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09 07:07최종 업데이트 23.08.09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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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손된 종이박스 ⓒ 구교형


혹시 냉동식품이나 음료수 박스를 주문했는데 여기저기 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은 물품을 받은 일이 있는가? 당연히 물건을 보낸 곳에서부터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요즘은 고객이 물건을 주문하면 빠르면 다음 날, 늦어도 이틀 후면 도착한다. 그러나 고객에게 도달하기까지는 꽤 여러 경로를 거친다.

중요한 것은 모든 경로마다 크고 작은 차량에 넣고 빼고 다시 옮기는 과정에서 접은 손수건 만 한 작고 가벼운 물건에서 요즘 유행하는 안마의자처럼 크고 무거운 물건까지 같이 쌓는다는 것이다. 포장지 한 장에 쌓인 얄팍한 서류부터 물기를 가득 머금은 냉동, 냉장 식품류까지 한데 모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차, 하차와 적치는 우리 기사와는 전혀 다른 소위 '까대기' 전문 알바에 의해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금가고 깨지고 이물질이 묻고 내용물이 튀어나와 따로 돌아다니기도 한다. 그런 물건들이 매일 아침 배송을 위해 대기하는 우리 기사들에게까지 도달하는 것이다.

장마철에는 비에 절어 흐물흐물해진 박스가 오기도 하고, 아이스박스가 깨져 국물이 흐르거나 아예 내용물이 덜렁덜렁해져 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국물이나 이물질이 택배 기사에게도 묻어 그날은 냄새와 함께 배달해야 한다.

그때부터 택배 기사는 봉합수술에 들어간다. 일단 상태를 보고 수술로도 살아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사진으로 증거를 남겨 파손 처리하고 발송지로 되돌려 보내거나 폐기한다. 그러나 웬만하면 수술을 거쳐 살려낸다. 단지 포장재만 파손된 경우는 내용물만 잘 넣어 테이핑하면 되지만, 내용물까지 손상된 경우가 적지 않다. 그걸 잘 파악하고 어떻게 할지 판단해야 한다.

포장재에 물기가 묻은 경우는 항상 예민해진다. 속 내용물이 터져서 국물이나 수분이 흘러나온 것인지, 아니면 얼었다가 녹아서 결로가 생긴 것인지 또는 다른 물건의 물기가 묻은 것인지, 심지어 빗물인지 분석에 들어간다. 냄새도 맡아본다. 이 정도면 형사가 따로 없다.

검토를 거쳐 봉합이나 수습이 필요한 경우 수술에 들어간다. 깔끔한 성격의 내 동료는 원래 박스 상태보다 더 견고할 만큼 탄탄하고 깨끗하게 테이핑을 한다. 나는 그렇게까지는 안 하고 형체만 보존한다. 그래서 택배기사는 자격증은 없지만, 물품 외과수술 전문의다.

택배는 모든 물품을 무작위로 쌓아 올려 배송하는 방식

난감한 경우도 있다. 포장재 자체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어 정상적으로 배송했는데, 내용물이 터져(깨져) 있다고 고객으로부터 전화 오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그럴 때는 황당하다. 물건마다 내용물을 흔들어 볼 수도 없고 우리가 속 내부상태까지 어찌 알겠는가?

내용물 전부가 다 파손된 경우가 아니면 자초지종을 들은 후 고객도 더는 다른 요구를 하지 않거나 업체 쪽에 재발송을 요구하여 끝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 사는 게 처음부터 완전한 매뉴얼이 있는 게 아니라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여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어느 음료수 업체에는 한마디 하고 싶다. 그 업체 음료수 종이박스는 물건 무게와 부피에 비해 포장재가 너무 얇고 접기 쉬우라고 점선까지 있어 늘 터질 듯하고 거의 깨져서 온다. 한번은 10개 정도가 한 번에 와서 계속 테이핑하고 쌓느라고 이중으로 힘들기도 했다. 업체의 포장 상태를 보면 마치 택배기사가 으레 재포장할 것을 기대하고 보낸 게 아닐까 의심될 만큼 허술하기 짝이 없다. 혹시 이 글을 본다면 개선해 주기 바란다.

때로는 발송회사에서 상자 표면에 주의문구를 써놓은 것도 있다. '던지지 마세요', '눕히지 마세요', '무거운 물건을 올리지 마세요', '안전하게 배송해 주세요'... 이런 문구를 볼 때 택배기사의 마음은 썩 좋지 못하다. 누구라도 여기서 하루만 물품 분류를 해보면 던지지 말라고 써놓은 물건도 던질 것이고, 눕히지 말라는 물건도 눕힐 것이다.
 

