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방>을 연출한 최주연 감독.

영화 <라방>을 연출한 최주연 감독. ⓒ 트리플픽쳐스

 
배우 장진영, 김하늘, 강예원 등 유명 배우들의 매니저였던 그가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계에 몸을 던진 지 약 20년 가까이 된 직후였다. 영화를 좋아했고,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목표로 차근차근 연출 공부를 해 온 최주연 감독이 영화 <라방>으로 데뷔하게 됐고, 이제 곧 관객들을 만난다. 16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정말 힘들었지만, 준비하면서 주변에서 (힘든 소재라고) 욕도 먹었는데 정말 간절하게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데뷔 소감부터 전했다.

주변 반대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뚝심
 
주위의 비판이 있었던 이유가 다름 아닌 이 영화의 소재가 성 착취물이기 때문이다. 다크웹에서 성행했고, 이윽고 N번방 사건이 터지며 세상에 알려지게 된 성폭력 라이브 방송은 그 자체로 무겁고 암울한 이야기였기 때문. 2018년 우연히 보게 된 한 단편영화를 계기로 이야기를 써나갔던 최주연 감독은 크고 작은 부침을 겪으면서도 이 영화를 포기하지 않았다.
 
"12분짜리 단편영화였다. 그땐 N번방 사건도 나오기 전이었고, 그저 사안이 심각하다는 마음에 제 상상을 보태 급하게 초고를 썼었다. 초고를 본 지인들이 현실성 없다, 혹은 이런 일은 있을 법한 게 아니라며 엄청 뭐라고 했다. 내가 너무 갔나 싶었지. 그런데 이후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터지자, 사람들이 마치 제가 뭔갈 예언한 듯 말하더라. 정작 그런 사건이 터진 이후에는 영화 작업을 못하겠구나 싶었다. 제 생각보다 훨씬 사안이 심각했고, 피해자들에게 또다른 상처를 줄까봐였다."
 
최주연 감독이 마음을 다잡은 계기는 N번방 이후에도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면서다. 매니저 일을 제치고 영화 제작자로 <공모자들> <날 보러 와요> 등에 참여하면서 나름 사회 약자에 관심이 컸던 자신의 초심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주요 투자배급사가 너무 불편한 이야기라며 거절한 상황이었지만, 전 불편하게만 찍진 않을 것이고, 이건 당연히 해야 하는 이야기임을 강조하며 투자를 받으러 다녔다"며 최주연 감독은 말을 이었다.
 
"중저예산 투자배급사도 대부분 거절한 상황에 지금의 제작사와 투자사가 절 불쌍히 보신 것 같더라. 다행히 투자를 받게 됐다. 제 입장에선 그분들의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시나리오를 수정해 나갔다. 강렬했고 직접적이었던 초고를 자극적이지 않게 고쳤다. 특히 대사를 많이 수정했다. 일반 라이브 방송이 아닌 몰카 라이브이기에 제가 직접 취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래서 좀 더 원초적으로 이런 범죄가 왜 일어나는지, 그 심리를 다루려 했다.
 
쓰면서 정말 고통스러웠다. 각종 범죄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깨달은 건 어렸을 때 사랑받지 못한 사람들이 이런 일을 저지르기 쉽다는 사실이었다. 가족과 사회의 무관심에 처한 이들이 이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만큼 사랑과 관심을 주변에 주면 비극이 없어지지 않을까 상상해가며 이야기를 만들었다. 불편한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학대나 약자를 향한 폭력이 대물림된다는 걸 직시하자는 생각이었다."

 
 영화 <라방> 관련 이미지.

영화 <라방> 관련 이미지. ⓒ 트리플픽쳐스

 
반성하는 마음
 
그렇게 탄생한 영화 속 주인공인 동주(박선호)는 친구들과 아무 죄책감 없이 불법 라이브 영상을 보다가 정작 자신의 약혼자가 납치되는 일을 겪는다. 젠틀맨(박성웅)이라는 음지의 BJ가 놓은 덫에 걸린 동주는 여자 친구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상황을 계속 꼬일 따름이다. 최주연 감독은 "스스로 동주라고 생각하고 제 모습을 많이 반영했다"며 말을 이었다.
 
"동주는 평범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영상을 보는 게 잘못인 줄 모르잖나. 저 또한 우연히 성인물을 본 적이 있다. 과연 이런 걸 한 번도 안 본 사람이 우리 주변에 있을까. 그런 영상을 보는 행위만으로도 무수한 피해자가 나오는 데 원인이 된다. 그래서 동주에 많이 이입하며 시나리오를 썼던 것 같다. 앞으론 깨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사람들이 이런 걸 소비하고, 멈추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한 단테의 <신곡> 등을 참고하며 공부해나갔다. 특히 영화 속 채팅창에 등장하는 대화들은 실제 범죄에서 많이 따오기도 했다. 하나하나 타이핑 해 넣으며 현실성을 더하려 했다."
 
그렇기에 어려운 소재의 영화에 흔쾌히 헌신한 배우들에게 감독은 새삼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신인 배우로 서서히 입지를 쌓고 있는 박선호나 김희정을 두고 최주연 감독은 "단순히 잘생기고 예쁜 배우가 아니라 매력이 있는 사람들"이라며 "제 입장에선 행운이었다"고 감회를 전했다.
 
"특히 희정씨 혼자 여성 배우였다. 여배우 캐스팅이 너무 중요했는데 희정씨는 외모도 외모지만 말투도 선하고, 지적인 느낌도 있었다. 콘티를 짤 때 정말 고민 많이 했다. 제작사 대표님에게도 노출은 안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다른 분이 노출이 있어야 한다고 반대했지만, 저와 대표님이 함께 설득했다. 그냥 옷으로 보이는 부분만 찍어도, 그리고 박성웅 배우의 손길 연기만으로 충분히 징그러운 느낌을 줄 수 있겠다 생각했지.
 
여성 관객분들이 이런 소재를 엄청 불편해하잖나. 제가 여성임에도 왜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 작은 이해를 부탁드리고 싶다. 단순히 분노하자고 말하는 게 아니라 영화가 끝나고 나라면 혹은 내 연인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서로 발전적인 얘길 나눴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떤 분들은 저런 상황에서 사채를 써가면서까지 여자친구를 구하려는 동주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도 하는데, 그런 면에서도 함께 토론해봤으면 좋겠다."

 
오랜 준비 끝에 데뷔한 감독 입장에서 그는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다는 목표가 있다"고 말했다. "남성, 여성 감독 모두 요즘은 신인 입장에서 데뷔하기가 훨씬 어려워진 것 같다"며 "저도 그랬지만, 꿈이 있다면 무조건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밀고 나갔으면 한다. 정말 힘들지만 저도 이렇게 하게 됐으니 계속 두드려보면 좋겠다"는 진심 어린 마음을 인터뷰 말미에 전했다.
라방 성착취물 영화 박성웅 최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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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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