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10 14:28최종 업데이트 23.07.10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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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23일 정경두 국방부장관이 서울 국방부 육군회관에서 열린 대체역 심사위원 임명 및 위촉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체역 심사위원회가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 기간을 현행 36개월에서 27개월로 단축하고 복무 분야 확대를 골자로 한 개선안을 낸 것이 최근 화제가 되고 있다. 

대체역 심사위가 개선안을 병무청에 전달한 것은 지난 4월 28일이다. 최근 1기 심사위원회 임기 종료 시점에서 나온 인터뷰 기사 때문에 개선안이 나온 지 두어 달 지난 뒤에야 새삼 이슈가 된 것이다. 그동안 대체복무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으니 무척 반가운 일이다. 


복무기간 단축이나 복무영역 확대와 같은 이야기는 대체복무제 도입 전부터 꾸준하게 이야기되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기 직전인 2017년 7월 4개 시민단체(전쟁없는세상,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참여연대)가 함께 당시 대통령직인수위 역할을 했던 국정자문위에 제출한 시민사회 제안서나 헌법재판소의 병역법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 직후인 2018년 7월 19일 5개 시민단체(전쟁없는세상,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참여연대, 군인권센터)가 발표한 대체복무제 시민사회안은 복무기간이 군복무에 비해 과도하게 길면 안 된다는 점과 복무 분야가 공적인 영역에서 다양하게 제공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대체복무제도가 시작된 2020년 10월 이후에도 이러한 지적은 꾸준히 이어졌다. 국제사회도 한국 정부에 대체복무제 개선을 요구했는데 특히 지난 1월 발표된 4차 유엔 국가별인권정례검토(UPR)의 권고에서 여러 나라가 복무기간 단축(캐나다, 파나마, 호주, 크로아티아 등)과 복무 분야 확대(캐나다, 크로아티아 등)를 구체적으로 명시했다(이 밖에도 민간 성격의 대체복무가 제공되어야 하고, 대체복무제가 총체적으로 차별적이거나 처벌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권고가 담겼다).

과거부터 이야기된 것이라도 하더라도 이번 대체역 심사위 개선안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대체역법에 명시된 권한과 책임에 따라 대체복무를 신청한 병역거부자를 심사하고, 대체역 제도 개선에 관한 연구·조사 및 제안을 수행해야 하는 국가기관의 공식적인 입장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과거부터 이어져 온 시민사회와 국제사회의 요구사항들이 인권 기준을 바탕으로 예상 가능한 우려와 먼저 이 제도를 시행한 국가들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만든 안이라면, 대체역 심사위 개선안은 그에 더해 실제로 제도를 운용해 본 결과를 바탕으로 만든 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권 기준이 지켜지지 않아 실제로 발생한 인권침해와 문제점들을 포괄하고 반영했다는 점에서 이번 대체역 심사위 개선안은 심사 과정과 대체복무제도 자체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대체복무제도 개선의 쟁점들

대체역 심사위 개선안은 크게 ▲ 대체역 복무 기간을 줄이는 것 ▲ 복무 분야를 확대하는 것 ▲ 합숙 복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명시적으로 대체복무제의 기간을 정해놓은 기준은 없다. 다만 유엔자유권위원회와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대체복무가 군복무보다 긴 경우 그에 합당하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에 근거"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한국 정부가 발표한 대체복무가 군복무보다 2배나 긴 36개월이어야 하는 이유는 전혀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 정부는 ▲ 공중보건의사 등 다른 대체복무자(34~36개월)의 복무기간 ▲ 병역기피수단으로의 악용 가능성 ▲ 자체 여론조사 결과를 결정 근거로 제시했다.

현역 군인과 형평성을 맞추려 했다면 출퇴근 복무를 하며 높은 급여를 받는 공중보건의가 아니라 대체복무요원과 똑같은 급여를 받는 육군 현역 군인(18개월 복무)과 기간을 맞춰야 했다.

병역기피 수단으로 이용될 거라는 우려는 실제 3년을 운영해 본 결과 지나친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3년 동안 대체복무를 신청해 심사 절차가 마무리된 2986명 중 기각 결정이 난 사람은 6명밖에 되지 않고, 대부분 심사를 통과했다.

대체복무를 신청한 이들의 숫자나 심사를 통과한 이들의 숫자가 과거 병역거부를 하고 수감된 이들의 숫자와 대동소이한 것을 보면 걱정해야 할 것은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도하게 징벌적이어서 병역거부자들이 이를 선택하지 못해 양심의 자유를 침해당할 가능성이다. 

그리고 당시 2배의 복무기간 대답률이 가장 높았다는 여론조사 또한 소수자 인권을 여론조사로 결정한다는 근본적인 비판점 외에도, 대체복무와 병역거부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고 이 제도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했다는 점 등 부실한 근거였다. 

대체역 심사위에서 개선안으로 낸 27개월은 기실 한국 정부가 국제사회에 겨우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최소한이다. 명시적인 대체복무 기간에 대한 기준은 없지만, 일반적으로 유엔 자유권위원회나 유럽의회 등 국제기구에서는 현역 군인 복무기간보다 1.5배가 넘는 경우는 인권침해라는 점을 지적해 왔다. 27개월 대체복무는 국제사회의 비난과 권고를 피하기 위한 최소치일 뿐이다.