'눕히지 말아주세요!'라는 주의 문구가 적힌 상자 ⓒ 구교형


누구나 자기 물건이 소중히 다뤄지길 바라는 마음은 있을 것이고 가급적 잘 배송하고픈 마음은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택배라는 배송방식 자체가 한 기사가 다양한 물건을 한꺼번에 모아 여러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기에 무작위로 취급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정말 깨지는 물건만 아니면 굳이 그렇게 쓰지 않아도, 택배기사들은 물건을 보거나 들어만 봐도 던져도 되는지, 눕혀도 되는지 거의 안다. 그러나 정말 문제가 되지 않으면 쌓는 과정에서 눕히지 말라 써도 눕히고, 던지지 말라 써도 던지게 된다는 것을 솔직히 말씀드린다.

어떤 분은 주문한 물건이 녹으면 안 되니 특별히 빨리 배송해 달라고 전화를 주시기도 하지만 여름철 배송의 ⅓~¼은 냉동식품이기에 그렇게 분류하기 어렵다고 말씀드린다. 더구나 택배차는 냉동차가 아니기에 잘 냉동한 물건도 녹고 물이 흐르고 시간이 갈수록 상태가 좋지 않을 것이다. 특별한 취급을 원한다면 택배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

가장 마음 상하는 것은 '형님! 이게 오늘 살아서 갈 수 있을까요?'라는 문구와 함께 식물을 보내는 것이다. 애교로 웃으라고 쓴 문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우리가 취급을 잘못해 문제가 생기는 것처럼 비꼬는 것 같아 같이 웃어주기는 쉽지 않다.

운전하다 보면 '승질 더러운 아이가 타고 있어요', '소중한 내 새끼가 타고 있다'는 식의 경고 문구를 볼 때 느끼는 반발심과 비슷하다. 드리고 싶은 말은 소중한 물품은 택배로 보내지 말아 주십사 하는 것이다. 문구를 적을 수는 있지만 문구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택배는 모든 물품을 정말 무작위로 쌓아 올려 배송하는 방식이다.

시스템도, 의식도 변해가는 것을 느끼며

기사도 사람이기에 가끔 잘못 배송한다. 잘못 배송하면 어떻게 찾을까? 물건이 없다는 연락을 받으면 초보 때는 머리만 하얘질 뿐, 아무 생각도 안 난다. 고객이나 고객센터의 독촉 전화를 받으며 입만 바짝 탈뿐 우물쭈물 어쩔 줄 모른다. 그러나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조금만 기억을 되짚어 보거나 추적해 보면 언제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가닥이 잡혀 별로 걱정도 안 한다.

물건을 정리하며 동 호수나 비슷한 건물 이름을 잘못 적었을 때는 의심나는 곳을 찾아가면 영락없이 거기 있다. 배송하기에는 아파트가 쉽지만 잘못 배송했을 경우 물건을 찾기엔 오히려 동네 일반주택이 훨씬 쉽다. 아파트나 건물은 이름과 동 호수만 보고 기계적으로 놓고 오는 것이라 숫자 하나만 틀려도 엉뚱한 데 놓고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일반주택은 집 모양새, 위치, 가옥구조 등이 다 달라 경력이 쌓이면 오늘, 어제, 그제 그곳을 갔는지 안 갔는지, 어디에 두었는지 거의 다 기억난다. 그래서 못 찾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리고 이제는 웬만한 건물은 CCTV가 설치되어 있고, 그렇지 않아도 남의 물건을 가져가는 도난 사고를 요즘에는 거의 보기 힘들다. 참, 놀라운 성숙함이다.

물론 그래도 끝까지 못 찾는 경우가 없지 않다. 그럴 경우를 대비해 모든 기사는 계약과 더불어 차 사고와 물품 분실에 대비한 보험을 자동으로 들고 있다. 그래서 물품 배상을 할 경우에도 가격의 일부만 부담하게 된다. 다행한 일이다.

여러모로 택배기사가 배송에만 전념할 수 있게 시스템도, 의식도 변해가는 것을 느끼며 감사하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 개선하고 발전해야 할 다양한 영역들이 있지만, 우리 국민의 민도와 시민의 성숙함을 보면 가능성이 더 많다고 하겠다. 무더위에 모두의 평안과 건강을 기원한다.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잠언 22장 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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