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08 16:25최종 업데이트 23.08.08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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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사슬 퍼포먼스하는 이주노동자들 2023년 4월 30일 오후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열린 세계노동절 맞이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쇠사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근 <US뉴스앤월드리포트>가 보고한 "인종차별적 국가 순위"가 필자의 관심을 끌었다. 대한민국은 세계 79개의 국가들 중 9위를 차지했다. 세계에서 9번째로 인종차별적인 나라라는 결과였다. 조사의 질문 중 하나가 "당신 동네에 외국인 이웃이 사는것을 원하십니까"였는데 한국인 응답자 중 29.6%가 "원치 않는다"라고 대답했다. OECD 국가들 중 상위 10개국에 등장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했고, 상대적으로 유사한 배타성을 띨 것 같은 이웃 국가 일본조차 23위를 기록했다.

외국 통계의 형평성이 의심된다면 국내 조사도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0년 '한국사회의 인종차별 실태'를 발표했는데 설문에 참가한 이주민 전체 응답자 중 68.4%가 "한국 사회 내 교육, 일터, 일상생활 등 여러 분야에서 인종, 민족, 피부색, 출신국가, 언어 등으로 인한 차별이 존재한다"고 답했다. 아이러니하게 대한민국은 OECD 회원국 가운데 일본과 함께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은 두 나라다.


미국의 저명한 멕시코계 기자인 호르헤 라모스는 미국의 이민자들을 언급하며 "가장 훌륭한 국가들은 그들이 자국의 가장 약한 주민들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의해 정의된다"라는 말을 남겼다. 2023년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한국의 K팝과 영화, 드라마가 세계 시장을 석권하는 현상에 우리는 열광하지만 막상 세계시민들이(특히 우리보다 덜 잘살고 덜 '하얀' 이들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으로 이주하는 현상에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다문화를 강조하면서도 "값싼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이라는 발상의 비인간성, 비민주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세계에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견한다고 자부하는 한국 교회들은 정작 자신의 동네에 선교지에서 마주칠 듯한 이들이 들어와 이웃이 되는 것은 반대한다.

혹자는 한반도 근대사는 다양성에 대한 포용보다는 민족주의적 교육과 외세에 대한 두려움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특수성이 존재했다고 말한다. 일제 강점기 때는 외부로부터 우리 문화와 정체성을 수호하기 위해 투쟁과 희생이 불가피했고, 분단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반공주의와 경제개발의 명분으로 국가에 대한 애국심과 충성심이 요구되었다. 민주화 이후 IMF를 지나며 민족주의적 성향은 희미해졌을지언정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 물질 만능주의와 초개인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며 타자와의 공존이라는 화두는 뒷전으로 물러났다. 따라서 우리와 전혀 다른 배경에서 출현한 타자들의 존재에 위협과 불편함을 느낀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주장일 수도 있겠다.

소수자였던 기억으로 다른 소수자 인식
 

2021년 3월 19일 미국 LA 코리아타운에서 열린 자동차 캐러밴 행진에 앞서 아시아계 이주민들이 “아시아인들을 증오하지 말라”는 팻말을 들고 있다. ⓒ 셔터스톡

 
그러나 문제는 과거가 아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인종차별, 혹은 다양한 타자들과의 공존이라는 담론을 이끌어내려는 지성인들의 의지와 창조적 시도들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지을 것이다. 필자는 이런 담론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하나의 창조적 서사가 바로 '디아스포라'라는 존재 혹은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디아스포라란 쉽게 말하면 재외동포다. 과거에는 팔레스타인 외의 지역을 유랑하던 유대인들을 지칭했지만 이제는 자신의 모국 밖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뜻한다. 그러나 필자는 저 개념을 단순히 '재외동포'라는 지리학적 용어가 아니라 조금 더 심오한 도덕적, 철학적, 인문학적 개념으로 승화시켜보고 싶다. 즉, 디아스포라는 해외에 사는 한인들, 혹은 한국에 사는 이주민들이지만 더 나아가 "다양한 타자들 속에서 작동하는 이방인적, 혼합적, 소수자적, 비주류적 사유방식"이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는 이런 디아스포라적 사유방식의 경험 자산이 이미 풍부하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5천 만 인구의 15%에 달하는 750만 명 이상의 재외동포들이 세계 전역에 흩어져 살아간다. 그들은 어떤 면에서 모두 소수자이자 이방인이며 이주민, 이민자 혹은 이민자 후손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소수자성, 이방인성으로 인해 자신이 속한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성을 "자연스럽고" 동시에 "민감하게" 인식하게 된다. 여기서 자연스러움은 타자의 다양성에 대한 무저항적, 무조건적 수용을 뜻하며 민감함이란 타자의 주체성과 존엄성을 인지하는 감수성이다.

디아스포라들의 이런 사유방식은 저절로 얻어지지 않았다. 정도와 성격은 다르지만 각 디아스포라들은 편견과 차별, 때로는 혐오의 대상이 된 역사 위에 존재하고 있다.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한 고려인, 중국 문화혁명 시 숙청 위협을 느끼던 조선족, 일본 극우의 혐한 캠페인에 고통받는 재일교포, 아시안 혐오 범죄로 피해를 입는 재미 한인, 세계 전역으로 '수출'되어 정체성 혼란을 겪는 수십 만의 입양아 등은 단 한 번도 자신이 거주하는 곳에서 적어도 인종·민족적으로 온전한 주인으로 살아간 적이 없다.

삶의 전 영역에서 차별이 존재한다고 답한 한국 내 이주민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강남순 교수에 의하면 이렇게 사회에서 배제되는 경험을 한 이들과 공동체는 이미 자신이 소수자로서, 약자가 되었던 기억을 통해 다른 소수자를 인식할 수 있는 역량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디아스포라들은 획일화되고 배타적인 사회적 인식과 구조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존재이다. 역설적이다. 가장 낯설고 소외된 이들의 존재를 통해 사회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계기가 형성된다는 것이. 그런 의미에서 호르헤 라모스 기자의 말은 다음과 같이 새롭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디아스포라와 가장 힘없는 주민들의 존재와 사유방식을 통해, 각 나라는 위대해질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디아스포라들이 우리의 희망이다."
 

전후석 / 영화감독 ⓒ 전후석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전후석은 뉴욕에 거주하는 재미 한인 영화감독입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헤로니모>와 <초선>을 연출했고 <당신의 수식어>라는 저서가 있습니다. 세 창작물 모두 재외동포들의 이야기와 디아스포라적 사유라는 주제의식을 담고 있습니다. 스토리텔러가 되기 전에는 뉴욕 변호사로도 활동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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