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19 14:06최종 업데이트 23.07.19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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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19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이승만 초대 대통령 서거 58주기 추모식에 참석하여 황교안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장과 함께 헌화 및 분향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계속해서 역사를 거스르고 있다. 1965년 7월 19일 사망한 이승만의 58주기 추모식을 예고한 국가보훈부의 18일자 보도자료는 그의 죄과를 생략한 채 이승만 일대기를 구성했다.


첫 문장에서 "이승만 초대 대통령 서거 58주기 추모식이 19일(수) 오전 11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사)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회장 황교안) 주관으로 개최된다"고 밝힌 이 보도자료는 이승만의 일생과 독립운동을 상세히 서술하다가 본질을 벗어나는 문장으로 일대기 서술을 마친다.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한 6·25 전쟁에서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하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는 등 정치·경제·교육·군사 등 여러 분야에서 오늘날의 대한민국 토대를 마련하였다."

1925년에 임시정부는 "국정을 방해하고 국헌을 부인하는 자를 하루라도 국가원수의 직에 두는 것은 대업 진행을 기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임시대통령 이승만을 탄핵했다. 임시정부가 말하는 국정과 대업은 독립운동을 가리킨다.

이승만은 바로 독립운동을 방해한 죄목으로 탄핵당했다. 국가보훈부 보도자료는 그런 언급도 없이 이승만을 훌륭한 독립운동가로 칭송하다가 "오늘날의 대한민국 토대를 마련하였다"는 한마디로 그의 일생을 평가했다.

이승만은 민간인 학살, 친일청산 방해, 장기독재, 부정선거 등을 자행하다가 1960년 4·19혁명을 자초했다. 그는 헌법 전문에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문구가 들어가게 만든 장본인이다.

우리 헌법은 그의 생을 '불의'라는 한마디로 압축했다. 보훈부는 이를 무시하고 그의 인생이 대한민국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극찬했다. 대한민국의 토대가 불의에 기초했다는 말이 되는 셈이다.

이승만의 죄과에 대한 언급도 없이 일대기를 기술한 보훈부 보도자료가 연상시키는 것이 있다. 1960년에 대통령직에서 끌어내려질 당시나, 하와이에서 망명 생활을 할 당시에 이승만이 보여준 반성 없는 태도를 떠올리게 만든다.

천주교가 자신 몰아내려고 했다는 이승만
 

1995년 2월 3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미국 외무부 문서의 내용. 4.19 혁명 당시 이승만은 "미국의 도움만 있으면 상황은 안정된다"라고 주장했다.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50세였던 1925년에 대한민국 임시 대통령직에서 탄핵당한 이승만은 35년 만인 1960년에 또다시 대통령직에서 쫓겨났다. 한 번도 당하기 힘든 일을 두 번씩이나 경험했으면서도, 85세의 이승만은 '내가 잘못 살았다'라는 인식을 표시하지 않았다. 도리어 남 탓을 할 뿐이었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 1월 16일에 외무부가 공개한 문서 중에 이승만 대통령과 월터 매카너기 주한미국대사의 1960년 4월 21일 자 면담 내용이 있다. 문서 공개 당일에 면담의 주요 부분을 소개한 <한겨레> 4면 우상단 기사에 따르면, 이승만은 야당 지도자 장면(1899~1966)과 그의 신학교 제자인 노기남(1902~1984)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을 거명하면서 4월 혁명의 발생 원인을 이렇게 진단했다.

"4·19는 장면 한 사람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다. 노 주교와 장면이 가톨릭과 교회를 이용해 대한민국 헌법을 어기고 권력을 잡기 위한 정치적 목적(에)서 부추긴 것이다. 워싱턴에 퍼져 있는 한국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장면이 학생들을 선동해 문제를 일으키려 했다는 증거를 대사에게 전달하겠다."

1948년 정부 수립 당시만 해도 이승만과 장면·노기남의 관계는 좋았다. 하지만 1946년에 천주교 서울교구에 의해 창간된 <경향신문>이 1952년에 이승만을 비판하면서부터 천주교에 대한 이승만의 시선이 달라졌다.

이승만 정권은 한국전쟁 중에 차기 대선을 위해 개헌을 강행했다(발췌개헌). 이것은 <경향신문>이 야당지로 변모하는 계기가 됐다. 1959년 4월 30일에 <경향신문> 폐간 명령이 내려진 일은 천주교와 <경향신문>에 대한 이승만의 인식을 반영하는 사건이었다.