도입 효과 누리지 못하는 비효율적인 운영
 

이기식 병무청장이 5일 서울 용산구 육군회관에서 열린 국방부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병무청


하지만 이마저도 국방부나 병무청은 개선에 미온적이다. 지난 5일 이기식 병무청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대체역 복무 기간 문제는 "100건이 넘는 헌법소원이 제기돼 있다"며 "헌재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판단을 보류하고 있으며, 헌재의 결정 방향과 일치시켜 나가도록 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신중함을 가장한 직무 유기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2018년 병역법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대체복무의 기간이나 고역의 정도가 과도해 양심적 병역거부자라도 도저히 이를 선택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대체복무제를 유명무실하게 하거나 징벌로 기능하게 할 수 있으며, 또다른 기본권 침해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 방향과 불일치하는 제도를 지금껏 그대로 두고선 또 다시 헌재 결정을 기다리겠다는 것은 책임감 있는 공직자의 태도가 아니다. 

복무 분야 개선을 살펴보자면 현재 병역거부자들은 교정시설에서만 대체복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이는 그 자체로 심각한 인권침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굳이 인권적인 관점이 아니더라도 사회적으로 대체복무제 도입의 효과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비효율적인 운영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과거 군사적 위협이 주된 안보 위협이었던 시대에서 점차 자연 재난이나 사회적 재난, 혹은 의료나 복지의 공백 같은 국가 시스템 부재가 새로운 안보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는 세상으로 변해왔는데, 그러한 새로운 안보 위협에 국가가 효과적으로, 기동성 있게 대응할 수 있는 역할을 대체복무가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대체복무를 교정시설 업무로만 국한했기 때문에 대체복무제 도입이 실제로 한국 사회의 공공성을 강화하거나,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유익한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고 있다.  

복무분야를 교정시설로만 한정한 까닭은 병역거부자들의 복무 형태를 100% 합숙복무로만 규정했기 때문이다. 이 또한 현역 군인이 합숙복무를 하기 때문에 형평성에 맞추기 위해 대체복무는 무조건 합숙으로 정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현역 군인들은 다양한 이유나 개인적인 사정에 따라 출퇴근 복무를 하기도 하고, 신체검사에서 4급을 받은 사회복무요원 또한 출퇴근 복무를 한다.

하지만 병역거부자들은 현역 복무가 어렵다고 판단되어 4급을 받더라도 1급을 받은 병역거부자와 똑같은 생활환경에서 똑같은 노동 강도로 일을 해야만 한다. 주기적으로 병원의 관리를 받아야 하는 경우, 교정시설이 외진 곳에 있고 교정시설 내 의료 시스템이 충분하지 않아 그 피해를 고스란히 병역거부자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대체역 심사위가 예외적인 경우에는 출퇴근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바꾸자고 개선안을 제안한 것은 실제로 피해를 입고 있는 대체복무 요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불행 경쟁에서 벗어나 인권 보호를 기준으로 개선해야 

많은 법안이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하다 보면 국회에서 누더기가 되어 통과되는 경우가 많다. 대체복무 법안도 마찬가지다. 특히 이 법안은 현역군인의 박탈감을 해소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불합리한 방식으로 형평성에만 신경을 썼다.

복무 기간은 가장 긴 공중보건의 등에 맞추고, 임금은 가장 적게 받는 현역 군인에 맞추는 식이다. 이러다 보니 형평성을 강조만 했지 차별적이고 징벌적인  제도가 되어 버렸다. 

군복무를 하는 젊은이도, 대체복무를 하는 병역거부자도 한국 사회의 소중한 시민들이다. 군복무와 대체복무를 병렬적으로 비교해 누가 더 열악한지 불행 경쟁을 하고 하향평준화 해서는 안 된다. 

이 글에서 다루지는 않았지만, 대체역 심사위원들의 인터뷰를 보면 심사 과정 자체의 문제점도 상당하다. 양심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제도인데 심사를 핑계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신청인을 괴롭히는 일이 부지기수로 일어나는 모양이다. 

결국 대체복무제도 개선에서 중요한 것은 이 제도가 인권 보호를 목적으로 도입되었다는 사실을 되새기는 것이다. 3년 가까이 시행하면서 발견된 여러 문제점을 개선하는 데, 가장 우선 고려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제도의 존재의 이유인 양심의 자유 보호, 즉 인권 보호다. 병역거부자들의 양심의 자유를 보호하고 있지 못하다면 대체복무제도는 목적 자체를 상실한 실패한 제도가 되는 것이다. 

대체역 심사위 개선안은 인권 보호라는 큰 방향에 대체로 부합한다. 물론 좀 더 많은 변화를 바랄 수도 있겠지만 대체역 심사위가 국가기관이고 대체복무제도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우호적이지 않은 국방부나 병무청을 설득해야 하는 만큼 현실 가능한 타협점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아무쪼록 국방부와 병무청이 책임감 있는 태도로 대체역 심사위 개선안을 검토하고 실행해 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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