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이 없었던 '빅3'에서 파격의 4순위까지, KBL에 새롭게 도전장을 던진 루키들은 프로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지난 21일 2023 KBL(남자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가 열렸다. 올해의 1순위의 영광은 예상대로 고려대 문정현(수원 KT)이 차지했다. KT는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며 원주 DB, 대구 한국가스공사, 서울 삼성와 함께 각각 16%의 추첨확률을 부여받았으나 1순위의 행운을 누리며 문정현을 얻는 데 성공했다.
 
문정현은 현재 대학 최고의 포워드로 꼽힌다. 젊은 나이에도 재능을 인정받아 대학생임에도 항저우 아시안게임 농구 국가대표팀에도 발탁됐다. 내외곽을 넘나드는 득점력과 영리한 농구지능, 준수한 파워가 강점이다. 이번 신인 드래프트에서 박무빈과 유기상과 함께 '빅3'로 분류되기는 했지만 사실상 문정현이 서열상 확고한 1순위라는 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었다.
 
KT는 최근 10여 년간 신인 드래프트에서 가장 많은 혜택을 누린 팀이다. 행운이 따랐던 팀이다. 2017년 드래프트에서 1,2순위를 동시에 획득하여 허훈과 양홍석(현 LG)을 얻은 것을 비롯하여 하윤기(2021년 1라운드 2순위), 박지원(2020년 1라운드 2순위), 이두원(2022년 1라운드 2순위) 등이 모두 신인드래프트 상위 지명권을 얻어 영입한 자원들이다. 문정현을 포함하여 허훈-양홍석-하윤기까지 KT에 지명된 선수 중 현재 국가대표만 4명이다.
 
KT는 지난 시즌 이후 양홍석이 LG로 떠났지만, 4년 연속 수비왕에 빛나는 문성곤을 FA로 영입하며 빈 자리를 메웠다. 또한 허훈이 시즌 도중 전역을 앞두고 있으며, 하윤기가 리그 정상급 빅맨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여기에 문정현까지 빠르게 팀전력에 녹아들어준다면 KT는 대권을 노릴 수 있는 전력을 구축하게 된다.
 
하지만 문정현이 과연 프로에서 얼마나 통할지는 아직 평가가 엇갈린다. 문정현이 다재다능한 올어라운드 플레이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그것은 비슷한 또래끼리 경쟁하는 대학 레벨에서의 이야기이고 프로에서는 다를 수 있다.
 
문정현은 대학에서 2번에서 4번까지 넘나들었다. 트라이아웃에서 측정된 문정현의 공식 신체스펙은 신장 194.2cm, 체중 96.8kg, 윙스팬 198cm이었다. KBL에서는 3번(스몰포워드)을 보기에 가장 적합한 체격이다.
 
그런데 정작 문정현의 실제 플레이스타일은 3.5번 혹은 4번(파워포워드)에 가깝다. KT에는 이미 모두 2미터가 넘는 국가대표 하윤기와 백업 이두원이라는 토종빅맨진을 갖추고 있어서 굳이 문정현을 언더사이즈 4번으로 활용할 필요가 없다. 문정현은 프로에서는 사실상 3번 역할을 더 해줘야하는데, KT는 이 자리에도 문성곤이라는 국가대표급 '3&D 스페셜리스트'가 버티고 있다.
 
문정현의 최대 약점은 3번을 보기에는 외곽 슈팅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활동량은 우수하지만 운동능력이나 스피드로 3번으로서는 썩 뛰어나다고 보기 어렵다. 이러한 애매함 때문에 송영진 KT 감독이 누가봐도 유력한 1순위였던 문정현의 발탁을 끝까지 고심했던 이유다.
 
2순위 박무빈(고려대)과 3순위 유기상(연세대)은 각각 울산 현대모비스와 창원 LG의 부름을 받았다. 박무빈은 공격형 가드로 슈팅과 돌파에 능하여 승부처에서의 해결능력이 뛰어나고 왼손잡이라는 특이점도 갖추고 있다. 유기상은 폭발력이 뛰어난 대학 최고의 슈터로 꼽힌다.
 
빅3가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다면 이번 드래프트 최대 화제의 중심은 단연 서울 삼성이 4순위로 조준희를 지명한 것이다. 캐나다 유학파 출신인 조준희는 놀랍게도 한국에서 고교-대학으로 이어지는 전문적인 농구 엘리트 코스를 거치지 않고 '일반인' 자격으로 응시하여 4순위로 프로구단에 지명되는 이변을 연출했다.
 
조준희는 미국 유망주 아카데미인 IMG 아카데미에서 농구를 익혔고, 드래프트 컴바인과 트라이아웃에서 호평을 받았다. 187CM로서 가드로서는 장신에 러닝 점프 기록이 91.20cm로 로 참가자중 1위에 오른 운동능력이 돋보였다. 충분히 프로 지명이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오기는 했지만  4순위 지명은 예상을 뛰어넘은 결과였다.
  
조준희의 깜짝 4순위와 삼성행은 긍정과 부정의 평가가 엇갈린다. 일반인 참가자의 입장에서는 남들처럼 일반적이고 정석적인 농구 코스를 거치지 않고도 프로의 꿈을 꿀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반면 한편으로는 전문적인 농구 코스를 거치지 않은 아마추어 일반인에게 평생 농구만 해온 다수의 엘리트 선수들이 더 낮은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은, 한국 학원농구의 현 주소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생각해볼만한 장면이다.
 
삼성은 최근 몇 년간 신인드래프트에서 차민석, 김진영, 이원석 등 신인드래프트 상위지명권으로 1-3순위급 유망주들을 대거 확보한 바 있다. 하지만 이들중 아직까지 기대만큼 성장한 선수는 찾기 드물다.
 
차민석은 역대 최악의 1순위 후보로 거론되고 있으며, 김진영은 음주운전 사고를 일으켜 더 주목을 받았다. 이원석이 그나마 준수한 장신 빅맨으로 성장 중이지만, 그보다 낮은 순위로 지명받았던 하윤기(수원 KT)나 이정현(고양 소노)은 벌써 국가대표급으로 성장했다. 몇 년째 선수를 보는 안목이나 육성능력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웠던 삼성의 신인드래프트 성적표 때문에 불안감이 남는 이유다.
 
최근 몇 년간 프로농구는 눈에 띄는 대형 신인들의 활약을 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2018-2019시즌 신인왕 변준형 정도를 마지막으로 신인이 두각을 나타내거나 주전을 차지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2020년과 2021년에는 2년 연속 2라운드 출신 신인왕(DB 김훈, SK 오재현)이 등장하기도 했고, 2022년 현대모비스 이우석은 최초로 2년차에 신인왕을 수상한 선수가 됐으며, 2023년에는 아시아쿼터로 영입한 필리핀의 론제이 아비리엔토스가 첫 외국인 신인왕에 등극했다.
 
올해 신인드래프트에서는 총 30명이 지원해 20명이 뽑히는 데 그치면서 2013년 22명 이후 가장 적은 선수가 지명됐다. 상위 빅3외에는 즉시 전력감으로 꼽힐만한 선수가 없다는 평가가 나왔고, 3라운드 이후로는 모든 프로구단들이 추가 지명을 포기했다. 그만큼 미래를 기대할만한 신인들의 인재풀이 위축되고 있는 한국농구의 현실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KBL 신인드래프트 문정현 조준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