이승만은 장면과 노기남의 관계를 구실로 4·19를 국민적 저항이 아닌 가톨릭의 음모로 몰아세웠다. 1995년 2월 3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위 외교부 문서의 또 다른 내용에 따르면, 이승만은 미국대사에게 "미국의 도움만 있으면 상황은 안정됩니다"라며 '가톨릭의 음모'에 대한 자신감을 표시했다.

장면과 가톨릭이 벌인 일이며 미국만 도와주면 종료될 일이라는 발언은 이승만이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정말로 천주교가 일으켰다고 믿었든 아니든, 자신의 허물을 돌아보지 않는 그의 면모가 드러난다. 세상이 다 아는 이승만의 죄과들을 모조리 빼놓은 채 그의 일대기를 구성한 보훈부 보도자료는 그런 이승만의 특성을 생각나게 만든다.

이승만이 자기성찰이 부족한 인물이었다는 점은 1960년 5월 29일 아침에 김포공항을 통해 몰래 출국한 그가 그날 하와이에서 기자들에게 던진 한마디에서도 배어 나온다. 국민적 분노를 뒤로 한 채 한국을 빠져나온 그가 현지 기자들에게 건넨 것은 '휴양차 왔다'는 발언이다. 1960년 5월 30일 자 <조선일보> 1면 중하단에 실린 호놀룰루발 미국 UPI통신 기사는 이렇게 전했다.

"이승만 박사는 29일 당지에 도착하여 휴양차 이곳에 온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공항에서 기자들에게 그의 건강이 허용하는 대로 빨리 한국으로 돌아갈 것을 기대한다고 말하였다."

망명 당일에 보도된 <경향신문> 3면 좌하단에 따르면, 이승만이 이른 아침에 도망갔다는 소식을 접한 국민들은 "아주 도망해 버렸군"(현역 육군 장교), "비행기도 부끄럽겠다"(대학생) 등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 같은 반응은 '휴양차 왔다'며 아무것도 아닌 듯이 말하는 이승만의 태도와 대비된다.

하와이 망명 이듬해에 AP통신이 하와이 현지 언론을 인용해 보도한 내용이 있다. 이 보도가 1961년 3월 14일 자 <동아일보> '이승만 씨의 애견 극비리 하와이 망명'에 실렸다.

이 기사는 "전 한국 대통령 이승만 씨는 두 돌 된 일산(日産) 스파니엘 개를 한국으로부터 당지에 가져왔다고 <호놀룰루 스타 부레틴>지는 보도하였다"라며 "동지(同誌)는 이 개가 국립동물검역소에 갇혀 있으며, 이승만 씨는 이 갈색 무늬의 흰 개를 거의 매일 찾아가고 있다고 말하였다"라고 전했다. 그런 뒤 "호놀룰루에 있는 이승만의 일(一) 친구는 그 개를 검역소에 데려갔다고 말하였다"라고 보도했다.

이승만이 한국에서 몰래 빼낸 반려견이 미국 동물검역소에 있으며 이런 사실을 그의 친구가 확인해 줬다는 AP통신 보도에 대해 서울시경찰국은 "전 해운공사 사장 정운수씨 집에서 아무 일 없이 자라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보도를 부인했다. 그렇지만, 이승만이 거의 매일 동물검역소를 방문해 개를 만나보고 있으며 이승만의 친구가 '한국에서 온 개'라고 확인해 준 사실을 뒤엎을 만한 자료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죄스러운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다면 이런 보도가 쉽게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세상을 상대로 죄를 짓고도 '휴양차 왔다'며 여유를 보이는 인물이었기에, 반려견에 대한 의리는 지켜도 국민들에 대한 의리는 지키지 않는 인물로 비치게 만드는 보도가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이승만에 대한 추앙, 위험하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19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이승만 초대 대통령 서거 58주기 추모식에 참석하여 추모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는 이승만을 앞세워 대한민국의 가치관을 바꿔놓으려 한다. 정부가 이승만을 좋아하고 안 하고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태도가 향후 국민들에 대한 윤 정권의 태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린아이가 연쇄살인마나 사기꾼을 존경한다면, 어른들은 '나중에 커서 뭐가 될까'를 상상하게 된다. 그런 가치관을 가진 아이가 훗날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게 될지는 어느 정도 예견된다.

이승만은 독립운동과 친일청산을 방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 국민들을 살상하고 탄압했다. 그리고 국민들을 기만하는 부정선거를 감행했다. 그래서 헌법 전문에 '불의'라는 이름으로 새겨졌다.

윤석열 정부가 그런 이승만을 존경하고 추앙하는 모습은 훗날 국민과 정부가 갈등할 때 윤 정부가 나쁜 유혹에 빠지게 되지 않을까를 상상하게 만든다. 보훈부의 18일 자 보도자료는 윤 정부의 위험한 사고방식을 여실히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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