어 낸 말투, 그 끝에는 피해자가 있다. 시간이 갈수록 전씨가 행한 사기 행각은 더 많이 밝혀졌으며 그 규모 또한 커져가고 있다. 점점 더 많은 피해자가 나타날 때도 '청조체'를 둘러싼 재미는 여전할까.

물론 '청조체'를 사용하는 이들이 전씨를 옹호하거나 그의 범죄 행각을 가볍게 여긴다고 볼 순 없다. SNS의 시대에서 무엇이든 '밈(meme)'이 될 수 있다. 과거에는 연예인이 만든 유행어만 통했지만, 이제는 사용자가 직접 재밌는 '밈'을 만들 거나 유행에 참여할 수 있다. 그만큼 '밈(meme)'은 변화 속도가 빠르고, 수용자층도 다양하며, 흐름을 예측할 수 없는 유기체 같다.

어쩌면 '청조체' 논쟁은 앞으로 '밈(meme)'의 시대를 살아갈 우리에게 고민거리를 던져준 것일지 모른다. 무엇에 웃어야 하고 웃지 않아야 할지, 선택은 오직 대중의 몫이다. '청조체'는 그저 2023년의 우리가 무엇에 웃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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